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존재에 대한 싸늘한 슬픔들
등록일:2017-07-14, 조회수:205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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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둥이와 엉덩이는 사뭇 다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자리에 앉을 때 바닥에 닿은 부분을 궁둥이라고 한다. 그러니 엉덩이는 궁둥이에서 조금 허리 쪽으로 오른 부분을 뜻한다. 즉 ‘볼기의 윗부분’을 이르는 말이겠다. 그제 우연히 "엄마 어디가!…어미로 착각해 자동차 졸졸 따라가는 새끼 소“이라는 제목의 영상뉴스를 보았다. 뉴스를 보는데,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슬픔’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음직한 감정이 일어났다. 그래서 몇 자 끼적거려 보기로 한다.

수세식 변기는 궁둥이와 궁합을 잘 맞춘다. 그런 용도에 맞춘 물건이니 그걸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버스의 좌석에 앉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많은 승객들의 궁둥이를 받쳐주느라 싱싱했던 좌석은 어느새 이리도 쭈글쭈글하고 늘어져버렸다. 나의 고향인 거창읍에 가서 완행 시골버스를 탈 때 이 자리를 거쳐 간 많은 이들을 생각하자면 그저 단순한 생각을 넘어 사뭇 산다는 것의 엄숙한 의미를 바로 느끼기도 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한편 좌석버스 말고 어쩌다 친구의 승용차에 올라 뒷좌석에 깊숙이 몸을 놓을 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좌석이야 인체의 궁둥이를 정확히 반영하겠지만, 트렁크를 비롯한 승용차의 뒷부분은 엉덩이를 웬만큼 반영한 결과 저렇게 툭 튀어 나간 것이겠구나. 아니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겠다. 그냥 운전하다 앞차의 꽁무니를 보라. 곡선으로 우아하게 돌아가는 차의 뒷부분은 그 얼마나 엉덩이를 빼닮았는가!

자동차를 누가 처음 고안하고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인체를 반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탈 것임을 고려한다면 이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실제로 차체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인체의 요소를 연상케 하는 것들이 많다. 차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내가 승용차에 대해 가지고 있는 너무나 선명한 하나의 기억 때문이다. 나는 외할머니에 대해 사무친 감정을 퍽 많이 가지고 있다. 이제는 그 먼곳에서 편히 몸을 누이고 계실까. 할머니의 신산스런 삶을 여기서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나하고는 아무런 감정의 교류가 없었던 외조부의 초상을 치를 때의 일이다.

봉분이 거의 완성되는 것을 보고서 산소에서 내려와 옷가지를 불태우고 고인의 영정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지붕 너머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모두들 또 생업의 현장으로 떠나야 하는 순간이 왔다. 내 외할머니의 삶에 참으로 많은 고통을 준 부산 쪽 사람들도 떠났다. 그리고 당신의 친손자들이 떠나려는 참이었다. 외삼촌이 운전석에 오르고, 외숙모도 조수석에 오르며 문을 탁, 닫고 검은 승용차가 떠나려고 할 때였다. 할머니는 싸늘하게 닫힌 뒷문의 유리창을 어루만지면 대성통곡을 하셨다. 이제 홀로 시골집에 남아야 하는 할머니가 뒷창문을 두드리며 손자들의 말똥말똥한 이름을 부르셨다. 경진아! 재환아! 재영아! 선주야!

나는 그때 가까이에서 탁, 차문 닫히는 소리와 부릉, 차의 시동 걸리는 소리와, 휘발유냄새, 매연 냄새를 맡으면서 할머니의 울음소리를 귀로 담아 들었다. 나에게 늘 웃음만 보여주시던, 울 줄은 모를 것 같았던 할머니의 통곡에 나의 가슴도 참으로 미어지는 경험을 곱다시 했다. 그러나 그러한 바깥의 사정에도 아랑곳없이 멈칫, 멈칫거리던 승용차는 할머니의 울음을 뒤로 하고, 붕 나아가더니 점점 속도를 높이곤 골목 어귀를 휙, 빠져나갔다. 가다말고 돌아서고, 돌아서서 다시 오고, 돌아서서 걷다가 다시 돌아 눈물을 감추고, 고개를 숙이다가 하늘을 우러르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여러 번 비틀비틀 바꾸던 그런 이별의 형식이 아니었다.

지금도 분명히 그리고 선명히 간직하고 있는 그때의 생각이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승용차라는 게 남은 자에게 참으로 저토록 매정한 물건이로구나!

앞에서 말한 우연히 눈에 띈 영상뉴스는 가슴을 짠하게 하는 그림이었다. 제목에서는 새끼 소라고 했지만 나에게 익숙한 송아지는 아니었다. 조금 길지만 인용을 해본다.

“아프리카에서 자동차를 어미로 착각해 따라 달리는 새끼 누의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4일 미국 UPI 통신은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한 국립공원에서 촬영된 영상을 소개했습니다. 영상에는 소의 사촌쯤 되는 동물인 누 한 마리가 비포장도로를 힘껏 달리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새끼 누가 앞에 달리고 있는 파란색 승합차량을 따라가고 있는 겁니다. 승합차가 잠시 멈추자 새끼 누는 마치 말을 걸 듯 차량 옆에서 서성입니다. 차량이 다시 출발하자 새끼 누는 다시 열심히 따라 달리기 시작합니다. 목격자들은 "무리에서 멀어진 새끼가 앞에 가던 자동차를 어미로 착각해서 따라간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야생동물 전문가들도 "새끼 누는 자신보다 큰 물체를 보호자로 여겨 따라가는 습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새끼 누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승용차에 치일 뻔 하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자동차를 뒤쫓았습니다. 새끼 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어미 누를 발견하고 어미 품으로 돌아가 많은 사람들을 안도하게 했습니다.”

각인효과라는 게 있다. 새끼 오리가 태어나 처음 움직이는 것을 어미로 알고 졸졸 따라다니는 현상을 말한다. 위의 경우는 각인효과는 아닌 듯 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나에겐 대단했다. 승합차의 뒷모습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어미인 줄로 알고 졸졸 따라다니는 새끼 누의 아담한 엉덩이에서 참을 수 없는 슬픔이랄까, 짠한 마음의 아픔이 느껴졌던 것.

아프리카에서 찍은 영상인데 승용차는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의 투싼이었다. 길도 그 옛날 내가 외가 갈 때 걸었던 황톳길과 비슷했다. 먼지를 일으키며 쌩하고 달려가는 승용차와 먼지에 휩싸여 영문 모르고 달려가는 새끼 누를 보는데 외가의 앞마당이 떠오르고, 외할머니 생각도 났다. 그때 외할머니를 붙들고 계시다가 작년 외할머니 곁으로 아예 거처를 옮기신 내 어머니 생각도 났다. 새끼 누가 차에 부딪힐 뻔할 때마다 나의 마음도 자주 멈칫, 멈칫거렸다.

인간이야 직립하면서 궁둥이를 그래도 반쯤 가리게 되었지만 네 발로 걷는 동물은 엉덩이와 궁둥이는 물론 그 주위를 고스란히 노출할 수밖에 없다. 새끼 누의 가느다란 다리 위에 얹힌 엉덩이+궁둥이를 보는데 일어나는 이 느낌을 무어라 할까. 자동차를 어미로 알고 졸졸졸 따라다니는 새끼 누는 누구인가. 잠시 새끼 누의 어미 역할을 한 승용차는 무엇인가. 그리고 미끌미끌한 영상이긴 하지만 이를 보고 촉발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 보러 바깥으로 나가는 나는 또 누구인가.

......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슬픔이라고 하려다가 존재에 대한 싸늘한 슬픔들이라고 이 글의 제목을 바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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