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얼굴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등록일:2017-08-31, 조회수:246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미투데이로 공유하기

----- 얼굴, 얼의 굴이다 / 다석 류영모.


1. 최근 고개 위로 빼꼼히 드러난 얼굴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의 생각이 언어의 지평선 위에 드러난 것이라면 얼굴은 몸의 가장 바깥으로 드러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얼굴의 차이가 아니라면 우리는 모두 익명의 섬을 떠도는 안개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2. 생물다양성연구센터에서 주관하는 사할린 쿠릴 꽃산행에 참가하였다. 내 집의 아파트 문을 시작으로 몇 개의 문을 통과하여 출국심사대에 섰다. 심사관은 여권의 얼굴과 내 실제 얼굴을 여러 차례 대조하면서 힐끔거렸다. 그간 살이 빠졌나, 살이 쪘나. 몇 년 전의 사진에서 내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던 모양인가. 저마다 외국을 목적지로 한 여행객으로 꽉 찬 출국심사장. 이렇게 많은 얼굴들 사이에서 정작 내 얼굴을 가장 볼 수 없는 이는 바로 나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사할린에 도착하니 맨 먼저 맞이하는 건 낯선 공기와 함께 낯선 문자였다. 영어 알파벳으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키릴 문자들. 건조하고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러시아 관리들. 말투가 따발총 쏘는 것처럼 보통 빠른 게 아니었다. 그들 앞에 또 섰다. 그 역시 여권의 사진과 내 실제 얼굴을 여러 번 힐끔거렸다. 시간을 제법 끌더니 도장을 쾅, 찍어주었다.

공항은 크지 않았다.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시설들. 공항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머지 일행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장실도 가고,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리는 사람들로 복잡했다. 그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일행 중의 한 분이 말했다. “같은 눈, 코, 귀, 입으로 이루어졌는데 얼굴들이 달라도 참 너무 다르네요!”

사할린에서 우리 여행을 책임져줄 가이드의 이름이 나타샤라고 했다. 여행가방을 중심으로 둥글게 서 있다가 건너건너 들은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순간 문득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떠올랐다. 사할린에서 그 말고 다른 이름을 들었다면 조금 실망했을 만큼 강렬한 ‘나타샤’였다. 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련하게 집적된 미지의 이름이기도 했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이라고 할 때의 그 나타샤!

더구나 여기는 북한보다도 훨씬 더 북쪽의 낯선 곳이 아닌가. 나타샤, 나타샤, 나타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 이름이 내 귓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자동으로 그 이름에 꽂히고 그의 이름에 걸맞는 얼굴을 상상하였더랬다. 가난한 ‘내’가 사랑한 나타샤..... 하지만 무척 기대를 가지고 맞이한 나타샤는 ‘나타샤’가 아니었다. 강원도 냄새가 조금은 섞인 듯한 독특한 억양에 펑퍼짐하기 이를 데 없는 40대 중반의 아주머니였을 뿐이었다. 매너도 친절과는 거리가 멀어 이번 여행을 주관하시는 분과 작은 말다툼도 있었다. 나중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웬만하면 다 나타샤라고 한단다. 웬지 조금 서운하고 허전했다. 아무래도 나의 ‘나타샤’의 얼굴을 보는 건 통일 이후로 미루어야 할 것 같았다.





3. 몇 가족이 어울린 저녁 자리. 생선에 밝은 친구가 강화도 대명항에서 사온 회와 병어찜을 내놓았다. 나는 사할린에서 가져온 포드카를 한 병 지참했다. 포도주로 먼저 입가심을 하는 동안 찜보다는 회에 먼저 젓가락이 갔다.

병어를 아시는가. 나는 그간 접시에 담기는 병어는 여러 번 보았지만 바다 속의 병어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병어는 다음과 같은 생물이다. “병어(Pampus argenteus)는 병어과의 물고기이다. 몸길이 60cm가량으로 둥그스름한 마름모꼴의 몸 형태를 갖는다. 등쪽에 푸른빛을 띤 은백색에 온 몸에 벗겨지기 쉬운 잔비늘이 있다. 주둥이는 뭉툭하고 양턱에 아주 작은 이가 있으며, 머리 바로 뒷부분에 물결무늬가 있다. 병어는 대륙붕의 수심 100m 이내에 많다. 산란기는 4-8월이며, 연안의 수심 10-20m인 모래 바닥에 알을 낳는다. 갑각류·다모류 등을 먹고 살며, 큰 것은 몸길이가 60cm 정도이다. 한국·일본·중국·인도양 등지에 분포한다.”

여러 개의 문을 지나 지금 내 친구네 식탁에 놓인 병어는 크게 머리, 몸통, 꼬리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길쭉한 유선형의 일반적인 생선에 비해 병어는 둥그스럼한 유선형의 마름모꼴이라서 구분이 사실 쉽지 않았다. 사이사이에 들어간 감자와 무도 각별하게 먹음직스러웠다. 분위기가 좀 더 무르익고 친구가 앞접시마다 병어 한 토막씩을 나누어 주었다.

병어는 입이 작은 편이다. 손바닥처럼 넓적한 몸이라서 입이 더 작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 부질없는 일이라는 듯 굳게 입을 다물고 누워 있는 병어. 양념이 벌겋게 되어 분간이 잘 안 되는 병어. 나에게 떨어진 몫은 몸통이었다. 포도주 한 모금을 들이키고 찜으로 안주를 집으려는 순간이었다. 바로 옆자리의 딸이 접시를 바꾸자며 은근하게 말했다. “아빤, 생선 얼굴 좋아하잖아요!” 머리 대신 얼굴이라고 하니 젓가락이 얼른 나아가지를 아니했다.





4. 산에 가서 갖가지 풍경을 마주한다. 좋은 풍경을 보면 자동으로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게 된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일부의 공간을 얇은 시간으로 베어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병어의 살점 하나를 몸통에서 떼내는 행위와도 비슷한 것. 숙성시킨 생선살에서 얇게 회를 뜨는 것도 풍경에서 한 조각의 사진을 떼내는 것과 같으리라.

그 인상적인 풍경들 중에서 한 번씩 떠오르는 게 있다. 남덕유산에 갔을 때의 일이다. 육십령에서 출발해 하루 종일을 꼬빡 걷다가 드디어 하산하는 길. 해도 웬만큼 저물어 사선의 햇살이 내 등을 받쳐주고 있었다. 그래도 무사히 다녀왔다는 안도감에 터덜터덜 걷는 걸음에 마지막 기운을 보탰다. 가까이에서 먼저 도착한 일행들의 목소리도 들리고 우리를 태울 버스의 휘발유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기진맥진한 몸에서 마지막 힘을 뽑아냈다. 이제 모퉁이 하나를 돌면 아스팔트길이 나와 드디어 대장정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길 가장자리 덤불 가까이에 주먹만 한 돌멩이가 뒹굴고 있었다. 그냥 보통의 흔한 돌멩이라서 그냥 지나치려는데, 지나치는 순간에 보니 햇빛에 반사되면서 불상의 얼굴 같은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나는 게 아닌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몇 방 찍었다. 보기에 따라서 그냥 둥글고 맨맨한 돌이기도 한데, 또 어떻게 보면 부처의 얼굴을 조립할 수도 있는 돌멩이. 이날 나는 사진을 찍고 돌멩이는 그대로 두었다. 버스 속에서 몇 번 후회를 했다. 다시 가지 못할 그곳의 돌멩이 부처를 가지고 올 것을....

하지만 집에 와서도 그게 길에서처럼 부처님 얼굴일까. 역시 그대로 두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이후 몇 번 그런 생각이 교차하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설령 돌멩이 부처라 해도 그 자리에 두고 오기를 잘했다는 쪽으로 생각을 완전히 굳혔다. 어렵게 다시 가보면 그 자리에 그 돌멩이 부처가 있을까. 웬만한 빗줄기에는 끄떡도 아니 하겠지만 사람들의 심술궂은 발길을 피할 수 있을까.





5. 가야산은 덕유산과 더불어 내 고향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 가야산은 아주 어릴 적 어머니하고 쌓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민음사 시절, 성철스님의 일대기인 <산은 산, 물은 물>의 출간 허락을 받기 위해 스님의 유일한 혈육인 불필스님을 뵈러 간 것도 가야산 금강암이었다. 한눈에 보아도 불필스님과 성철스님은 얼굴이 많이 닮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난 주 가야산에 갔다. 가야산은 합천에서의 해인사지구만 알고 있었는데 성주의 백운동지구도 거느린 큰 산이었다. 불공을 드리려면 해인사지구, 등산을 하려면 백운동지구를 이용하는 게 좋았다. 백운동의 만물상 능선은 아주 가파른 경사였다. 초입에서부터 땀을 흠뻑 흘려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오르는 동안, 길모퉁이마다 돌을 쌓아놓은 돌담불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안개 사이로 서성거리는 수행승의 모습을 퍽 닮은 돌들. 어는 것은 실제로 사람의 얼굴 모습을 한 것도 있었다. 이날 나는 내려오는 길에서도 바닥에 깔린 돌들에서 사람의 얼굴을 퍽 많이 찾아내었다. 웬만한 돌에서 희미한 얼굴을 조립해내는 재미가 있었다.

요즘 등산 가서 즐길 수 있는 내 취미 하나가 추가되었다. 멀리 암석산에서 큰바위 얼굴을 찾는 것에서부터 발바닥을 간질이는 작은 바닥돌에서 부처님, 내 친구들, 혹은 내 어머니의 얼굴을 찾아내는 것!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