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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계급의식 - 게오르그 루카치
등록일 : 200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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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생으로 20세기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문예이론가 게오르그 루카치(1885~1971)는 사실상 19세기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를 폄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문사철에 두루 능통한 전방위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높이고자 하는 뜻에서이다. 앞머리에서 하필 '헝가리 출생'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루카치가 헝가리라는 사회적으로 낙후된 상황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중부 유럽의 독일어 문화권 속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각별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루카치는 헝가리 출신이지만 대부분의 저서는 독일어로 집필했다. 유럽의 변방 출신 지식인으로서의 루카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당시 유럽 문화의 추세를 총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시좌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러면서도 결국 유럽 문화의 주류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못했다.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등의 서구 문학이나 모더니즘 일반 등, 서구 특유의 문화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한계를 보이는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루카치는 또한 유태인 가문의 대부르지와 출신이다. 유럽의 유태계 지식인들 전반이 그러했듯이, 루카치 민족이나 계급을 넘어선 인류 보편의 문제에 강한 관심을 나타낸다. 또한 은행장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의 문학적 명성을 위해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당시 헝가리의 전반적인 궁핍 속에서도 루카치는 대부르지와의 생활을 누릴 수 있었고, 이것은 결국 서구 부르지와가 생산해 낸 예술, 문화 및 그 이상을 추구하는 루카치의 성향에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예를 들어, 루카치의 리얼리즘론은 20세기 독일 최대의 부르지와 작가 토마스 만을 일종의 모범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의 초기 작품(평론집)인 "영혼과 형식"(1910)은 부르지와 문학 평론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루카치의 비범한 미적 감수성과 날카로운 이론적 통찰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저작이라 할만 하다. 특히 20세기 서구의 비극적 세계 인식과 실존주의적 정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루시엥 골드만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1915년의 저작 "소설의 이론"은 문학이론가로서의 명성과 위치를 확고하게 해주었고, 사실상 루카치의 이후 이론 활동의 전모를 예비한 저작이기도 하다. 루카치는 대략 18세기 이후 서구 문학의 가장 중요한 장르가 된 소설이라는 형식을 이론화하고 있는데, 특히 소설을 '부르지와 시대의 서사시'라고 본 헤겔의 미학에서 기본 발상을 빌려왔다. 루카치는 그리스의 서사시가 총체성이 지배하는 역사철학적 상황의 산물이라면, 소설은 잃어버린 총체성을 다시 찾으려는 부르지와 사회의 주인공, 즉 개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규정한다. 분열과 소외를 겪고 있는 현대인의 총체성을 문학 형식을 통해 회복하려는 노력, 바로 그것이 루카치의 문학 이론적 작업의 핵심을 이룬다 하겠다.

한편, "역사와 계급의식"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유럽의 현실에 대한 절망감과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좌경화된 루카치 자신의 새로운 정치적, 이념적 입장을 이론화한 대작(논문집)이다. 이 책에서 루카치는 당시 서구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주도하던 이른바 속류 마르크시즘을 보다 심원한 철학적 차원에서 재해석함으로써, 현실적, 정신적으로 위기에 처해있던 당시 서구 부르지와 지식인들을 마르크스주의로 이끄는 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변증법적 방법론과 총체적인 세계 이해를 강조하는 이 책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비록한 신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루카치는 1930년대와 40년대에 모스크바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스탈린 시대의 정치적 곤경 속에서도 꾸준히 리얼리즘 이론가로 활동했고, 서구 부르지와 문학과 미학 전통을 논하는 방대한 연구서를 남겼다. 1956년 헝가리 봉기 이후에는 정치적인 사안과는 거리를 두고,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걸작, "미적인 것의 특수성"을 완성하는 데 몰두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이념적인 이유로 금기시되어 오다가 '80년대', 특히 중반 이후 부터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각광받기도 했다. 특기할만한 것은, 루카치를 문학이론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사회과학 이론가 또는 마르크스 해석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소 경직화된 마르크스 해석, 예컨대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역규정성 내지는 상호 규정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따위의 입장에서 문제점을 느낀 사람들에게 루카치는 더욱 각광받았다.

결국 루카치 역시 '80년대' 한국 사회가 지식인들에게 부과했던 사뭇 긴급한 '실천의 필요성' 때문에, 그 이론의 전모가 상세하게 규명되지 못한 채, 90년대에 들어와 지적인 관심권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현재 일반 서점에서는 루카치의 저작 번역서 또는 관련 서적을 찾아보기 힘들고, 중고 서점의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루카치는 '80년대'라는 상황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사상가가 결코 아니다. 문학 이론가로서의 루카치를 단순히 '마르크스주의 문학 이론가" 정도로 규정하는 것도 타당하다고 보기 힘들다. '긴급한 실천의 필요성'이 더 이상 우리를 압박하지 않는 최근의 상황이야말로, 루카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한다.

참고로, 루카치의 저작 번역서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대부분 80년대 중반 쯤에 출간되었다. 그 중에서 "미와 변증법"의 번역자 여균동은 현재 영화 감독으로 활동 중인 바로 그 여균동 선생이다.

"미와 변증법" 여균동 역, 이론과 실천, 1980. / "미학서설" 홍승용 역,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4.
"소설의 이론" 반성완 역, 심설당, 1985. / "레닌" 김학노 역, 녹두, 1985.
"변혁기 러시아의 리얼리즘 문학" 조정환 역, 동녘, 1986. /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 인간사, 1986.
"리얼리즘 문학의 실제 비평" 반성환, 김지혜, 정용환 공역, 까치, 1987.
"독일문학사" 반성완, 임홍배 공역, 심설당, 1987. / "역사소설론" 이영욱 역, 거름, 1987.
"청년 헤겔"(전2권) 김재기, 서유식, 이춘길 공역, 동녘, 1987.
"영혼과 형식" 반성완, 심희섭 공역, 심설당, 1988.
"리얼리즘 미학의 기초이론" 이춘길 편역, 한길사, 1988.

명저산책 ⓒ 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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