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갤러리

지금 우리에게 '노래'란 무엇일까?
등록일 : 200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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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9월 5일


1970년 어느 날 김민기와 양희은이 만난다. 바로 그해에 <아침이슬>이라는 노래가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부도덕한 정권은 그 노래에다 이내 '금지곡'이란 딱지를 붙인다. 그들은 왜 이 노래를 묶어야만 했을까? 노래를 불러본다.

"긴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너무도 서정적일 뿐인 노래 하나에 왜 그들은 그토록 과민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을까? 그러나 그들이 옳았을 수도 있다. 서정성 짙은 이 노래는 70년대라는 척박한 시절을 지내며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사람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들의 연대감을 확인했다. (노태우가 즐겨 부르는 노래들 중의 하나로 아침이슬이 언론 매체에서 거론되기도 했는데, 이 것은 제6공화국 출범과 함께 사회 각 분야에서 6월 시민 항쟁의 분위기가 이어지는 것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제스처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 노래를 처음 만들었을 때 갓 스물이었던 김민기도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도 노래는 남는 법. 함께 어깨를 걸고 노래를 부르던 그 사람들을 지금 다시 한 자리에 불러 모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6월 항쟁 직후인 1987년 9월 5일 <아침이슬> 등 방송 금지곡 500곡이 해금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9년이 흐른 1996년 음반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되었고, 그것을 기념해 <자유>라는 공연이 사흘 동안 열렸다. 그 첫날의 마지막 곡으로 불려진 노래는 <아침이슬>이었다. 금지곡의 금지 이유가 어처구니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송창식의 '왜 불러'는, 경찰이 장발단속이나 기타 검문을 위해 행인을 부르는 것에 대한 반항적 메시지이기 때문이라고 하던가.

"땅도 나뉘었고 사람도 나뉘었고 생각도 노래도 나뉘었고 나뉜 중에 또 나뉘어 이제는 각자의 마음 안에서조차 가닥을 못 잡아 제 마음의 주인 노릇하기도 힘든 지경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에게 '노래'란 무엇일까? 우리와 늘 함께했던 '우리의 노래'들이 한겨레 신문사에서 나온 <겨레의 노래>라는 책에 묶여져 있다.

날짜로 보는 책과 인물 ⓒ 장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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