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암태도의 황무지
등록일:2019-05-10, 조회수:200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미투데이로 공유하기



수수께끼라는 말이 없었더라면 삶을 우리가 어떻게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삶은 수수께끼. 마음 같아서는 몇 번을 더 발음하고 싶지만, 그런다 한들 그 수수께끼가 풀릴 일도 없기에 세 번으로 마무리한다. 삶은 수수께끼. 삶은 수수께끼. 삶은 수수께끼. 그렇게 수수께끼라는 미궁의 단어로 인생을 밀어넣어야 그나마 겨우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 인생은 미완성. 삶은 수수께끼.

****

스핑크스는 이집트의 괴물. 몸통은 사자이고 얼굴은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테베의 암산(岩山) 부근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이른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내어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그것은 사람이다(사람은 어렸을 때 네 다리로 기고, 자라서는 두 발로 걷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어 세 다리로 걷기 때문에)”라고 대답하자, 스핑크스는 물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일부 인용함.

****

“4월은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 꽃을 피우며 / 추억에 욕망을 뒤섞으며 /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로 시작하는 엘리엇의 <황무지>는 아주 유명하면서도 무척 난해한 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황폐함을 노래한 이 시는 5장 433행으로 구성된 장시이기도 하다. 유렵의 고대 신화와 유럽 문화의 배경 지식을 모르고서는 한 줄도 읽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 <황무지> 중에서 가장 짧은 제4장의 <수사(水死), Death by Water>는 따로 떼내어 읽어도 좋을 만큼 독자적인 내용을 담은 시다. 다른 장에 비해 비교적 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이라는 지위를 가졌다면, 그래서 죽을 운명이라면, 그 운명을 순리대로 받아들인다면 다 고개를 끄덕일 만한 구절들로 구성된 시는 다음과 같다.

페니키아 사람 플레버스는 죽은 지 2주일
갈매기 울음 소리도 깊은 바다 물결도
이익도 손실도 잊었다.
                                 
                                    바다 밑의 조류가
소근대며 그의 뼈를 추렸다. 솟구쳤다 가라앉을 때
그는 노년과 청년의 고비들을 다시 겪었다.
소용돌이로 돌아가면서.                                   
 
                                    이교도이건 유태인이건
오, 그대 키를 잡고 바람 부는 쪽을 내다보는 자여
플레버스를 생각하라. 한 때 그대만큼 미남이었고 키가  컸던 그를.

 
**** 

목포의 옆구리를 지나 김대중대교-천사대교를 지나 자은도-암태도에 올랐다. 바다를 멀리 지척에 두고 발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섬에 오른 것이다. 이제는 다리로 연결되었으니 섬은 섬이 아니다. 꽃에 정통한 분들의 뒤를 따라 오전에 자은도의 두봉산을, 오후에 암태도의 승봉산을 오르는 꽃산행 일정.

해가 뉘였뉘였 넘어갈 때, 나도 그 어디로 넘어가야 하는 때. 멀미가 어디 바다에서만 일어나랴. 산으로 오른 높이만큼 고스란히 산에게 내어주며 바닥으로 거의 내려왔다. 멀리 호젓한 길이 구부러지는 곳에 웅크리고 앉은 게 있다. 굴참나무가 햇빛에 반짝이며 이따만한 흙무더기를 끌어안고 있다. 무덤인가. 무덤이 아니라면 어떤가. 그건 이미 무덤으로 나의 눈에 들어온다.

그 광경은 스핑크스가 앉아서 지나가는 이에게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게 무엇이냐”라고 수수께끼를 내면 딱 좋을 풍경이 아니겠는가. 그 풍경에 맞추기라도 하듯 등산지팡이를 짚고, 세 다리로 걸어가면서 나는 미남에다가 키가 큰 플레버스를 떠올렸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