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소들이 사는 집에서 개울 건너 무덤까지
등록일:2019-03-25, 조회수:114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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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외곽. 상검 마을 골짜기는 봄꽃들의 잔치판이었다. 꿩의바람꽃, 얼레지, 만주바람꽃, 현호색 등의 활짝 피었다. 골짜기가 깊어서 꽃들의 씨앗이 무척 굵었다. 꼴(풀, 소에게 주는 먹이)을 많이 베어서 망태가 무겁듯 좋은 사진을 많이 찍어서 카메라도 무척 무거워졌다.

흔들흔들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오는 길. 이 봄날에 꽃만이 꽃이랴. 산에서 가장 가까운 맨꼭대기 집은 사람이 아니라 소들이 사는 집이었다. 식구들이 제법 되는 대가족이었다. 이름이 따로 없기에 그저 소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이놈! 으로 통하는 소.

찬물에도 순서가 있듯 이 가족에게도 서열이 있다. 맨 왼쪽부터 차례로 나이순이다. 맨 오른쪽의 출입문에는 올 겨울에 송아지 티를 말끔히 벗어낸 듯한 아주 어린 소다. 늠름하게 입구를 지키고 있다.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남은 볏단을 소들의 주식으로 삼은 탓인지 마구간에서는 냄새도 그리 나지 않았다.

갇혀있는 건 소만일까. 소들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눈빛을 교환할 뿐 나를 피하지도 않았다. 숫제 웬 놈이냐?는 싱숭생숭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소는 나에게 무슨 전해줄 말이라도 있다는 것일까. 입을 씰룩거리기도 한다. 그이들의 사전에 저 낮은 신음 밖에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나를 지나 소들이 바라보는 곳으로 눈을 돌린다. 소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늙은 소에서 송아지까지, 소들의 시선이 한결같이 모이는 곳이다. 그곳은 꿈결이 아니고도 한 달음에 훌쩍 건널 수 있는 곳이다.

매화가 잔뜩 피어 있는 밭 가, 그 밭 사이로 물이 말라버린 개울, 그 건너 옴방한 곳의 양지바른 저 편에는 피안의 언덕인 듯 아늑한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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