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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사직의 위기
등록일 : 2009-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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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왕조 멸망 이전의 상과 주의 관계는, 상이 주군의 위치이고 주가 신하의 위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상의 군신 관계이기보다는 명목상의 군신 관계였고, 상과 주는 독립된 별개의 성읍 국가 연합체였다. 결국 상 왕조의 멸망은 주 중심의 성읍 국가 연합체가 상 중심의 성읍 국가 연합체에 거둔 정치적, 군사적 승리로 규정할 수 있다.


*주나라 조상신 후직

새롭게 상 왕조를 대신해 성읍 국가 연합체제에서 주군의 자리를 차지한 주 왕조로서는 자신들이 본래부터 섬기던 조상신 후직을 부각시키고, 상 왕조의 최고신 제에서 조상신 개념을 탈색시켜 버릴 필요가 있었다. 주 왕조의 조상신, 부족신인 후직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군장 혹은 장관을 뜻하는 후(后)와 곡물신을 뜻하는 직(稷)이 합쳐진 형태이다. 제 혹은 천에 대한 도덕적 대응이 덕이라면, 조상신에 대한 도덕적 대응은 효(孝)이다. {시경}, {서경}에 나오는 제가 인간 세계에 일일이 간섭하듯이, 조상신도 주 종족이 대를 이어가며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종묘사직으로서의 국가 체제

일반적인 최고신에 대한 덕이라는 도덕적 대응과, 조상신에 대한 효라는 도덕적 대응을 구체화시킨 것이 바로 바로 사직(社稷)과 종묘(宗廟)라는 제사 제도이다. 사직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땅의 신 사(社)와 곡물의 신 직(稷)이 결합된 형태이다. 요컨대 농경의 성공을 비는 제사였던 셈이다. 종묘는 조상들의 위패를 모셔놓고 그에 제사지내는 것, 즉 특정 왕조의 조상신들을 모시는 의례였다. 사직과 종묘라는 제사 체제는 그 자체가 국가 운영 체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종묘사직'이라는 말이 국가 자체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신흥 지주 세력의 대두와 종묘사직의 위기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종묘사직'의 위기, 즉 주나라 지배 체제의 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주나라의 토지 소유 제도는 기본적으로 공동체 소유 형태인 정전법(井田法)에 기초한 것이었으나, 서주(西周) 시대 후기로 가면서 기존의 정전법 체제 안에 편입되지 않는 새로운 토지의 개간과 그 사유화가 이루어졌다. 기존 공동체 질서 안의 토지 소유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에 따라 새로운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부의 새로운 소재지가 생겨난 셈이다. 그러한 소재지를, 주나라의 정전법 질서 안에 있던 구 귀족들과는 다른 신흥 지주 세력이라고 규정해 볼 수 있다. 경제적인 실력을 갖춘 신흥 세력이 정치적인 세력까지 넘보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며, 이에 따라 사회, 경제, 정치적인 측면에서 주나라 지배 체제에는 갈등과 혼란이 일어나게 된다.


*제사 체제의 형식과 본래 정신의 괴리

주나라 지배 체제의 위기는 곧 체제를 수호하는 천과 조상신의 위기이기도 하다. 천도 무력해 보이고 조상신도 무력해 보이는 일종의 신뢰성의 위기, 그 때까지 정치, 사회 질서를 뒷받침해왔던 이념 혹은 사상의 위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위기 국면 속에서도 종묘사직이라는 제사 체제의 형식만은 굳건하게 보전되었다. 그것의 핵심을 이루는 경천과 덕과 효의 정신은 희석되어 버리면서도 의례 행위 자체의 형식만은 보전되는 상황, 요컨대 실재와 형식의 괴리 현상이 두드러졌다. 국가 존립을 위한 제반의 문화적 제도 및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예(禮)의 형식은 서주 시대를 통틀어 고도로 복잡하게 발전했고, 이에 따라 그러한 예의 형식을 익히고 전수하는 일은 전문화되어 갔다. 특히 서주 시대 지배 계층의 최저층에 해당하는 사(士) 계층 가운데 그러한 전문가들이 많았다. 사 계층은 전사(戰士) 집단임과 동시에 예를 익히고 전수하는 문화인, 지식인 집단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메모: 평왕(平王)이 주나라의 도읍을 호경에서 보다 동쪽인 낙읍으로 옮긴 기원전 770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을 서주 이후를 동주 시대라 한다.

중국사상사 차례보기  > 은에서 동주 시대까지 ⓒ 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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