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갤러리

성학집요(聖學輯要) - 율곡 이이
등록일 : 2009-08-19
트위터로 공유하기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미투데이로 공유하기



'학문을 한다' 또는 '공부를 한다'는 말을,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거나 습득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하는 공부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을 머리 속에 채워 넣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옛 사람들, 특히 우리 나라의 옛 사람들은 반드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의 제목 "성학집요"를 풀어 옮긴다면,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배움의 요점을 모아 정리한 책' 정도가 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성인이라는 말이다. 율곡 이이를 비롯한 조선의 선비들이 생각했던 성인은 종교적 의미의 성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생각했던 성인은 끊임 없는 자기 수양을 통해 주위 사람들까지 도덕적으로 감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공자 같은 인물이 그러한 의미의 성인이다.

또 한가지. 그들이 말하는 성인이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 전체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지도자를 뜻하기도 한다. 결국 온전한 의미의 성인은, 자기 수양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귀감이 될 수 있는 도덕성을 갖추고, 한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사람이라 하겠다.

이이를 비롯한 조선의 선비들이 그토록 유교 경서를 열심히 읽고 연구했던 것은, 단순히 유교 경서의 내용이라는 지식 그 자체를 습득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은 옛 성인의 가르침이 유교 경서에 담겨져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그것을 열심히 공부하여 자신들도 성인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한 목적에서 벗어나는 공부를 그들은, 출세와 영달을 목적으로 하는 잘못된 공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거짓된 공부라고 비판했다.

'성학집요'는 율곡 이이가 그의 나이 40세때(1575년) 홍문관 부제학 벼슬을 하던 당시 완성하여, 선조 임금에게 올린 책이다. 선조가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 그래서 조선이 성인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율곡 이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정작 율곡 이이 자신이 집필한 부분은 드물다. 유교 경서 및 중국의 옛 성현들이 남긴 글 가운데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주제별로 모아 정리하고, 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첨부했을 뿐이다.

총설(總說), 수기(修己), 정가(正家), 위정(爲政), 성학도통(聖學道統) 등의 5편으로 나누고, 그 각각을 다시 여러 장으로 세분하여, 유교의 사서 가운데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가르침과 관련 있는 옛 성현의 말씀을 정리한 뒤, 이이 자신의 간략한 설명을 첨부한 형식이다.


'수기'편에서(번역서 상권 79페이지) 이이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을 올바르게 다잡는 것이야말로, 학문의 근본입니다. 옛 사람들은 어린이들도 그렇게 교육시켜 생각과 행동이 법도에서 어긋나는 법이 없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교육받은 이들은 양심을 함양하고 덕성을 존숭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그런 공부는 생략한 채 곧장 사리를 탐구하고 수신에 힘쓰려 하기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럽고, 행동은 법도에 어긋나며, 공부를 하는 듯 마는 듯 하게 됩니다."

위와 같은 이이의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선의 선비들이 말하는 공부란 어디까지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도덕적으로 어긋남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였다. 결국 무언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습득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성학집요'는 별 볼일 없는 책인 셈이다.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 하지만 새로운 지식의 습득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지식을 남들보다 빨리 많이 습득하여,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 하지만 골치 아픈 공부가 아니더라도, 돈을 벌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한 길은 많다. 때문에 그러한 대답은 우리가 하필 공부해야 하는 까닭을 제대로 설명한다고 보기 힘들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공부가 율곡 이이가 선조 임금에게 권했던 공부, 그러니까 성인이 되기 위한 공부는 아닌 것 같다. 시대가 변하면 공부의 의미도 변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가 옛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공부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새로운 지식이 과연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 더 나아가 인류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런 질문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지식의 형태가 바뀌어도 남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습득하는 오늘날의 과학자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물론 성인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첨단 지식이 인간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을 보다 행복한 삶으로 이끌 수 있는지 반성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한 반성을 깊이 하는 과학자라면, 그는 어떤 의미에서 성학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명저산책  ⓒ 표정훈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