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해변가의 칡넝쿨을 붙들고
등록일:2017-06-02, 조회수:227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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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내려와 시간이 남을 때 바닷가로 가서 해변식물을 조사하기도 한다. 오전에 남해 탐사에 나섰다가 오후에 도착한 어느 한적한 바닷가. 여느 해안가처럼 멀리 바다가 있고 설레는 물은 출렁이고 있었다. 수평과 수직이 이 자연에 어디에 따로 있겠느냐만, 부분을 떼서 카메라에 담으려니 그게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나의 자세에 따라 기울어지기도 하는 수평선. 하지만 어디로 물이 왈칵 쏟아질 일은 없기에 바다는 바다이다. 중용(中庸)에서 자연을 예찬한 심오한 메타포인 마지막 대목이 생각난다. 도올 김용옥으로 하여금 눈물을 줄줄 흘리게 만들었다는 바로 그 구절이다.

載華岳而不重(재화악이부중)
振河海而不洩(진하해이불설)

화악산을 업고도 대지는 무거운 줄을 모르고,
큰 바다를 품에 안고 있어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그런 바다를 바위에 앉아 오래 바라보았다. 바다와 바위는 무슨 관계일까. 겉만 볼줄 아는 나의 눈으로 그 관계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서로 여기에 함께 존재하는 것을 너머 그 어떤 관계가 있을 것도 같다.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의 생각은 옆길로 빠져들었다.



바다 그리고 바위. 바위에는 이 든든한 물체를 의지처로 삼아 살아가는 식물도 있다. 옆으로 기는 돌가시나무, 찔레나무와 비슷해서 땅찔레나무라고도 하는 덩굴식물이다. 산마늘은 어쩌자고 이런 해변에까지 진출해서 자라나는가. 돌틈 사이로 갯메꽃도 보인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흔한 칡넝쿨이 길게길게 바위를 짚고 넘어왔다.

함께 갔던 꽃동무 한 분이 길게 뻗어온 칡넝쿨의 끝을 손에 쥐고 한 말씀 하신다. 이 칡은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어린 잎은 장아찌를 만들어 먹구요, 줄기는 밧줄로 안성맞춤이구요, 줄기 끝은 부드러워서 나물로 해 먹을 수 있대요. 뿌리는 갈근이라 하여 즙으로도 먹고요, 탕으로도 먹구요. 왜 아니겠는가. 그렇게 따로 조제할 것도 없이 그냥 흙 털고 껍질 벗겨 뿌리를 그냥 우적우적 씹어먹어도 된다. 소먹이 하러 가서 입가에 칡국물이 줄줄 흐르던 시절이 떠오르고 입 안에 침이 흥건히 고이면서 입맛을 다시게 했다.

칡넝쿨의 끝은 부드러웠고 야들야들 했다. 억세고 질긴 줄기와는 퍽 달랐다. 산에서 내려와 이곳에 오기까지 몇 개의 바위를 지나왔는가. 까끌까끌한 표면은 미끄러운 바위를 잡는 데 유용할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뿌리는 내 사타구니를 파고들더니 무릎 위로 기어나왔다. 이 자리에서 오래 명상이라도 하면 나를 더욱 매진하라고 꽁꽁 묶기라도 할 태세였다.

넝쿨의 끝을 가만 바라본다. 미세한 털이 마치 짐승의 부드러운 가죽 같다. 그 끝에 발톱이라도 달려 있을 것만 같다. 넝쿨은 또 몇 줄기로 갈라지려는지 분지할 준비를 하고 있다. 피부가 시퍼런 것은 피부가 멍이라도 든 것일까. 넝쿨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 거대한 땅을 가뿐하게 짊어지고, 이 광활한 바다를 안온하게 부둥켜안고 있는 그 어떤 존재의 꼬리를 붙들고 있는 듯한 이 기분, 이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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