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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록일 : 200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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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듯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 121-180)는 로마의 황제였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의 뒤를 이었지만 피우스 황제의 아들은 아니었다. 친가와 외가 모두 로마의 지체 높은 귀족 집안이었으며, 아우렐리우스가 9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집정관을 지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외가에서 자랐고, 외할아버지 역시 집정관과 원로원을 지낸 사람이었다. 피우스 황제의 아버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아우렐리우스를 총애하여 명문가의 딸과 약혼을 시켰지만, 피우스 황제는 제위에 오른 뒤 그 약혼을 파기시키고 자신의 딸과 아우렐리우스를 결혼시켰다. 그리고 죽음이 가까워지자 사위인 아우렐리우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다. 결국 161년에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아우렐리우스가 황제가 되었을 때 로마 제국은 이미 전성기를 지나 쇠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특히 변방 이민족들의 크고 작은 침략에 시달리는 형편이었고,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도 북방 변경 지역의 전투에서 돌아오던 도중의 일이었다. 열병에 걸려 6일 동안 앓다가 180년 3월 17일에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현재의 비엔나 지역에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의 <명상록>은 황제로서의 정무에 종사하거나 전쟁에 참가했을 때 잠깐의 틈을 내어 직접 집필한 글이다. 모두 12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1장은 가족을 비롯하여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1장은 아우렐리우스 자신의 개인적인 기록에 가까운데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배웠다. 베루스 할아버님에게서 격정을 누르는 고상한 참을성을. 아버님에 대한 평판과 그분에 대한 나의 추억으로부터는 겸손과 사내다운 성격을. 어머님에게서는 신실함과 자비심, 그리고 나쁜 행동만이 아니라 나쁜 생각도 삼가는 절제를, 더 나아가 부유한 생활에 탐닉하지 않는 검소한 생활 태도를.'



 
로마의 Campidoglio 광장에 서 있는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동상.

1장을 제외한 나머지 장들은 철학적, 윤리적인 단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 장에 따라 차이가 나는 특징은 없다. 요컨대 체계적으로 12장을 나눈 것이 아니라 편의상 나누어 놓은 것에 가깝다. 때문에 <명상록>을 반드시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으며,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좋다.

'나는 죽은 몸이다, 오늘로서 나의 일생은 끝났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남은 생애를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라'.
(제7장의 56)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갖고 있는 듯이 생각하지 말라. 오히려 당신이 갖고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것들을 골라내고, 이것마저도 갖고 있지 못했다면 얼마나 갈망했을까를 생각해 보라. 너무 기쁜 나머지 습관적으로 가진 것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가진 것을 잃어도 괴로워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제7장의 27)

위의 인용문에서도 볼 수 있지만, <명상록>에는 운명에 대한 순응 또는 체념의 정서가 가득하다.

그러한 정서는 어느 정도까지는 아우렐리우스 황제 자신이 처한 개인적인 상황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쇠락하는 제국의 황제로서 끊임없이 이민족과의 전쟁에 나서야 했고, 가정적으로는 아내가 정숙하지 못하다는 구설수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명상록>의 기본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역시 스토아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아우렐리우스는 후기 스토아 학파에 속하는 철학자로 평가받기도 하며, <명상록> 역시 스토아학파의 정신에 충실한 철학 원전으로 대접받는다.

특히 자연에 순응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스토아학파에서 말하는 자연이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산, 강, 바다 등과 같은 자연이 아니라, 보편적인 우주적 질서를 뜻한다. 좁은 의미로는 각 사물의 본성을 뜻하기도 하는데, 따라서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은 각각의 본성에 따르고 그것을 최대한도로 발휘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다른 것들과 인간을 구별 지어주는 것, 바로 이성을 따르고 발휘하는 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

또한 스토아학파에서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내면뿐이며,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철저하게 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내면 바깥의 사물이나 일에 의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 그러니까 부동심(不動心) 또는 평정의 상태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행복이다. 이러한 스토아학파의 입장은 다분히 현실 도피적이고 소극적인 분위기를 지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철학인 셈이다. 물이 반쯤 차있는 컵이 있다고 해보자.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컵 속의 물의 양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우리가 그것을 바꿀 수는 없다. 반쯤 차 있는 저 물마저도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상과 같은 스토아학파의 정신을 고려하면서 읽을 때, <명상록>의 각 구절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명저산책 ⓒ 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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