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천사의 섬에서 벚나무 아래를 지나다
등록일:2019-04-17, 조회수:162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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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신안에 가면 1004라는 아라비아 숫자가 자주 눈에 띈다. 일공공사가 아니라 천사로 읽어야 한다. 일일이 확인을 해보았겠느냐만 신안군에 속하는 섬의 갯수가 1004개라는 것. 그래서 신안군은 천하에서 유일한 천사의 섬이라는 것. 최근에는 천사대교가 개통되어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등이 뭍에 직방으로 연결되었다. 이제 목포에서 발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저 섬들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 변덕스럽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막무가내의 기운이 산하를 휩쓸고 있다. 식물에 각별한 애정과 깊은 안목을 지니신 분들과 함께 봄맞이 꽃산행에 나섰다. 무안의 해변에서 일박을 하고 김대중대교를 지나 다시 천사대교를 지나 자은도 승봉산에 올랐다. 

최근 뭍의 산에서는 진달래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꽃이 없었는데, 진달래! 너마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겠느냐, 남도의 산은 나무와 야생화가 올해의 봄을 한껏 포옹하고 있었다. 기분이 한껏 꽃에 취하려는데 한 술 더 뜬다. 하늘에서 부슬부슬 모종의 사신이 도착한 것이다.

아무 것도 없어 텅 비었는 줄로만 알았는데

쌓인 말이 저리도 많았구나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승공산을 다 내려오는데 벚나무 한 그루가 활짝 피었다. 그 아래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때는 마침 점심이라 가장 하루 중에서 가장 긴요한 시간대이다. 나무 아래 작은 정자가 있다. 허기를 달래는 사람, 젖은 몸을 말리는 사람, 등산장비를 점검하는 사람, 사람들을 찾는 사람. 마치 산중에 반짝 도깨비시장이라도 벌린 듯하다. 벚나무 꽃잎에  폭 싸인 풍경을 세 줄의 문장으로 이렇게 묘사해볼 수도 있겠다.

하늘에서 떨어진 비는 흐르고 굴러 바다로 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벚나무 가지를 뚫고 나온 꽃은 비바람에 찢겨 떨어졌다가 도로 흙으로 돌아간다. 비와 꽃의 중간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 그대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에 머무르다 또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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