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맞춤법
등록일:2020-01-28, 조회수:200
화요일의 심리학 - 정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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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기업의 인사담당자 열 명 중 아홉은 맞춤법이 틀린 자기소개서를 제출한 입사 지원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맞춤법뿐 아니라, 신조어나 줄임말 사용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겨준다고 한다. 취업전선에 뛰어든 젊은이라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AI 면접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점점 더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사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어디 이뿐일까? 연인 사이에서도 상대방이 구사하는 우리말 맞춤법이 과도하게 틀리는 경우엔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을 거둘 수도 있다고 하니, 이 또한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옥에 티’(‘옥의 티’가 아니다)라고나 할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상 우리말 맞춤법 실력이 그 사람의 교육이나 교양 정도, 역량, 나아가 그 사람의 품격으로까지 확대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순원의 단편 「내일」에 등장하는 불운한 사내처럼, 잇사이(‘이 사이’가 아니다)에 낀(‘끼인’도 무방하다) 고춧가루(‘고추가루’가 아니다) 탓에 여친(‘여자친구’의 줄임말)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요컨대, 취업전선뿐 아니라 연애전선에서도 살아남으려면, 이제는 토익·토플 점수뿐 아니라 우리말 맞춤법에서도 웬만큼(‘왠만큼’이 아니다) ‘스펙’을 갖추고 있어야 할 듯하다. 그럼, 어떡해(‘어떻게’가 아니다) 해야 할까?

우리말 맞춤법이 채택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원칙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에 있다.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 규정되어 있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전 국민이 매일 방송을 통해 듣고, 또 학교교육을 통해 전수되는 말이 바로 표준어이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우리의 한글은 무엇보다 먼저 소리 나는 대로 적는 표음문자(表音文字)다. 십수 년 전에 우리말 맞춤법에서 ‘–읍니다’가 ‘-습니다’로 개정된 것 또한 바로 이 같은 소리 중심 원칙에 의거해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말이 반드시 소리 나는 대로 적게 되어 있지도 않을뿐더러, 따라야 할 ‘어법’ 또한 상당히 복잡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꽃’이 /꼳/으로 발음되고, ‘늙다’가 글자 본래의 소리값과는 달리 /늘따/로 발음되지 않는가? 나아가, 한글이 소릿글이긴 하지만, 우리말 어휘의 상당수가 한자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머나먼 타향을 뜻하는 이역만리(異域萬里) 대신 ‘이억만리’라고 한다거나, 부인에게 사과(謝過) 대신 ‘오과’, ‘육과’를 하고 싶다는 말(「응답하라 1988」) 따위는 한자어가 가진 뜻을 무시하고 순전히 우리말의 소리에만 집중한 결과에서 빚어진 맞춤법상의 오류이다. 『춘향전』의 월매가 거지꼴이 되어 나타난 사위를 가리켜 “서방인지 남방인지” 하며 신세를 한탄하고, 또는 어느 농부가 변장한 이몽룡에게 “이도령인지 삼도령인지...” 하는 등의 말 또한 우리말의 소리에 초점을 맞춘 전형적인 재담이다. “아맹어사”, “괴자번호”, “에어컨 시래기”, “고정간염”, “김을 파손”, “입옥굽이〔이목구비〕, “영맛살이〔역마살 驛馬煞 이〕”, “혜자정리〔회자정리 會者定離〕”, “포복졸도〔포복절도 抱腹絶倒〕”, “장례희망”, “진짜 더 이상은 한 개다〔한계 限界 다〕”, “화장품에 바람물질 들었다”, “갈수록 미모가 일치얼짱〔일취월장 日就月將/ ‘얼짱’은 미인을 뜻하는 비속어이다〕” 따위는 의도적인 말재간이기는커녕, 우리말 어휘를 이루는 한자어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말의 소리에만 초점을 맞춘 맞춤법상의 오류의 사례들이다. 누가 한자어를 중국 글이라 했는가... 아무튼, 지적 수준 내지는 교양 정도를 의심해봄직한 그릇된 맞춤법 사례들로 보인다. 의도한 것은 아닐 테지만, 폭소를 자아내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 “일해라 절해라 한다〔이래라 저래라 한다〕”, “힘들면 시험 시험해라〔쉬엄쉬엄해라〕, “삶과〔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너는 내 인생의 발여자〔반려자〕다”, “나물 할 때 없는 맛며느리〔나무랄 데 없는 맏며느리〕” “사생활 치매〔침해〕”에 이르기까지, 이쯤 되면 잘못된 맞춤법이 여느 재담 못지않은 번뜩이는 독창성을 드러낸다. 비록 소리에 중점을 둔 맞춤법상의 오류이긴 하지만, 나름의 내적 인과율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라저래라 명령조로 속박하는 갑질 행태가 일과 절이란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표현되는가 하면, 청소년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쉼 없이 이어지는 시험이란 질곡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또는 고인에게 정중함을 나타내는 표현인 “삼가”란 어려운 말 대신 ‘삶’을 내세워 죽음과 대비시키기도 하고, ‘반려자’를 내 발치에서 시중드는(또는, 활발하게 발을 놀리는) 여성으로 폄하하여 그리기도 하고, 나물 다듬는 고역을 감내하지 않는 며느리를 “맛며느리”란 말에 빗대 꼬집고 있지 않은가? 나아가, ‘사생활 치매’라고 쓴 어느 어린 여학생이 친구와의 동성애를 의심하는 엄마를 겨냥해서 이 말을 썼다면, 이는 사생활 침해를 범한 엄마에 대한 비난이자 ‘치매’나 다름없는 넋 나간 행위임을 고발하는 셈이기도 하다. 프로이트가 위트 Witz에 대해 언급했던 동일한 기제, 다시 말해 맞춤법상의 오류(유사한 소리)를 빌미 삼아 억압돼 있던 엄마에 대한 공격성이 잠시 표면으로 돌출한 셈이 아닌가. 나는 개인적으로, 맞춤법상의 오류가 정신분석학적으로 더할 나위 좋은 분석 사례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이처럼 우리말 맞춤법이 내세우듯 표준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기로 한 원칙은 실상 따르기가 수월하지 않다. 더욱이, 매단어마다 한 칸씩만 띄우면(‘띄면’도 무방하다) 그것으로 족한 영어와는 달리, 조사와 어미 등이 첨가되는 우리말의 띄어쓰기 원칙 또한 적잖은 혼란과 어려움을 자아낸다. 사실상, 보기보다 무척이나 까다로운 우리말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어쩌면 언어가 가진 본연의 문제라기보다 가독성, 즉 읽고 쓰기에 편하도록 하기 위한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우리말 맞춤법이며 띄어쓰기 원칙을 깡그리 무시할지라도 얼마든지 우리말 해독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서(‘써’가 아니다), 다음의 문장을 읽어보자.

밬휘이따고훼서 곡종헷는대 보쥔모태서용
거런데 위불들이 넘흐the love
멀휘카락붙어있고 얼룩이꼬 굴헤요
넘집집해서 긴팔긴바지 이버써여...

위에 인용한 대목은 “한국인만 읽을 수 있다는 숙박후기, 외국인에게 보여주면?!”이란 제목의 글로서(Cake English, 유튜브에서 인용), 한국인이라면 해독 가능하지만, 제아무리 한국어가 능숙한 외국인이라도 올바른 해독이 거의 불가능한 문장이라고 한다. 또는 한국어 글자들의 순서가 온통 뒤바뀌어 있다면 어떨까?

이말거고 지처금럼
네짜글씩 순바서꿔 써돼도요.
이하상게 한인국은 읽수을가 있든거요.
이역거시 번기역론 안와나요.
재있미는 훈정민음 세대종왕 만세만다.

이 대목은 “한국인만 읽을 수 있는 글을 본 외국인들의 반응”이란 제목의 글(어셈코리아, 유튜브에서 인용)로서, 한국인이라면 네 글자씩 순서를 바꿔 써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고안된 문장이라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위에 소개한 두 사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계적인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적어도 모국어에 관한 한 선천적으로 ‘언어획득자질’을 타고난다고 한다. 다시 말해, 모국어는 학습이 아니라 습득을 통해, 거의 저절로 얻어진다는 의미이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완전히 무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라면 위의 두 대목을 이해하는 데 그리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역으로, 우리말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갖춰질 경우 마그마 상태의 한국어의 가독성이 놀랍도록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요컨대, 우리가 우리말에 관한 한 교양인으로 처신하려면, 최소한의 규범인 맞춤법이며 띄어쓰기의 속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말 교양인인가?

언어의 문제가 무척이나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어 언어 또한 변화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의 가치관이 복잡하게 바뀌는 만큼 언어 또한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지배하는 가장 커다란 법칙은 바로 “경제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꾀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언어의 올바른 운영이든(‘이던’이 아니다) 그릇된 운영이든 간에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이다. 바로 이 같은 경제원칙의 영향 아래 오늘날의 우리말은 급속도로 변화하는 중이다. 예컨대, “여친(여자친구)”, “웃프다(웃기면서 슬프다)”, “엄친아(엄마 친구의 자녀 = 얄밉도록 완벽한 젊은이)”, “딸바보(딸한테 사족을 못 쓰는 바보 같은 부모)” 등은 음절이나 의미의 축약을 통해 새로이 탄생한 줄임말 내지는 복합어 들이다. 우리말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위에 소개한 대부분의 맞춤법 오용 사례들 또한 이미 알고 있는 유사 단어를 빌어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경제원칙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IT 산업의 급격한 발달에 따른 단순하고 기발한 신조어들이라고 해서 굳이 우리말 맞춤법에 편입되지 못하리란 법은 없는 듯이 보인다. 과연 현재의 우리말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이 같은 경제원칙을 얼마만큼이나 수용하고 있는가? 행여 따라잡는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또는 성가실 정도로 너무나 많은 규칙이나 예외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말 맞춤법 실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을까? 신속한 성형수술을 원하는가, 아니면 보다 근원적인 외과수술을 원하는가? 우리말 맞춤법이나 문법이 그저 우리 몸을 감싸는 표피 정도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이들이라면 해결책은 너무도 간단하다. 컴퓨터나 휴대폰을 통해 검색해보면 단 10초면 해결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고 우리말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해결책을 원한다면 지속적인 독서를 ‘강추’(강력하게 추천)한다. 가-즈아, 도서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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