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명행족 명행족 명행족
등록일:2017-12-13, 조회수:542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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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주 그간 말로만 들었던 영남알프스를 걸었다. 석남사 지나 배내고개에서 출발해 배내봉-간월산-간월재-신불산-신불재-영축산-배내골까지. 우리의 고유한 지형에 공연히 외국의 유명세를 끌어대는 게 조금 못마땅했지만 까짓 그런 것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들의 웅장함이 너무 좋았다. 멀리 동쪽으로 애달픈 국토의 막내의 호젓한 모습으로 울릉도를 점찍어놓고 그 아쉬운 마음을 일으켜 이렇게 바다로 뛰어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웅장한 모습을 일으켜 세웠는가.

산들은 사람을 위협하지도 압도하지도 아니했다. 시든 억새가 누렇게 나부끼는 게 마치 살진 소의 두둑한 등허리처럼 보이면서 포근한 능선이 굽이굽이 잇닿아 있었다. 신불산 지나 영축산을 지날 땐 포행이라도 하는 듯 불심의 한 자락에 흥건히 젖기도 했다. 하루를 마감하는 무렵 영축산 정상에서 저 아래 통도사를 바라보면서 이런 대목을 떠올릴 땐 더욱 그러하였다.

“영축산이란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있던 산의 이름이다. 이 산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法華經)』을 설한 곳으로 유명하며 수행자와 독수리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영축산이라 불렸다. 그래서 이 산의 모양이 불법을 직접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 해서 통도사라 한다.” (통도사 홈페이지에서 인용함)

도시에서는 지금 걷고 있는 길도 사람들 발길에 묻히기 마련인데 산에는 오전에 걸었던 길이 오후에도 보인다. 통상의 등산이 삼각형의 꼭지점에 올랐다가 반대편의 빗변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산행은 처음의 높이에 도착한 후 계속 잇닿은 산들의 둘레를 순례하듯 걸은 셈이었다.

걷는 게 좋다. 많이 걸어야 생각도 많아지고 궁리가 깊어지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바람이 휭휭휭 부는 산길. 눈이 아득하도록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었다. 하늘로 걸어가는 나무와 춤추는 억새 사이로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 들리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우리는 그를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나요?
Before you call him a man?
(.........)
산은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야
How many years must a mountain exist
씻겨서 바다로 갈까요?
Before it is washed to the sea?
(.........)
친구여, 답은 바람 속에 있어요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그답은 바람만이 알아요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어둑해진 곳에서 적응하느라 미처 몰랐는데 산을 빠져나오고 전기불빛에 눈을 적신 뒤, 뒤를 돌아보고서야 해는 이미 지고 세상이 깜깜해진 줄을 알았다. 오늘 그래도 제법 많이 걸었구나! 뻐근함과 후련함이 두 다리 사이로 통쾌하게 빠져나갔다.



2.

사무실에서 종종 붓글씨를 쓴다. 잘 쓰지는 못하고 자주 쓴다. 출판사라서 남아도는 종이가 많은데, 이를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 장난치듯 쓰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국선시(韓國禪詩, 김달진 엮음, 열화당)>를 임서하고 있다. 영축산을 다녀온 뒤 그제 고려 말기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 스님이 지은 <태고암가> 중에서 이런 대목을 만났다.

放下着莫妄想 (방하착막망상, 모든 것 놓아버리고 허망한 생각 말라)
卽時如來大圓覺 (즉시여래대원각, 이는 곧 여래의 큰 깨달음이네)
歷劫何曾出門戶 (역겁하증출문호, 오랜 겁의 그 어느 때, 이 문 일찍 났으련만)
暫時落洦今時路 (잠시낙백금시로, 잠시 지금 이 길에서 쓸쓸히 있네)


붓을 놓고 한번 중얼거렸다. 문득 간월산에서 영축산 꼭대기를 잇는 산길이 생각나고, 그 길위를 걸었던 내 발걸음이 나타나고, 그리고 그 길 위에 쓸쓸히 나뒹굴던 돌멩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의 이 띵띵한 나에 대한 궁리가 일어났다. 멀리 고려말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겠다. 지난주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의 길에서 불쑥 튀어나와 쓸쓸히 서 있는 존재가 아닐까. 그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녀석이 아닐까, 그 길에서 두리번거리는 멍청이가 아닐까.

그러면서 또 문득 여래(如來)란 말에 대해 생각이 머물렀다. 김달진옹의 번역문으로 대조하여 방하착, 망상, 대원각, 출문, 잠시 등등이야 더듬더듬 알겠는데 정작 여래의 정확한 뜻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래, 그간 제법 숱하는 접한 말이기는 한데 대강 아는 척하였을 뿐 정작 모르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고작 가지고 있다는 내 지식의 체계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여래. 내가 아는 어떤 시인의 딸 이름이기도 한 여래. 지리산 자락 어디에서 본 것도 같은 식당의 이름인 여래. 나는 모르는 어떤 집의 개 이름이기도 할 것 같은 여래. 여래를 찾다가 줄기에 엮인 고구마 캐듯 망외의 횡재를 했다. 여래는 어마어마한 뜻과 함께 다음의 단어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좀 길지만 인용해본다.

석가모니의 공덕상(功德相)을 일컫는 열 가지 이름. 즉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다. 각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여래(如來, tathāgata): 진리의 체현자(體現者)ㆍ열반(涅槃)에 다다른 자. ② 응공(應供, 阿羅漢, arhat): 세상의 공양과 존경을 받을 만한 자. ③ 정변지(正遍知, 正等覺者, samyaksambuddha): 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자. ④ 명행족(明行足, vidyācaraṇa-saṃpanna): 지(知)와 행(行)이 완전한 자. ⑤ 선서(善逝, sugata): 훌륭하게 완성한 자. ⑥ 세간해(世間解, lokavid): 세간, 즉 세상을 완전히 이해한 자. ⑦ 무상사(無上士, anuttara): 위로는 더 이상 없는 최상의 인간. ⑧ 조어장부(調御丈夫, puruṣa damyasārathi): 사람을 조어(調御)하는 데 있어서 훌륭한 능력을 가진 자. ⑨ 천인사(天人師, śāstā devamanuṣyānām): 신(神)들과 인간의 교사, 곧 사람과 하늘의 대도사(大導師). ⑩ 불세존(佛世尊): 복덕(福德)을 갖춘 자, 즉 높은 스승.

 



3.


이제 확실히 알겠다. 여래란 곧 부처란 것을! 붓으로 부처의 이름을 써 보았다. 如來ㆍ應供ㆍ正遍知ㆍ明行足ㆍ善逝ㆍ世間解ㆍ無上士ㆍ調御丈夫ㆍ天人師ㆍ佛世尊. 그중에서도 특히 명행족이란 단어가 와닿았다. 여러 번 필기했다.

명행족이란 말을 좀더 자세히 본다. 명행족은 삼명(三明)의 신통한 지혜와 육도만행(六度萬行)을 원만히 갖추었다는 뜻이다. 지혜와 수행을 완전히 일치시킨 자라고도 한다. 명(明)이란 글자는 해(日)과 달(月)이 결합한 글자이다. 지혜란 해와 달을 따로따로 보지 않고 동시에 생각할 때라야 얻는 것임을 상징한다고 한다. 수행이란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이고서는 터득할 수가 없다. 명상과 동시에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는 포행도 겸해야 터득할 수 있는 경지이다,

발(足)은 누군가의 몸에서 가장 아래에 붙어 있는 기관이다. 누구나 잘 거덜떠도 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몸 중에서 부처의 이름을 이루는 것은 발(足)뿐이다. 부처의 이름뿐만 아니라 신체상의 뚜렷한 특징을 갖는다. 이른바 32상 80종호인데 이중 발에 관한 것도 있다. 足下平安. 발바닥이 편평하다. 발바닥이 편평해지도록 널리 걸으며 돌아다니신 것이었다. 그러니 참으로 심오한 발(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좌탈입망(坐脫立亡)이란 말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누워서 죽는다. 누우면 환히 드러나는 발바닥. 죽어서 저승으로 갈 때 얼굴 들고 가는 게 아니라 발바닥을 앞장세우는 가는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 나중에 이런 질문을 받을 때를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대는 이승에서 얼마나 멀리 돌아다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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