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외국어 유감
등록일:2019-03-12, 조회수:127
화요일의 심리학 - 정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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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래전 일이다. 우리말은 물론 영어도 사용하지 않는 외국 나라에서 근 십여 년 동안 유학생활을 하고 나서 영구 귀국한 직후의 일이다. 어느 모임에선가 선배님 한 분이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에이에스(AS)’란 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는 말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무슨 뜻인지 몰라서 내가 되묻는 바람에 잠시 좌중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귀국 후 재차 ‘우리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데 신경 써야 할 항목 중에 우리말 재학습의 필요성이 대두될 줄이야... 대부분의 탈북민들이 남한사회에 적응할 때 느끼는 가장 커다란 어려움이 바로 남한 말에 뒤섞인 영어 때문이라고 하질 않던가.

내 개인적 소견으론, 요사이 우리 사회에서 외국어(특히, 영어) 남용이 해도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나라밖 세상과의 교류가 보다 활발해지다 보니 외국어를 접하고 사용할 기회가 그만큼 많아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멀쩡한 우리말을 놔두고 굳이 외국어(외국어는 우리말화한 외래어와 구별해야 한다)를 남발하는 까닭은 뭣 때문일까? 어쩌면 외국어 남용이 우리 사회의 기강 해이, 나아가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기분이 좋아지면 ‘업’된 거고, 무리하거나 지나칠 경우 ‘오버’한 거다. ‘사실’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팩트’라고 해야 하는지, 상점이나 식당이 ‘개업’했다거나 열었다고 하면 될 것을 왜 꼭 ‘오픈’했다고 해야 하는지, ‘필요’ 내지는 ‘필요성’ 대신 ‘니즈’, ‘장점’ 또는 ‘혜택’ 대신 ‘메리트’, ‘행사’ 대신 ‘이벤트’, ‘말’이나 ‘언급’ 대신 ‘멘트’, ‘내용’이나 ‘정보’ 대신 ‘콘텐츠’, ‘치유’ 대신 ‘힐링’, ‘사양’ 대신 ‘옵션’... 사례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듯하다... 어째서 ‘동사무소’, ‘동회’란 말이 어느 순간 일시에 ‘주민센터’로 바뀌어야 했는지... 게다가, ‘센트레빌’, ‘리첸츠’, ‘베네루체’, ‘아르테움’, ‘엘스’ 등등, 도저히 뜻도 모르고 국적도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아파트 이름들에 이르면, 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가 하는 한숨이 저절로 뱉어져 나온다... 얼마 전 내가 살던 경기도의 어느 동네에는 ‘캐슬’이 널렸고 ‘첼시’란 이름의 아파트촌도 있었다. 성들이 유럽에만 있고, 첼시란 지명이 영국의 런던이나 미국의 뉴욕 맨해튼에만 있는 줄 안다면 큰 오산이다. 한편, ‘래미안캐슬’이란 퓨전풍 이름의 빌라촌을 접했을 때는 작명자의 빈약한 상상력이 보이는 듯하여 안쓰럽고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뭐니 뭐니 해도 요즘 유행하는 외국어 중에 최고 인기어는 ‘프레임(frame)’이란 말이 아닐까 한다. 언제부터인가 또 어떤 맥락에서 비롯됐는지 알 순 없지만, 요사이 정치인이며 학자, 기자들이 이 말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니 말이다. 서양문학을 전공한 나는 단순히 ‘틀’, ‘골격’이란 뜻을 가진 말이려니 짐작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의미의 외연(外延)이 만만치 않은 듯하다. 대충만 추려봐도, ‘시각’, ‘관점’, ‘구도’, ‘인식’, ‘범주’, ‘패러다임’(외래어) 등등 무척이나 다양하다. 공연히 애꿎은 외국어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보다는 좀 더 쉽고 명확한 우리말로 바꾸어 썼으면 하고 바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악마는 디테일(세부적 사항)에 숨어 있다고 하질 않는가?

자성(自省) 없는 외국어 남발도 문제지만, 한국어와 외국어를 마구 섞어 쓰는 것도 못지않게 문제인 듯하다. 운 좋게 괜찮은 물건이 걸리면 ‘득템(-得 item)’한 거고, 아파트의 좋은 동, 좋은 층은 ‘로얄(royal) 동’, ‘로얄(royal) 층’이라 하고, 모두 수리가 되어 있다면 ‘올(all) 수리’한 거다. 이것들을 모두 붙여서 말해보면, 아파트를 보러 갔다가, 올수리된 로얄동, 로얄층 물건을 ‘착한’ 가격에 구입하면 그야말로 특템한 거다! ‘좋은데이(day)’는 소주 상표이고, 백화점 등지에서 할인가격에 물건을 파는 날을 ‘이득데이(day)’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명 정치인 이름을 대신하여 DJ나 MB로 지칭하고, 농협은 NH, 국민은행은 KB로, 대기업 선경은 SK, LG는 럭키금성 Lucky Goldstar에서 등, 한국어명을 영문 이니셜로 표기하는 것 또한 한국민의 실용주의가 물씬 풍기는 영어의 우리말화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영어가 한국말이 아니라고 했던가?

어느새 나는 ‘꼰대’가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국뽕’? 하긴 요즘도 나는 누군가가 엉터리 존대법(“휴지는 저쪽에 있으세요”, “맞는 사이즈가 없으세요”...)을 사용하면 눈살을 찌푸리고, 아무 때나 말꼬리를 올리면 슬그머니 부아가 돋고, 왜 ‘외제 사치품’이란 말이 ‘명품’이란 말로 바뀌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외제 사치품’이란 말이 국수주의적 태도가 감춰진 편향된 말이긴 하지만, 명품이란 말 또한 페티시즘을 은닉한 못지않게 수상쩍은 말이다. 외국어 남용을 경계할 때 자주 반론으로 언급되는 사례는 일본어의 경우이다. 잘 알다시피, 일본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온갖 종류의 외국어가 범람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의 정체성이나 혼이 사라진 건 아니라는 반론에는 나름 공감하지만, 지나치게 서구 지향적인 일본의 현 모습이 일본어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아시아의 일등시민을 넘어, “명예 백인”으로 자처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일본이 여타의 아시아국들과 조화를 이루기 힘든 연유가 일본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도쿄의 번화가 긴자의 상점 간판의 절반 이상이 프랑스어(영어 간판은 유행이 지났다)로 쓰여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울의 고급 번화가로 손꼽히는 청담동에도 영어 간판이 점차로 자취를 감추고 프랑스어 간판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우리 또한 제2의 “명예 백인”이 되어가는 중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말은 그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하다.

한국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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