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혼혈
등록일:2019-04-02, 조회수:112
화요일의 심리학 - 정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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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최근 벌어진 총기난동으로 무려 40여 명에 달하는 인명이 희생되었다. 범인은 호주 국적의 평범한 젊은 백인남성으로, 총기에 의한 증오범죄의 양상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일례로, 범인 스스로가 사람을 살상하는 장면을 SNS로 실시간 중계까지 했다니, 그야말로 엽기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더욱 놀란 것은 범인이 온라인상에 올려놓은 '선언문'에서 이민자 없는, "한·중·일과 같은 단일민족국가"를 염원한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범인의 추정대로, 이민자를 받지 않는 “단일민족국가”라야 국가의 존망과 번영이 보장되는가? 그런데, 호주나 뉴질랜드처럼 이민으로 수립된 나라일 경우, ‘단일민족’이란 어떤 민족을 지칭하는가? 하물며, 단일민족국가의 사례로 열거한 동북아 삼국이 과연 단일민족국가이긴 한 건가? 잘 알다시피, 중국은 50여 소수민족 문제라는 화약고를 안고 있는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이고, 일본은 또 일본대로 주류를 이룬다는 “야마토 민족” 이외에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오키나와인, 또한 인종이 전혀 다른 아이누 족까지 거느리고 있질 않은가? 물론 백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은 제외하고서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우리나라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라도 고려왕조 후기가 몽골 지배하에 있었던 암흑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암울했던 그 당시, 고려국의 여러 왕들이 혼혈왕이었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는 듯하다. 원종의 아들(미래의 충렬왕)이 원나라 세조인 쿠빌라이 칸의 친딸 제국대장공주과 혼인하여 원의 ‘부마국’이 된 이래, 몽골제국에 충성한다는 의미의 충(忠) 자로 시작하는 여섯 명의 왕들(충렬, 충선, 충숙, 충혜, 충목, 충정) 중 무려 세 명(충선, 충숙, 충목)이 몽골 여인에게서 태어났다. 심지어 몽골의 압정으로부터 고려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공민왕도 충숙왕의 둘째아들인 만큼, 몸 안의 4분의 1은 몽골 피가 흐르는 혼혈왕인 셈이다... 누가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려면 몽골 쪽 사정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고려와 몽골제국 간의 ‘특수관계’가 비단 고려만의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TV 연속극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듯이, 몽골제국을 좌지우지했던 기황후는 몽골에 공녀로 갔던 고려여인으로, 그녀의 남편이 바로 원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혜종(또는, 순제)이다. 순제는 황태자 시절 우리나라 백령도 부근 대청도에서 1년 5개월 동안 귀양살이를 하기도 했다...

물론 국왕이 혼혈이었다는 사실은 내부적으로 상당한 저항을 불러일으켰지만, 국가의 근본이 송두리째 흔들리지는 않았다. 당시의 상황이 특수했고 국가란 개념 또한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한반도에 거주하던 이들이 고래로부터 오랜 동안 바깥세상과 교류했던 경험을 축적해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고려 시대에 예성강 하류에 자리 잡고 있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꽤 융성했다거나(Korea 란 국명은 당시의 '고려'에서 유래한다), 삼국시대 이래로 수많은 외국인들이 귀화하여 한반도에 정착해 살고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284개의 한국인 성씨보다 1.5배 가량 많은 442개 귀화 성씨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고려시대에 충렬왕의 부인인 몽골공주 제국대장공주를 수행하여 입국한 회회인(아랍계)이 고려에 귀화하여 덕수 장씨의 시조를 이루고 망명한 베트남 왕족이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는가 하면, 이보다 가깝게는 조선시대에도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이었던 왜인 장수가 조선에 귀화하여 오히려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크게 공헌함으로써 임금으로부터 김충선(김해 김씨의 한 분파)이란 이름을 하사받았고 또 그 후손들도 외적을 물리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 출신 이주민들이 한국에 정착하여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한자가 아닌 순수한 한글 성씨의 시조를 이루는 경우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고 하니, 귀화성씨의 수는 앞으로 더욱 더 늘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바야흐로 오늘날 우리는 거역할 수 없는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다!

개국의 시조가 외국인과 결혼한 사례로서 설화나 전설이 아닌 사료로써 확인 가능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수로국(금관가야)의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일 것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허황옥은 아유타국(인도) 의 공주로, 김수로왕과의 사이에 수많은 자녀를 낳음으로써 장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인 김해 김씨(또한, 태인 허씨)의 시조를 이룬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해 김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인 김 씨의 40%에 이르고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고 있으니, 한민족의 어머니 중 한 분은 외국인이었다고 불릴 만하지 않은가. 역사적으로 검증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김수로왕 자신 또한 인도인이었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도 인도인이었는지 모른다거나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또한 어쩌면 여진족일는지도 모른다는 따위의 가정은 아직 호사가들의 추측에 머물러 있다.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이 고구려인인지 아니면 말갈족인지 확실히 알 순 없으나, 현재 그의 후손들이 태(太) 씨 성을 간직한 채 경북 어딘가에 씨족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고 한다... 선조의 기원이야 어떻든 간에, 그 후손들이 한국인임에는 틀림없지 않은가. 사실상, 물려받은 피보다 그 사람이 이룬 업적이나 행동, 비전이나 가치관이 더욱 중요한 것은 아닐까. 곧 양위할 예정인 일본의 현 아키히토 천황(125대 천황)은 일본 천황가계가 “백제의 후손”이라 공표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을 일본의 조상나라로 우러러보는 일본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유럽의 거의 모든 왕가가 공통의 핏줄을 나눠가졌다곤 하지만, 자국의 국왕이 물론 우여곡절이야 있지만 자국보다 타국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경우는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성향은 현대에서, 특히 서구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계 이민 3세이지만, 멕시코로부터의 불법 이민을 막겠다는 이유로 국경 장벽을 설치하길 희망하고, 프랑스의 전 대통령인 니콜라 사르코지는 불가리아 이민 2세지만, 그를 이민자의 아들로 간주하는 프랑스인은 단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

일전에 한국을 찾았던 프랑스의 에너지성 장관이나 상원의원은 둘 모두 한국 고아 출신으로, 두 문명권(유럽과 한국)에서 자기 민족을 따지는 셈법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보여줬던 극명한 사례라고 여겨진다. 한국민들은 이제는 유럽나라의 고위직에 오른 두 명의 한국 고아 출신을 ‘한국인’으로 간주하고자 했지만, 두 명의 유럽 고위 공직자는 자신들이 단지 한국에서, 그리고 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을 뿐(그리고, 버려졌다), 어디까지나 현지의 나라 사람임을 거듭 강조해야만 했다... 서구인이 주로 ‘속지주의’의 입장에서, 자신이 성장한 나라의 가치관과 문화에 기반을 두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 사람은 아무래도 핏줄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속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까닭인 듯하다. 몇 해 전,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을 벌인 범인이 재미교포임이 밝혀졌을 때 한국인들이 전전긍긍했던 데 반해, 정작 미국인들은 미국인이 벌인 일에 어째서 한국인들이 미안해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몇 해 전 꼬마 싸이라 불리는 전민우 군이 안타깝게도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밝혀진 사실이지만, 문제의 소년이 조선족이란 이유 때문에 온갖 종류의 차별과 멸시를 겪어야만 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보면, 우리가 스스로 한국민임을 규정하는 기준은 반드시 ‘속인주의’만도 아닌, 뭔가 특별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얼마 전 보도됐던 신문 기사에 의하면,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인종차별 현실과 갈등이 국가적인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이주민들이 국가의 부를 창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공정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에, 인종차별의 정의를 국내법에 포함시킬 것을 권고했다. 말인 즉은 경고와 권고지만, 실은 한국이 인종차별국가임을 낙인찍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국내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왜냐하면 이후에 그 어떠한 후속이나 논평도 언론매체에서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각 백만 명을 넘는 해외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주로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에 종사한다), 그 문제는 시급을 다투는 문제가 아닌 양 소홀히 보아 넘기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가 흔히 자부하듯 한국은 정말로 단일민족국가인가? 내가 보기에, 과거야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시민이야 농촌실정에 비교적 어둡지만, 이제는 농촌이나 어촌 어디를 가 봐도 동남아 출신 여성들이 결혼하여 정착한 사례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국에서 와서 한국에 정착한 이들의 통합 문제도 문제지만, 한국인 배우자 사이에 태어난 수 만의 ‘혼혈’ 아이들은 한국인인가 아닌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저출산으로 인해 앞으로 노동력 감소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불거질 것이 거의 틀림없는 상황에서, 해외 이주 노동자 문제는 앞으로 더욱 더 비중 높은 사회적 현안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차별만이 능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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