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몇몇 동사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등록일:2017-08-18, 조회수:168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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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생태학을 공부하는 집담회에 참석했다. 서울대학교 인문관의 어느 교실이었다. 마지막 학창시절, 식물학이었던 전공이 하도 싫어서 참 많이도 기웃, 기웃거렸던 복도를 지나는데 옛 생각이 일어났다. 유인물을 낭독하는 발제자를 따라 읽어가는데 주제와는 옆길로 샌 동사 하나에 새삼 눈길이 갔다. 있다,라는 동사였다. 있다,라는 건 뭘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라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분필가루 날리는 칠판을 벗어나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돌고 돌아서 옛날의 전공을 새삼 다시 찾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그냥 칠판 앞에 쪼그리고 머물렀다면 나는 있다, 라는 이 기초적인 동사에 대해 아무런 질문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있다,라는 말은 내가 이 세상에 하나의 물체로 공간을 차지하며, 시간에 편승하여 모종의 동작을 취하는 근거가 되는 단어이다. 그러기에 있다,의 품사는 당근 동사이다.

있다,라는 말이 없어도 과연 없다,라는 성립할 수 있을까. 있다,라는 단어의 짝패가 되는 말이 떠올랐다. 사전을 뒤적였더니 없다는 형용사였다. 품사는 다르지만 결국 있다와 없다는 같은 말의 다른 표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가지 동사가 궁금해졌다.

가다, 오다, 먹다, 보다, 듣다, 쓰다, 웃다, 울다 그리고 늙다.

사람이 생(生)을 운영하는 방식은 갑자기이다. 우리 모두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왔다가 또 그렇게 갑자기 이곳을 떠난다. 그런 소식을 듣는 방식도 갑자기이다. 전화벨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울리더니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나도 일하다 말고 그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시간 속을 산다지만 우리가 저런 동사들이 아니었다면 세상의 안팎에서 어떻게 한 발짝이라도 몸을 옮길 수 있겠는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듣고 여직원이 조퇴를 했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는 슬픈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나는 먹을 갈아 봉투에 썼다. 謹弔, 삼가 명복을 빕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러 온 직원에게 봉투를 건네며 동사로 이루어진 한 마디를 전했다. 실컷 울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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