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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산문답 - 홍대용
등록일 : 200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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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연과학에 관한 한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옳은 견해이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조선 시대 유학자들 대부분은 유교 경서를 공부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자연의 이치에 대한 탐구는 뒷전이었다. 그들에게는 인간의 삶의 문제, 특히 윤리적인 문제가 가장 중요했고,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관련한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 바로 몇몇 예외적인 경우에 속하는 유학자이다. 그의 '의산문답'은 영조 41년(1765)에 당시 청나라의 북경을 다녀온 뒤 집필한 일종의 자연과학 도서이다. 그의 여러 저작이 수록되어 있는 '담헌서'(湛軒書) 내집(內集)에 보유, 즉 보충편으로 포함되어 있는 글이다. 전1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그 활자본이 소장되어 있다.


그 구성을 보면, 실옹(實翁)과 허자(虛子)라는 가공의 두 인물이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인류의 기원, 계급과 국가의 형성, 법률, 제도 등에서부터 천문, 율력(律曆), 산수, 과학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홍대용은 특히 이 책에서 지구자전설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우주관에 따르면, 지구는 네모난 모양이며 움직이지 않고, 다만 하늘이 움직인다. 하지만 홍대용은 지구가 둥근 모양이며 자전하고 있다고 보았다.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을 홍대용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달이 해를 가리울 때 일식이 되는데, 반드시 가리워진 모양새가 둥근 것은 달의 모양새가 둥근 때문이며, 땅이 해를 가리울 때 월식이 되는데 가리워진 모양새가 둥근 것은 땅의 모양새가 둥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월식은 땅의 거울이다. 월식을 보고도 땅이 둥근 줄을 모른다면 이것은 거울로 자기의 얼굴을 비추면서 그 얼굴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어리석지 않느냐.'

결국 일식과 월식의 그림자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달이 둥글고 지구 역시 둥글다는 이른바 지원설(地圓說)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지원설을 주장했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하겠다. 홍대용은 이러한 지원설에서 더 나아가 지전설(地轉說), 그러니까 지구가 쉼 없이 자전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무릇 땅덩어리는 하루에 한 번씩 돈다. 지구의 둘레는 3만리 하루는 12시간이다. 9만리의 큰 덩어리가 12시간에 맞추어 움직이고 보면, 그 빠르기가 번개나 포탄보다도 더하다.'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에 있는 홍대용의 묘소.
 

병천에서 수신방면으로 제 2병천교를 지나 곧바로 언덕을 오르다보면, 오른편에 60여마리의 젖소를 사육하고 있는 윤석성축사가 있다. 그 뒤편으로 마을 사람들이 옛날부터 큰말림이라 부르는 산마루에 동남향으로 앞마을을 바라보며 자리해있다.

반듯한 돌을 골라 4층으로 겹쳐 쌓고, 잔디를 덮어 깨끗하게 단장해 놓았으며, 오른쪽에 비문이 새겨진 비석이 있고 묘 바로 앞에는 2층단으로 만든 상석이 있다.

또한 묘소에서 길 건너편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장산리 장명마을이 있는데 홍대용의 생가 터가 있다. 지금은 옛 건물을 헐고 다시 지어 그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지원설, 지전설과 함께 인력설(引力說)도 홍대용의 과학사상에 있어서 매우 특기할 만하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둥근 지구 표면 어디에서나 사람이 넘어지거나, 떨어지지 않고 살 수 있으려면 모종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홍대용은 그러한 힘을 이른바 상하지세(上下之勢)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땅이 빨리 돌기 때문에 허기(虛氣)가 급히 부딪쳐 허공에 쌓이고 결국 땅 위에 모이게 된다. 이것이 결국 땅위에서 작용하는 힘이 되어 둥근 지구 위에서 사는 사람들이 넘어지거나 떨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지구가 무서운 속도로 자전하기 때문에 지구둘레의 기가 지구의 자전과 함께 회전하면서 지구의 중심을 향해 쏠리는 힘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 홍대용은 이러한 힘을 묘사하여, '천지의 두 기가 서로 부딪쳐 땅으로 모이는데 마치 강과 하수의 물이 낭떠러지에 떨어져 소용돌이를 이룬 듯 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힘은 땅에서 멀어지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지구의 표면으로부터 멀면 멀수록 약해져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주장으로, 지구 둘레의 상하지세는 다른 별이나 행성까지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은하란 여러 세계를 묶은 한 세계로 드넓고 텅 빈 공간을 두루 돌아 한 큰 테두리를 이룬 것이다. 그 속에 많은 세계의 수효가 몇 천 몇 만이나 될 것이니, 해와 지구 등의 세계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하여, 무한우주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무한한 우주 속에서 지구와 태양은 보잘것없는 하나의 행성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당시로서는 무척 혁신적인 홍대용의 이러한 주장들이 과연 전적으로 그만의 독창적인 연구와 사색의 결과일까? 사실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다. 홍대용은 영조 41년(1765)에 사신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숙부를 따라 북경을 방문했는데, 당시 중국에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담은 천문학 도서가 한문으로 번역, 유포되어 있었고, 평소에 천문학 및 천문기기에 관심을 크게 지니고 있던 홍대용이 그런 저서를 접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대용은 당시 북경에 머무르고 있던 독일인 유송령(留松齡: Hallenstain), 포우관(鮑友管: Goeisl) 등으로부터 서양의 각종 문물을 소개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문물과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당시 지배적이었던 유학자들의 전통적인 우주관에서 탈피하고, 더 나아가 합리적인 근거에 입각하여 혁신적인 우주관을 전개한 홍대용의 진취적, 비판적인 정신의 가치까지 손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 하겠다.
 
명저산책 ⓒ 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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