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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儒) 개념과 제자백가의 분류
등록일 : 2009-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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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 전문적인 지식인의 통칭

제자백가의 첫 문은 이른바 유자(儒者)들이 열었다. 우리는 유자를 유학자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유(儒) 혹은 유자는 특정 사상 유파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었고, 문화적인 전문인 혹은 직업적인 지식인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개념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나라 전통 문화의 집적이라 할 예(禮)를 전문적으로 익히고 연구하여, 그것을 교육을 통해 전수해나가는 전문 지식인들이 유, 혹은 유자였다. 때문에 제자백가들 모두가 기본적으로는 유자들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오늘날의 제자백가 분류는 후대인들이 춘추전국 시대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방편적으로 설정한 분류법이라고 할 수 있다. 춘추전국 시대 당시에는 자기 학파와 다른 학파의 다름을 인식하고 서로 다투거나 하는 확실한 분파 의식이, 전혀 없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다지 뚜렷하지는 않았다. 요컨대 춘추전국 시대의 직업적, 전문적인 지식인들이 지녔던 다양한 생각의 갈래를 정리하기 위한 후대인들의 분류 체계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제자백가라고 보면 된다.


*제자백가라는 말에 대하여

전한(前漢)의 역사를 서술한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의 제자략(諸子略)에 189가(家)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189가를 어림잡아 백가(百家)로 표현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한서}보다 앞선 사마천의 {사기} '가의전'(賈誼傳)에 '제자백가의 학문에 제법 정통하다'는 구절이 나온다. 결국 백가는 무척이나 다양한 사상 유파들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수사적인 표현 이상이 아니다.


*사마담과 반고의 분류

{사기}의 편찬자로 유명한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 기원전 110년 사망)은 태사령(太史令) 벼슬을 지냈다. 태사령은 요즘말로 하면 국립 천문대 대장이자 국립 문서보관소 소장을 겸하는 관직이다. 사람의 일과 하늘의 일이 상통한다고 보았던 고대 중국인들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관직인 셈이다. 여하튼 사마담은 국립 문서보관소 소장으로서 옛 전적과 사상을 분류,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사마담은 도가(道家), 유가(儒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명가(名家), 음양가(陰陽家)로 춘추전국 시대의 사상을 분류했다. 여섯 학파로 분류했다는 점에서 육가(六家) 분류법이라 일컫기도 한다. 반고는 앞서 언급한 {한서} '예문지'에서 육가 이외에 종횡가(縱橫家), 잡가(雜家), 농가(農家), 소설가(小說家) 등을 추가하여 이른바 십가(十家) 분류법을 택했다.


*제자백가의 분류는 후대인들의 관점에 따른 것

제자백가의 분류는 춘추전국 시대 당시의 분류 방식이 결코 아니다. 사마담이나 반고의 경우에는 그 분류를 차라리 도서관 소장 문헌 분류 항목이라고 보는 편이 더 좋다. 한나라 황실이 소장하고 있는 예로부터의 문헌을 분류, 정리하기 위해 사마담과 반고가 나름대로 설정한 문헌 분류 기준인 셈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특정 학파에 속한 사상가들이라면 그들 스스로가 특정 학파 소속이라는 자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마땅하다. 또한 그런 자의식은 다른 학파들과 자기 학파가 다르다는 구별 의식 혹은 대결 의식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춘추전국 시대의 사상사에서 비교적 분명한 자의식과 구별 의식을 지닌 경우는 유가와 묵가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학파별 분류의 위험성

사상사의 복잡다기한 양상을 보다 분명하게 정리하여 살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학파로 분류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자칫하면 후대인들의 지적인 관심과 입장이 투사된 분류로 기울 위험이 없지 않다. 중국 고대 사상은 물론이거니와 어느 곳 어느 시대의 사상을 살펴보고자 할 때도 이 점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메모: 중국의 대표적인 도서 분류 체계는 경사자집(經史子集), 즉 유교 경서, 역사서, 불교 및 도가를 포함한 여러 사상 유파 도서, 문집 등이다.


중국사상사 차례보기  > 은에서 동주 시대까지 ⓒ 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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