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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파 예술 운동과 책
등록일 : 200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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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파'라는 상품명을 지닌 화장품이 있었다. 그 경우에 미래파라는 말은 '미래지향적이고 앞서 가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의도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미래파라는 말이 반드시 긍정적인 맥락에서만 사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 도무지 그 의미를 읽어내기 힘든 초현대적 또는 전위적 예술활동을 전개하는 사람을 향해 던지는 '미래파'라는 말이 바로 그런 경우인 듯 하다. 그런 경우에 '미래파'라는 말에는 '지금, 여기, 우리'가 그 의미를 공유하기는 힘들다는 뜻이 들어 있는 셈이다. 미간을 찌푸리면서 곤란한 표정으로 양 어깨를 으쓱 하는 정도의 제스쳐와 비슷하다고 할까.

여하튼 '퓨처리즘(Futurism)의 번역어로서의 미래파(또는 미래주의)는, 1909년부터 1944년까지 이태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특정의 예술 운동 또는 사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운동은 예술사에서 최초로 일종의 비즈니스처럼 관리, 운용되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미래파는 출발할 때부터 광고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었으며,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홍보가 진행되기도 했다. 미래파는 특히 예술적 신념과 방법론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언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들의 선언서는 고답적이고 보수적인 기존 예술 체제에 대항하는 논쟁적 수단이기도 했다. 미래파 운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시인 마리네티(F. T. Marinetti)는 1909년 2월에 다음과 같이 썼다.

"지금까지 문학은 다만 골똘히 생각에 잠겨 도무지 살아 움직일 줄 몰랐다. 순간적 황홀과 깊은 잠을 찬양하는 무기력한 문학의 꼴이란! 우리는 이제 사뭇 공격적인 행동, 흥분 상태의 불면, 육상 경기 주자의 힘찬 발걸음, 긴 도약, 주먹질과 드잡이를 지향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이 간직하고 있는 장엄과 훌륭함이 새로운 미에 의해 더욱 풍부해질 것임을 확신한다. 바로 속도의 아름다움! 우리는 박물관, 도서관, 기타 온갖 종류의 기성 아카데미즘을 파괴할 것이며, 모랄리즘, 온갖 기회주의, 비겁함과 싸울 것이다."

기본적으로 시각 예술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큐비즘(입체주의)과는 달리, 미래파 운동은 그 뿌리를 시(詩)에 두고 있었으며, 언어의 전면적인 혁신과 새로운 인쇄 형식을 특징으로 한다. 1905년 이래 마리네티는 문예지 '포에시아'(Poesia) (위의 그림) 의 지면을 통해 이른바 '베르소 리베로'(Verso libero: free-verse)의 구상을 선보였고, 그것은 그 때까지의 문학 작품이 보여주던 문장 구조, 구문 운용의 일관성을 깨뜨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결국 미래파 운동이 시작된 직후부터 이미, '베르소 리베로'는 '파롤레 인 리베르타'(parole in liberta: words-in-freedom)로 전개되어 갔다. 그러한 목표와 방법론은 1913년에 마리네티가 발표한 선언서에 요약되어 있다.

"미래파는 시각적 역동성, 품위의 위선을 벗어 던진 음악, 불규칙적 리듬, 시끌벅적한 예술, 자유로운 언어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 감수성의 완전한 혁신에 기반을 둔다. 그것은 사슬에서 벗어난 상상력의 힘을 통해 이미지, 아날로지(유비), 통제 받지 않는 언어의 표현 등에서 절대적인 자유를 지향한다. 기존의 구문법과 구두점이라는 사슬이 없는 자유로운 언어!"

앞의 인용문의 마지막 몇 줄은 이미 1912년 5월에 발표된 선언서 '미래파 문학의 기술적 선언서'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그 선언서에서 마리네티는 작가들에게 형용사, 부사, 접속사, 구두점 따위를 추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문장 구두점의 추방은 이미 1897년에 말라르메가 파리의 Cosmopolis지에 발표한 시에서 이루어진 바 있다. 하지만 그 잡지는 문예계 내부에서도 영향력이 무척 미미했고, 1914년에야 비로소 문제의 시가 출간되어 보다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비하여 마리네티의 이론은 그의 선언서들이 광범위하게 유포됨으로써 1912년부터 이미 문예계 전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유럽 전역의 수많은 시인,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마리네티의 선언은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인쇄 매체의 혁명을 제안하고자 한다. 그것은 단눈치오(Gabriele d'Annunzio: 1863~1938. 이태리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풍의 구태의연한 시, 가망 없는 복고주의 등이 고집하는 책에 대한 구역질나고 야만적이기까지 한 관념을 표적으로 하는 혁명이다. 그러한 관념이란 예컨대 그 가장자리를 투구, 미네르바, 아폴론, 붉은 색의 정교한 이니셜, 식물줄기, 신화적, 성서적 이미지를 담은 리본, 상투적인 제목글, 로마 숫자 따위로 채운 수제 종이로 제작된 책 같은 것을 말한다.

미래파의 책은 미래파 사상의 미래파적 표현 바로 그것이어야 한다. 또한 나의 혁명은 이른바 책 페이지의 인쇄 체재상의 조화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기존의 고답적인 인쇄 체재는 돌출하는가 싶으면 물러나고, 별안간 출현했다가 이내 바뀌고, 지면 위를 건너뛰면서 약동하는 활자와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같은 지면 안에서 서너 가지의 잉크를 사용하고, 필요하다면 심지어 스무 가지의 다른 활자체를 사용할 것이다. 예컨대 진솔한 의성어는 볼드체 활자로, 일련의 연속적인 또는 유사한 순간적 감정들을 이탤릭체로……. 이러한 혁명을 통해 그리고 다양한 색깔의 문자를 통해 나는 말의 표현력을 배가시키고자 한다."


마리네티의 '자유로운 말'에 대한 견해는 사실 20세기 인쇄 매체 혁신의 중추였다. 도발적인 레이아웃이 특징인 그의 책 Zang Tumb Tumb(1914)는 이런 맥락에서 걸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 그림) 마리네티의 견해야말로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도서 제작의 출발점이었다. 미래파에게 도서 제작이란 자신들의 이론적 전망의 자연스런, 그리고 당연한 결과였다. 요컨대 미래파의 철학을 실물로 구현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가 책이었던 것이다.


미래파의 책은 미래파라는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책의 미래를 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책은 그 자체가 기술적, 문화적 진보의 상징이었으며, 기계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이용 가능한 모든 매체와 재료를 동원하고자 했다. 대량 생산과 유통이야말로 그들의 작업 성과의 확산 및 유포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어쩌면 그것은 미래파의 철학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리네티는 말한다. "우리는 지금 지나간 과거의 모든 시대의 마지막 자락에 서있다. 우리가 왜 그 과거를 쳐다보아야 한단 말인가?"

1909년 이후 수십 년 동안 이태리 미래파 운동은 사뭇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러시아의 미래파 역시 광범위한 실험적 도서 제작에 힘을 기울였는데, 그들의 노력은 이태리 미래파와는 사뭇 다른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러시아 미래파는 책을 예술 창작 활동의 성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들은 독창적인 일러스트레이션, 유일무이한 수제 표지, 극히 적은 부수만을 간행하는 한정판 도서 등에 큰 가치를 부여했다.

그들의 이러한 성향은 마리네티의 경우와는 달리, 특별한 인쇄 체재의 철학 같은 것에 기반을 두고 있지는 않았다. 그것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을 가능하게 했던 신념, 즉 러시아의 문화적 유산의 부활을 최대의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예컨대 러시아 전통 회화 예술의 창조적인 계승 같은 것이다. 서유럽 문화 일반을 자신들의 문화 전통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 요인으로 간주하면서, 서유럽만 쳐다보는 해바라기 신세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이기도 했다. 마리네티의 이론적 전망은 미래파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이 제작한 책에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인 틀에서 한참 벗어나 도대체 책의 표지인지 의구심을 가지기에 충분한 표지, 새롭게 고안한 활자체가 레이아웃의 기본적 규칙을 무시한 채 본문 지면에 자리잡고 있는 도발성 등이야말로 그런 책의 큰 특징이다.


그러한 새로운 '알파벹'은 당연히 기존의 틀에 박힌 정신과는 다른 새로운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활자 그 자체가 이미지가 된다고 할까. 이러한 경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책이 바로 프란체스코 캉기울로(Francesco Cangiullo)의 '카페, 합창대, 돌발적인 알파벹'(Cafe-Concert-Alfabeto a sorpresa)이다.(바로 위쪽 그림) 캉기울로는 그 책을 1916년에 완성했지만 인쇄, 출간된 것은 1919년의 일이었다. 그는 풍경, 사람의 신체 등 다양한 이미지를 다양한 활자체로 표현했다. 요컨대 글자가 이미지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위의 그림은 캉기울로가 1923년에 간행한 'Poesia pentagrammata'의 텍스트 지면.
 

1910년대에 미래파의 도서 제작은 주로 활자체의 실험에 집중되었다. 그러한 실험은 1919년에 마리네티가 발표한 책 '미래파의 자유로운 언어'(Les mots en libertá futuristes)에서 최종적으로 요약, 정리되었다. (아래 왼쪽) 1920년대에 미래파의 새로운 방향은 이른바 '기계 시대'에 대한 강조였다. 그러한 강조를 통해 미래파 운동은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한 셈이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걸작은 역시 볼트를 바인딩 재료로 사용한 포르투나토 데페로(Fortunato Depero)의 1927년 작품이었다. (아래 오른쪽) 볼트로 책을 '조여놓은 것' 자체가 기계 시대의 선언인 셈이었고, 그 레이아웃 역시 혁명적이었다. 다양한 색채를 사용한 텍스트는 역시 다양한 종류의 종이 위에 인쇄되었다. 활자체의 크기와 형태도 다양한데, 특히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기하학적 형태가 돋보인다. 사실 그 책은 위, 아래, 왼쪽, 오른쪽 따위의 방향성이 없으며, 하나가 아닌 다중적인 레이아웃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텍스트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책을 계속해서 돌려야만 한다.



1930년대 초에 마리네티는 또 하나의 유명한 책을 출간했다. '자유로운 말, 미래파적, 후각적, 촉각적, 온기를 갖춘…'(Parole in Libertá Futuriste, olfattive, tattili, termiche)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석판 인쇄 기법을 동원하여 다양한 색깔의 얇은 금속판 위에 인쇄했으며, 바인딩에도 금속 재료가 사용되었다. (아래 왼쪽) 이 책과 함께 도서 제작 분야에서의 미래파의 실험은 정점에 달했다.



이후 1934년에는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가 역시 위와 같은 기법으로 금속을 사용하여 '노래하는 오이'(L'anguria lirica)라는 제목의 책을 제작하기도 했지만, (위의 오른쪽) 그 때까지 25년 동안 문학적, 시적 실험과 인쇄 체재상의 혁신을 지속적으로 감행했던 미래파는 특정 예술 운동 집단의 차원에서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책과 예술 ⓒ 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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