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출근길, 곤충 엑스(x)의 행진
등록일:2017-06-23, 조회수:232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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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집한 도심과는 조금은 낯선 파주 출판도시의 출근길 풍경이다. 도로에는 차가 드물고 인도에는 행인이 넉넉하게 다닌다. 뜬금없이 부처님 경전의 한 말씀을 싱겁게 인용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했던가. 요즘은 태양도 일찍 출근하는 모양이다. 겨울이라면 깜깜 신새벽인데도 날이 아주 밝다. 아침 일찍 엉덩이를 걷어차는 해의 기세에 눌려 나는 밭 갈러 가는 소처럼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 무소처럼 에잇, 하루의 뿔을 빨리 들이 받아버리자!

차가 휭 지나가고, 서울로 가는 차를 타러 가는 이가 앞서 걸어가고,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이다. 궁리출판의 화단에는 출근할 필요가 없는 식물들이 오롯하다. 부산의 꽃동무들이 챙겨준 야생화들이다. 어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꽃들이 아니다. 손바닥만 한 화단이지만 생태계가 그런대로 귀하고 다양함으로 채워졌다.

가장 먼저 심은 히어리는 봄이 무르익기도 전에 노란 꽃을 오종종 달고 있더니 벌써 열매가 야물게 익어간다. 잎도 떨어질 법도 하건만 단풍이라도 들 듯 절정의 색으로 치닫고 있다. 관목이지만 쑥부쟁이보다 키가 작은 좀히어리도 안간힘을 다해 올해의 결실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에 노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를 심었다. 생강나무의 씨를 던져두었으니 운이 좋다면 몇 년 후에는 나무다운 덩치를 자랑하며 노란 꽃을 피워 히어리와 색상을 같이 맞춰주겠지.

지금 화단은 보라색이 단연 우세하다. 용머리가 용의 머리 같은 꽃을 들이대고 있다. 화단 앞을 지나치는 행인들을 이러저리 둘러보는 태가 예사롭지 않다. 어제는 덩치 큰 벌이 날아와서 용머리를 마음껏 독점적으로 희롱하고 놀았다. 용머리의 꽃은 벌이 입장하기에 꼭 알맞은 구조를 하고 있다. 영문을 모르고 꽃안으로 들락날락거리는 벌을 기특하다고 쓰다듬어주는 용머리. 벌에게 꽃가루를 묻히는 중인 것이다. 그리고 꿀풀도 층층의 다락방 같은 구조의 꽃들마다 홑잎의 잎술을 내밀고 있다. 용머리와 꿀풀의 압도적인 보랏빛 꽃들이 철,철,철 궁리 화단에 흘러넘친다.





그 외 식물들의 이름을 호명해본다. 돌단풍, 부산꼬리풀, 왜솜다리, 꽃무릇, 목련, 대청부채, 나팔꽃, 명자나무, 만병초 그리고 동백나무. 내가 심지 않았는데도 슬쩍 끼어든 녀석들도 있다. 쇠고비, 토끼풀, 씀바귀, 쑥, 민들레, 엉겅퀴.

그런 다양한 숨어 있는 식물들을 일별하고 건물 안으로 진입한다. 궁리 건물은 중앙에 중정(中庭)이 있다. 건물의 순환을 위해 가운데 커다란 숨구멍을 틔워놓은 것이다. 건물을 설계하는 동안, 저 중정에 무엇을 놓을까 퍽 고민을 했더랬다. 가장 무난한 게 나무를 심는 것이다. 하지만 바닥은 시멘트라 큰 나무를 심을 수는 없었다. 옹기종기한 화분을 갖다놓는다 하여도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궁리해본 것 중의 하나가 무덤 형태를 조성해보자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썰렁하지만 아담한 봉분 하나를.

하지만 막상 그려려고 하니 많은 생각이 찾아왔다. 의아하게 생각하고 조심히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다. 나 자신도 그 생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지를 못하게 되었다. 과연 무엇이 어울릴까. 찾아오는 손님들이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실제 그리 하자니 엄두가 잘 나지 않기도 했다. 이럴 때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고전적인 방법이 있다. 그냥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궁리의 중정은 그냥 그대로 두었다. 정원이 아니라 폐허로 남은 셈이겠다.

바로 출입문을 열고 2층 사무실로 올라가려다가 오늘의 절기를 꼽아보니 하늘을 한번 우르러 보아야 마땅한 날이었다. 하늘을 보러 중정의 한 가운데에 섰다. 그 바람에 중정의 구석도 보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바람처럼 지나갔을 터인데 오늘의 절기가 중정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었다. 그냥 조용하고 아무것도 없는 곳인 줄로만 알았던 중정, 아니 폐허. 바람만이 고요히 머물다 심심해지면 그냥 떠나버리는 폐허인 줄로만 알았던 중정.

식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순한 녹색의 풀이 아주 드물게 자라고 있다. 그것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라 연약하기가 그지없는 식물들이다. 그때다. 모서리에 뭔가 꾸물거리는 물체가 포착되었다. 나말고 움직이는 게 이 폐허를 아침부터 찾아온 셈이다. 싸늘한 벽돌이 즐비한 세계에서 움직이는 동물이 꼼짝거리는 동물을 알아보고 반가운 신호를 보낸 셈인가.





나는 지금 눈앞을 통과하고 있는 이 곤충의 이름을 모른다. 겨우 아는 몇 개의 곤충이름을 소환해서 머리를 굴려보지만 뽀족한 방도가 없었다. 도감을 뒤진다한들 동정(同定)할 자신도 없었다. 일단 알아낼 때까지 임시로 ‘곤충X’이라 부르기로 하자.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곤충X를 한참 보았다. 녀석 아니 곤충X는 바닥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를 따라 부지런히 행진하고 있었다. 지금이 출근시간대이라서 그런지 곤충X도 부지런히 출근하는 포즈를 취하는 것 같았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모래를 뒤집어 쓴 낙엽도 그대로 통과했다. 곤충X는 오로지 가야만 한다는 듯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낙엽의 방을 떨치고 나왔다. 작은 벽돌이 그리는 직사각형 무늬가 사방으로 뻗어가는 곳에서 방향을 잡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곤충X는 제 갈 길을 분명히 아는 자의 단호한 모습으로 추호의 망설임 없이 구석으로 구석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곤충X에게도 들이받아야 할 무소의 뿔이 있는 것 같았다.

곤충X가 가야 할 곳이 구석이라면 나의 목적지는 2층 사무실이었다. 이쯤에서 곤충X와 헤어지기로 했다. 곤충X가 홀로 가는 길은 참으로 헷갈리는 길이었다. 사방의 색상도 거무튀튀한 단색이었다. 무릎을 펴고 일어서자 곤충X는 순식간에 작아졌다. 금방 블록의 색깔에 동화되더니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어쨋든 지금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이 각자의 지정된 자리를 찾아 부지런히 이동하듯 곤충X도 열심히 여섯 다리를 놀리는 중!

뒤로 서서히 빠지자 중정의 모양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 전모를 보게 되었을 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가 일어났다. 얼마 전 궁리식구들과 공주 무령왕릉 고분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본 석실의 모습이 이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금 여기는 지붕이 없을 뿐, 그 어떤 무덤의 안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고? 얼마나 여기에 머무를지 알 수 없지만, 살아 있는 동안 조금은 터무니없는 그런 생각을 할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그런 약간의 비약이 가능한 공간이 곧 중정이 아니겠는가. 벌써 두 번이나 찾아온 뜬금없는 내 생각을 응원이라도 해주듯 하늘에서는 새벽기운이 묻은 싱그러운 햇살이 푸짐하게 쏟아져 내려왔다. 조금은 옴방한 공간인 중정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그 맛이 조금은 색다르다. 곤충X는 어디까지 갔을까. 다시 한 번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은 하지(夏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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