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무등산에서 만난 바위 얼굴들
등록일:2019-05-23, 조회수:259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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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출판계 몇 분과 산행을 했다. 아침 일찍 행신역에서 광주행 KTX를 타면 당일치기로 너끈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미명의 새벽을 가르며 자유로를 달려....운운 이라고 표현을 하려고 하지만 이미 날씨는 동이 턴지 오래다. 새벽과 아침의 경계가 모호해서 이미 낮의 기운이 완연했다.

행신은 幸信이다. 그러니 행운을 담은 우편엽서에라도 실리는 느낌으로 기분 좋게 기차를 탔다. “마음을 잇다, 당신의 코레일.” 좌석의 등받이마다 정다운 캐치프리이즈가 있다. 행신과 광주를 잇는 기차에서 저 구절을 발견하니 자연스레 며칠 전 귓가에 솔깃했던 뉴스 하나가 떠올랐다.

며칠 전은 518광주민중항쟁의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많은 이들이 광주로 운집하고 그에 따른 뉴스가 생산되었다. 주말이었던 그날, 나는 삼척 도계의 어느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건넜다. 석회암이 만든 웅장한 동굴인 환선굴 뒤편의 깎아지른 높이의 덕항산을 오르려고 이곳에 온 길이었다. 낯선 곳에서 일어나면 첫 동작은 으레 텔레비전을 켜는 일이다. 오늘의 날씨도 살필 겸 자동으로 YTN을 켜는데 그 뉴스가 나왔다. 건조한 소식을 전하는 촉촉한 말이 귓전을 울렸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전야제부터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어도 그칠 줄을 모르고 거세게 망월동의 대지를 적십니다. 그런데 지난해처럼 기념식 시간이 되자 거짓말처럼 비는 잦아들었습니다. 하지만 빗물 대신 이제는 눈물이 행사장을 적셨습니다....”

비는 하늘에서 오는 물질이다. 비는 곧 물이다. 물은 천하에서 가장 부드럽다. 굳이 노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물은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간다. 낮은 곳은 서러운 곳. 그렇게 물은 하늘과 유족의 가슴을 이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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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광주는 꼭 한 번 가보아야 했다. 망월동 묘지도 꼭 참배해야 했다. 그리 어려울 일도 아니지만 막상 아무 연고도 없는 마당에 쉬이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회가 왔다. 친구들과 모임에서 무등산 등산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적극 찬동했다. 그리고 무등산을 조금은 감격스럽게 오른 뒤 육전으로 저녁을 먹고 광주에서 하룻밤을 잤다. 다음날 광주역에서 오후 기차시간에 모이기로 하고 각자 흩어졌다. 나는 아내와 함께 망월동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을 살려 경향신문의 연재코너인 <꽃산꽃글>에 다음의 글을 올렸다. 


무등산은 시를 통해서 내게로 왔다.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에서의 청산이 바로 그 무등산. 청산은 부산에도 있었다. 재수생을 가르치는 학원 이름. 청산학원을 통과하고 부산역을 떠난 이후 세월의 때를 묻히면서 나도 세상의 무릎 아래 정착했다. 무릎은 주름이 심하게 잡히는 곳이라서 그 문양이 아주 복잡하다. 광주도 광주였지만 무등을 만나야겠다는 건 오래된 생각이었다. 여름이 되면 무등산 수박에 침을 꼴깍 삼키겠지만 그보다 먼저 5월이 오면 무등산 꼭대기 생각이 났다. 기회가 왔다.

5월 첫 주말에 대학동기들과 원효사-서석대-입석대-증심사의 코스를 잡았다. 초입에는 매미가 승천하는 모습으로 신나무 열매가 잔뜩 달려 있었다. 특이한 식물이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애기나리, 현호색, 광대수염 등등의 흔한 야생화들뿐. 광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망월동 묘지를 참배했다. 

기념관을 둘러보는 동안 <허삼관매혈기>로 유명한 작가 위화의 산문집 <영혼의 식사> 중 한 대목이 떠올랐다. 그는 ‘한국방문기’에서 이렇게 쓴다. “나는 광주항쟁 과정에서 희생당한 열사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 내가 본 광주항쟁 희생자의 사진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눈이 감긴 것이 없었다. 그들의 무심한 눈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 후로 나는 그들의 눈이 한국의 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눈에 꽃가루라도 들어갔나. 눈두덩을 비비면서 묘지정문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가로수가 만개해 있었다. ‘입하(立夏)’ 무렵 꽃을 피운다고 그렇게 불린다는 나무. 

흰 쌀밥이 쌓인 것 같아 ‘이밥’에서 유래했다는 나무. 이팝나무였다. 때맞추어 고맙게 핀 꽃은 뚜렷한 특징이 있다. 네 갈래로 길쭉하게 갈라진 꽃잎 하나하나가 흐느끼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내 눈에는 꽃잎이 꼭 만장(輓章) 같은 이팝나무.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교목. 

---경향신문 2014. 5.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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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에 오를 때는 원효사에서 올랐는데, 이번에는 증심사에서 올랐다. 증심사가 增心인 줄 짐작했다. 마음에 더하고 빼기가 있을까 싶었는데 내 짐작이 틀렸다. 증심은 證心이었다. 마음의 그 무엇을 증명하라는 것인가.

녹음이 짙고 나무들이 햇빛을 짊어지고 그림자로 뛰어내렸다. 얼마나 부드러운 그림자인가.
흑백의 풍경은 그 어떤 총천연색의 광경보다도 가슴을 찌르는 서늘함이 있다. 잘 닦이고 반질반질한 길을 오르니 수령 500년의 어마어마한 느티나무가 있다. 그곳에 적혀 있기를,

이 장소는 2007년 5월 19일 고 노무현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최초로 무등산의 대표적인 탐방로, 증심사 장불재 3.5km를 오르면서 산행 중인 시민들과 따뜻한 인사를 나누며 쉰 곳이다. 이 길은 시민의 제안으로 도립공원 당시 ‘무등산노무현길’로 명명되었다.

장불재까지 오르는 길은 편안하고 넉넉했다. 완만한 경사가 죽 이어졌다. 울퉁불퉁하기는 했지만 돌계단이 잘 나름의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런 돌, 저런 돌을 골라 짚으며 올라
갔다.

최근 이런저런 곳에 꽃산행을 다니면서 전에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다. 산에 가면 돌을 만나기가 일쑤인데, 그 바위나 돌에서 사람의 얼굴 모습이 자꾸 그려지는 것이었다. 요즘은 아예 작정을 하고 얼굴을 찾고, 바위 얼굴을 수집하기도 한다.

오늘, 오월의 광주, 무등산, 노무현등산로를 걷자니 감회가 아니 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위에 인용한 소설가 위화의 산문의 한 대목이 아니 떠오를 수가 없었다. 무심한 돌, 무심한 얼굴. 흙으로 녹아들어가는,,,,,, 어디에서 본 듯한..... 사진으로 본 듯한, 희생자들의 무심한 눈 같은.... 바위 속, 돌 속 얼굴들을 여기에, 여기에 삼가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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