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베트남의 아시아 축구 결승 경기를 보는 소감
등록일:2018-02-01, 조회수:560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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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최근의 나날. 추위 탓만은 아니고 어쩌다 보니 산으로 가는 발길이 뚝 끊기게 되었다. 한 달에 꼬박꼬박 4번이나 찾아오는 주말을 1월에는 3번 지붕 아래에서 맥없이 보내는 셈이 되었다. 지난 토요일도 그렇게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을 만한 한 가지 일이 있었다.

거실에서 이리저리 뒹굴기를 여러 차례 하다가 슬슬 배가 고파지는 저녁 무렵 채널의 숫자를 올리기 시작했다. 어디에서건 그 경기를 중계방송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이 사상 최초로 아시아청소년 축구대회의 결승에 올랐고, 그 팀을 이끄는 한국의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영웅으로 떠올랐다는 뉴스를 접한 게 엊그제였다.

과연 내 서툰 짐작이 맞았다. 채널수가 40번을 넘어가자 조금 이상한 화면이 나왔다. 맨질맨질한 얼굴의 탈렌트들이거나, 그저 빙 둘러앉아 씰데없는 농담이나 생산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화면의 뒷배경은 한눈에 보아도 금방 뚝딱 지어 만든 세트장이 아니었다. 시야가 툭 트인 야외의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넓다고는 하지만 운동장도 인공의 냄새가 가득한 법이다. 하지만 이건 관중의 손때,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가 묻은 경기장이라기보다는 시베리아의 어느 황량한 벌판에서 짐승들이 무리를 지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형국인 듯했다. 얼핏 보아선 눈발을 헤치고 펼치는 <야생은 살아있다>류의 프로그램인 줄로 착각할 정도였다. 하마터면 다음 칸으로 채널을 옮길 뻔했다. 좀더 몇 번 화면이 바뀌고 확대화면이 나오고서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찾던 바로 그 경기가 아니겠는가. 베트남과 우즈베케스탄의 축구경기, 그것도 결승전!

얼마 전 정현 선수의 테니스 준결승전을 독점으로 보여주었던 JTBC 2가 이번 경기도 현지에서 중계방송을 하고 있었다. 전반전이 중반을 넘기는 현재 스코어는 일대빵, 베트남이 지고 있었다. 붉은색의 베트남 선수들과 흰색의 우즈베케스탄 선수들이 클로즈업 되면 그야말로 폭설이 내리고 있어 얼굴을 눈이 가릴 정도였다. 간간이 박항서 감독의 얼굴도 비쳤다. 시골 고향을 지키는 든든한 맏형 같은 푸근한 인상의 박항서 감독은 눈발을 뚫고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작전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전반전이 아쉽게 끝날 무렵 드디어 베트남에 기회가 왔다. 눈으로 덮인 운동장의 둘레와 중앙선 부근, 페널티 아크 부분은 눈을 대충 치워 놓았는데, 골대 정문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잠시 작전을 짜고, 호흡을 멈추고, 베트남의 한 선수가 공을 걷어찼다. 공중을 날아간 빨간 축구공은 우즈베키스탄 진영을 통과해서 그대로 우아하게 골문 속으로 후련하게 꽂혔다. 골인, 골인, 골인이었다!

축구공이 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물을 출렁 흔들었을 때, 나도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화면 속으로 들어갈 듯 텔레비전 앞으로 돌진했다. 박수도 쳤다. 시원해서 주먹도 흔들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조금은 뻘쭘하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이런 나의 행동에 대해 50대인 아내는 박수를 쳐주었고 이십대의 아이들은 의아하다는 눈치를 조금 주었다.

나는 이 평화로운 주말의 저녁에 남의 나라 경기에 왜 이리 마음을 쓸까. 왜 나는 내 몸에 베트남의 피라도 흐르는 듯 흥분했을까. 고광나무의 가지를 닮은 축구장의 골대 그물이 출렁일 때 왜 이리 흥분하는 것일까. 그건 그 나라가 베트남이라서 그랬을 것이기에 이 기회에 베트남과 나와의 관계를 한번 더듬어 보기로 했다.

베트남과 나와의 관계?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리 특별한 건 없다. 내가 무슨 외교관인 것도 아니고, 나라를 대표할 만큼의 이력도 쌓지를 못했고 더구나 그곳으로 여행 한번 다녀 온 적도 없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 그 이름은 비교적 일찍 들었고, 남다른 소회를 가진 건 있다.

나에게도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불행하게 군사적으로 엮인 적이었을 때 먼저 각인되었다. 그땐 미국 일변도의 정보가 횡행했던 시절이고, 유신의 폭압적인 통치가 자행되는 시절이었다. 부산에서 중학생이었던 나는 가끔 학교 대신 초량동의 부두로 태극기를 들고 나갔다. 월남으로 파병되는 장병들의 환송식에 참석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 베트남은 베트남이 아니라 베트콩이 활개치는 정글로만 인식되는 무시무시한 괴물의 나라일 뿐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만화에 소질 있는 아이는 종이에 땅굴을 파는 그림을 그리고 베트콩과 우리 국군의 전투를 실감나게 그려가면서 스포츠 중계하듯 떠벌이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교련선생은 수업 하다말고 베트남 전쟁에서 겪은 이야기를 자랑스레 들려주었다. 아무런 느낌 없이 작전상 베트콩 몇 명의 죽음을 스스럼 없이 입에 올리기도 하였다. 아마 우리 모두에게는 베트남과 관련해서 이렇고 이런 시절 기억들.

이처럼 베트남에 대한 나의 생각은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던 개구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세상에 대한 시각교정이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이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을 때 정말 세상이 물구나무를 서는 독서경험을 했다. 눈에서 커다란 비늘이 떨어져나가는 듯 했다. 그 언저리에 어떤 글에서 베트남의 국부인 호지명이 침대 맡에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가까이 두고 탐독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같다.

그 이후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베트남은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왔다. 지나간 아픈 역사를 풀어내면서 그들의 독립전쟁에 우리가 뛰어들어 가한 끔찍한 일들이 재조명되었다. 우리 사회에도 우리 입장에서가 아니라 베트남의 입장에서 베트남을 바라보는 견해도 생겨나는 것 같았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팩트를 접하다 보니 베트남에 대해 우리가 가한 상처가 퍽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접 얽힌 바는 없지만 아주 미안하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순서와 맥락없이 베트남과 관련한 이야기를 주섬주섬 적어보았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강력한 인상은 따로 있다. 퍽 오래 전 이야기이다. 과천에서 약속이 있어 조금은 불쾌해진 얼굴로 귀가하는 중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한가한 전철 안. 남태령의 땅굴 속을 통과하는 중인데 내 바로 옆자리에 중학생인 듯한 아이가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슬쩍 곁눈질로 보는데 나로서는 처음 보는 아주 낯선 문자가 아닌가.

호기심이 일어나 술기운을 빌어 아이에게 잠깐 그 책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겸연쩍게 웃으며 순순히 책을 나에게 주었다. 옆모습은 잘 몰랐는데 앞모습을 보니 우리나라의 얼굴은 아니었다. 도무지 누굴 미워할 줄을 모를 것 같은 인상의 아이.

한국의 강원도 동막골보다도 더 깊숙한 동네에서 온 것같은 순진한 인상의 아이가 보는 책의 문자는 나무나 낯설었다. 내 이제껏 접한 외국의 알파벳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책읽기를 방해할 수는 없어서 얼른 돌려주면서 물었더니, 베트남 문법책이예요!

그때 우리나라는 베트남의 승리를 ‘자유 월남의 패망’이라고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시각교정이 필요한 단어가 아닐 수 없겠다. 그때에도 나는 우물 안의 방황하는 개구리였던 지라 그 아이를 패망한 나라에서 온 망명객의 후손쯤으로 치부하고 더욱 처연하게 바라보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말을 빼앗기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처럼 ‘패망한 조국’의 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기특한 베트남의 아이.

모르긴 몰라도 지금은 월남의 패망을 거론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독립했으며 미군을 상대로 승리했고, 중국을 위협을 지켜내 마침내 그들의 완전무결한 자주 독립을 이룩하지 않았는가. 이런 당당한 자부심은 그 힘이 보통 센 게 아니다. 우리와 베트남의 나라간 거래를 보면 베트남이 우리를 더 배려한다는 느낌도 들 때도 있다. 모진 세월이 지나면서 어찌 되었든 베트남은 외세를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었고 우리는 아직도 분단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우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룰 때 히딩크에 열광했던 적이 있었다. 피파 랭킹 112위에 불과한 베트남도 ‘쌀딩크’ 박항서 감독을 통해 끈질긴 축구의 맛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앞으로 베트남 사회를 전진케 하는 우아하고 강력한 힘으로 기능하지 않을까.

경기장 사정은 후반전 들어서도 조금도 나아지질 아니 했다. 우즈베케스탄 선수들이 흰 유니폼 위에 녹색의 유니폼을 껴입었을 뿐, 눈은 계속 펄펄 내렸다. 수중전은 보았지만 설중전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베트남 선수들은 이런 눈은 난생 처음 보는 사태임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펄펄 날 듯 경기를 풀어나갔다. 연장전에 돌입하고서도 팽팽한 균형은 깨지지 아니 했다.

눈은 그치지 않았지만 공은 멈추었다. 무승부로 끝나고 승부차기로 돌입하는가 했더니 종료 1분을 남기고 베트남은 한 골을 먹고 말았다. 1-2 패배. 이미 짙어진 어둠 앞에서 아쉬움을 삼키는데 남태령 땅굴 속을 나란히 달리다가 만난 그때 그 아이가 생각났다. 무슨 사연으로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 아이는 베트남 말을 훌륭하게 구사하는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 저녁엔 언젠가 월드컵 본선에도 뛰게 될 자신의 조국을 생각하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아이는 코리아-베트남을 연결하는 주요한 고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말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했기에 더욱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드는 밤. 곧 베트남 쌀국수를 한번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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