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고운사 아거각 앞에서 문 혹은 구멍을 보았다
등록일:2019-04-09, 조회수:78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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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종종 간다. 이번에 가는 절은 경북 의성의 고운사이다. 고운에서 최치원을 떠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 고운이다. 이 유서깊은 절에 불심 가득해서 온 것은 아니다. 이 절에 귀한 꽃이 있다고 한다. 바로 깽깽이풀이다. 아주 귀한 꽃이지만 아직 일러 꽃봉오리만 보았다. 세상에 대한 설레는 기대를 가득 품은 꽃봉오리들, 꽃보다 낫다.




꽃을 잠깐 보고 절 구경에 나섰다. 비등산 골짜기에 푹 파묻힌 아담한 절이다. 일요법회가 진행되는지 대웅전에서 흘러나오는 스님의 독경 소리가 절 마당에 가득 찼다. 신자들이 벗어놓은 신발들 속으로도 부처님의 자비가 빼곡했다.

마당을 거닐다가 한 요사채의 현판에 눈길이 머물렀다. 절에 가면 주련이나 액자의 글씨를 보는 편이다. 我渠閣. 웬만한 절에 다녀보았지만 주련에서 我,자는 쉽게 보았지만 현판에서는 처음인 것 같다. 특히 我의 글씨가 묘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我=手+戈라고 한다. 손에 창을 들고 싸우는 모습에서 “나”라는 개념은 생겨난 것인가. 그 글자에서 수평으로 그은 획 맡으로 남대문 같은 혹은 쥐구멍 같은 허공이 도드라져 보이는 게 아니겠는가. 그 문 혹은 구멍 같은 我자를 보고 있으니 내가 그 어디로 빨려드는 느낌도 잠깐 가졌다. 





집으로 와서 아거각을 검색해 보아도 신통한 정보를 구할 수 없었다. 한문에 능한 친구에게 자문했더니 다음과 같은 답을 주었다. “아거각이라는 명칭은 <표충사보장록表忠寺寶藏錄>에 있는 <서산성사행적西山聖師行蹟>에 있는 임종법어(臨終法語)인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80년 전엔 그가 나였는데 80년 후엔 내가 그대이구려)”에서 유래했다고 하네요. 여기서 '渠'는 도랑이 아니라 '당신, 그대'라는 뜻으로 방언에서 주로 쓰인답니다. 참고하시길......“

아거각에는 담장을 둘렀는데 문이 없다.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라는 표시도 하고 사립문이 있을 법한테 텅 비었다.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아거각을 오래 보는 동안 드나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섬돌에는 신발 하나도 없었다. 다만 지붕 너머 산에 떨어진 낙엽만 바람을 데리고 심심하게 놀고 있었다.....피곤하기는 한데 오지 않는 잠. 깽깽이풀과 아거각을 떠올리며 한참을 뒤척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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