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논어>에 대한 명상
등록일:2017-06-09, 조회수:194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미투데이로 공유하기
 

최근에 <논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나이 육십을 바라보면서 힘겹게 반고비를 넘는 동안 인생의 깔딱고개에 마련된 쉼터처럼, 그것은 우연히 만난 것이었다. 몇 달에 걸쳐 이루어진 그 만남을 시간 순서를 무시하고 엮어보기로 한다.


1.

젊은 학인들과의 공부 모임이 있다. 어쭙잖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보니 내가 제일 연장자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고등학교 졸업 이래로 그 무엇에 몰두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저 적당히 심심한 시간을 감당하면서 살아왔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편이다. 책 앞에서, 술잔 앞에서 그리고 이제는 눈을 반짝거리는 젊은 친구들 앞에서 나이 탓을 여러 번 하기도 했다. 후회를 하기엔 지나온 구비가 너무 많았다.

그 모임에서 처음으로 읽은 책이 <논어>였다. 이제껏 논어를 손에 잡은 적이 여러 번이지만 제대로 통독한 적은 없었다. 논어는 독서(讀書)하되 독서(獨書)할 텍스트가 결코 아니었다는 걸 함께 읽으면서 깨달았다. 제대로 전공한 임자들을 만나 젊은 지도를 받으면서 <논어>의 깊은 세계의 일단을 맛보았다.

그때 <논어>를 공부할 겸 붓으로 써보았다. 생전에 인류의 고전인 텍스트를 내손으로 직접 한번 써본다는 건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똥종이로 통했던 누런 스프링 연습장에 쓰기로 했는데 책과 노트를 교대로 보아야 했다. 필사할 때마다 눈이 나빠 애를 먹었다. 진즉에 해둘걸, 노안(老眼)에 대해 크게 후회를 했다.


2.
전남 해남의 천일식당은 남도여행을 갈 때마다 꼭 한 번 떠오르는 식당이다. 지금부터 15년 전 궁리를 세상에 세우고 편집위원과 편집부 직원들과 처음으로 야유회를 갔을 때 한번 들른 적이 있었다. 그때 제대로 된 남도정식에 반해 그 근처를 지나칠 때면 생각이 났던 것이다. 진도 탐사, 완도 탐사를 하느라 제법 자주 드나들었지만 때를 맞추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지난 달에 희귀식물을 조사하러 예정에 없던 진도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어느 산소 주위에서 솔붓꽃의 자생지를 확인하고 나니 얼추 점심 직전이었다. 이동시간을 고려하니 해남 천일식당으로 가면 딱이겠다 싶었다.



마음만 먹다가 천일식당 주차장에 차를 대니 감회가 새로웠다. 개울가의 풍경, 낡은 기와집, 좁은 입구 등 노포(老鋪)의 분위기가 물씬했다. 방 하나를 잡고 들어가니 작은 쟁반에 물컵과 물주전자를 먼저 갖다주었다. 이곳은 정식을 주문하면 부엌에서 차려 밥상을 통째로 가지고 방으로 들어온다.

밥이 오기를 기다리며 방 안을 휘 둘러보았다. 모기를 잡는 파리채가 걸려 있고, 여닫이문에는 이 방을 거쳐간 많은 손님들의 손때가 까맣게 묻어 있었다. 예술의 혼이 어느 지역보다 흥건한 남도 지역에는 벽에 붙어 있는 장식품 하나조차 예사로이 볼 게 아니다. 더구나 이곳은 남도에서 이름난 정식을 재대로 차려내는 오래된 집이 아닌가. 그러다가 나는 나를 내려다보는 액자의 글귀에 묵묵히 시선이 꽂혔다.



나의 선친은 한학을 공부하신 분이다. 일신상의 사정으로 당신의 나이 오십에 이르러 사회생활을 접게 되셨다. 어쩔 수 없이 집에 계시는 동안 젊은 시절에 익힌 고전을 외우는 것으로 큰 소일거리를 삼으셨다. 가끔 시조와 단가를 곁들이기도 했지만 주로 천자문, 대학, 그리고 논어의 좋아하는 구절을 낭송하는 것이었다. 선친의 낭랑한 음성을 들으며 나도 저절로 외우게 된 구절 하나가 있다.

학생의 신분이었지만 책상 앞에도 앉지 않고 딴전을 피우거나, 빈둥빈둥 게으름을 피우거나,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거나, 하여간 당신의 심기에서 조금 벗어나는 행동을 보이면 선친은 혀를 차거나, 한심하게 바라보시면서 이 한 말씀을 던지고는 바깥으로 바람을 쐬러 나가시곤 했다. 행유여력이거든 즉이학문이라!

입에 군침을 삼키며 바짝불고기를 비롯한 산해진미의 남도밥상을 기다리는 나에게 다가오는 벽의 액자에는 선친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해주셨든 바로 그 글귀가 있지 않겠는가. 行有餘力 則而學文. 퍽이나 오고 싶었던 식당에서 뜻밖에도 선친의 향기를 느끼며 각별하게 점심을 먹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도 이 구절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덤으로 얻으면서.

<논어> ‘학이’편 6장에 나오는 이 구절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 則而學文. (자왈, 제자입즉효, 출즉제, 근이신. 범애중이친인. 행유여력, 즉이학문.)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들은 집에 들어가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어른을 공경하며, 말을 삼가되 말하게 되면 미덥게 하고,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며, 어진 사람들을 가까이해야 한다. 이와 같이 몸소 실천하고 여력이 있으면 문헌을 배운다.” (번역은 민음사의 동양고전연구회의 역주를 따름)


3.
며칠 전 경향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보았다. 조금 길게 요약한다.

논어를 읽으면 성격이 보다 긍정적으로 바뀐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부산대 연구팀은 이 논문에서 “논어강독과 같은 높은 수준의 한문교육이 인성증진에 효과를 지닌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대학에서 낮은 수준의 한문교육(교양한문)을 받은 수강생 274명과 높은 수준의 한문교육(논어강독)을 받은 수강생 7명을 대상으로 3년에 걸쳐 실시한 인지적 정서조절 전략검사 결과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논어강독 수강생이 7명이어서 대상이 극히 제한적이지만 각 개인의 오차율이 매우 적은 것으로 확인돼 연구결과의 신뢰도는 높다고 밝혔다. (...) 높은 수준의 한문교육이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울과 불안, 부적응과 고통을 줄이고 정서적 안정감이나 자아존중감을 높이는 데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동양의 인문 고전에서는 정서적 불안을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마음공부의 대상으로 보았다”며 “이번 연구에 한계는 있으나 논어 등 한문교육이 인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고 밝혔다.


4.
촛불정국으로 심사가 어지러운 밤. 잠 이루지 못하고 늦게까지 채널을 돌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가 국회방송에서 다큐를 만났다. <아버지의 집>. 오래 전 KBS 스페셜로 제작된 것을 재방송해주는 것이었다. 경북 봉화의 송석헌(松石軒)을 지키며 있는 어느 노인의 삶을 다룬 내용이었다. 당시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라 더욱 사무치는 마음으로 몰입해서 보게 되었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통하면 유교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권헌조(權憲祖) 옹. 본인은 공부가 부족해 한사코 학자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안동, 봉화 일대의 한학자들이 제자를 자청하며 정기적으로 찾아와 한학을 배운다. 권 옹은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몇 마디 말을 남긴다.

“글을 배우는 게 소학, 맹자, 중용, 대학, 논어... 글을 배워 보면 전부 글이 아니라 사람 일상 생활하는 행동이라... 이 글을 배워가지고 어떤 일을 하고 이 일을 배워서 어떤 일을 하라는 게 부모를 잘 섬기고 어른 공경하고 친구 간에 믿음 있다... 전부 그 뜻이지, 글이 딴 게 아니거든.”

나의 인생에서 논어를 처음으로 맞았던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당시 자유교양경시대회라고 하는 독서운동이 있었다. 학교 대표로 부산시 경시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때 접한 게 공자의 일생이었다. 그 이후 나는 논어에 대해 많이 들었다. 누구의 번역이 좋은가를 따져 한번 읽겠다고 마음을 먹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논어의 명강의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저 한 방이었다. 봉화를 지키는 한 촌부의 말 한마디가 내가 이제껏 접한 그 어떤 논어 강의보다 가슴을 콱 찔러오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나는 그간 논어의 한문을 번역하고, 그 번역을 해석하는 데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나 권 옹의 한마디가 이 모든 것을 소용없게 만들어버렸다. 논어는 글이 아니라지 않는가. 글이 아니라 살아가는 행동이라고 하지 않는가!

논어를 읽어야겠다가 아니라 논어로 살아야겠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