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까만 염소를 보면서 눈앞의 깜깜에 대해 생각해보다
등록일:2019-07-02, 조회수:437
일생의 일상: 책, 영화, 연극, 생활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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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하루를 시작한 과정을 되짚어보면 이렇다. 깜깜한 밤을 지나 새벽에 눈을 뜨기는 했지만 한숨 더 잤다. 밤에 다시 푹 파묻힌 셈이다. 이윽고 자명종의 독촉을 받고서야 아침에 일어났다. 비로소 어둠의 장막을 걷어차고 눈을 떤 뒤 직립했다. 달그락달그락 밥그릇을 비우고 옷을 걸치고 거울 앞에서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을 마지막으로 쓰다듬은 뒤 검은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 현관을 나섰다. 현관은 玄關으로 쓴다. 왜 검을 현을 쓸까.

우리는 대부분 현을 천자문의 첫 대목인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에서 만난다. 고려시대 어느 영특한 아이는 천자문을 배우다가 이런 질문을 던져 스승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저는 천자문을 안 읽겠습니다. 왜? 땅이 똥처럼 누런 건 그런대로 알겠는데 저 푸른 하늘이 왜 검다고 하는 겁니까. 저는 이런 거짓말을 도저히 받아들 수 없습니다.

천자문에서 玄을 ‘검을 현’으로 훈을 달면서 그저 ‘검다라고만 이해하기가 쉽다. 여기에서 하늘을 형용하는 검다,라는 말의 속뜻은 실은 가물가물하다,라는 뜻에 가깝다고 한다. 아득히 멀고 깊어서 가물가물한 경지를 玄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멀고 깊으면 검을 수밖에 없는 게 상식이기도 하겠다.

이처럼 동양의 고전에는 玄이 자주 등장한다. 그 유명한 구절, 도가도비상도 (道可道 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 非常名)으로 시작하는 노자의 첫 대목에도 현(玄)은 아주 비중있게 등장한다. 노자 1장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그 같음을 일러 현묘하다고 하니, 현묘하고 현묘하도다. 모든 묘한 것들의 문이로다.

그제 절친한 꽃동무가 동영상 하나를 보내주었다. 꽃을 보러 가다가 만난 염소를 찍은 것이었다. 염소를 처음 보는 건 아니었지만 검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주는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녹색을 배경으로 까맣기 그지없는 어미 염소가 까맣게 압축된 새끼 염소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이었다. 염소는 ‘검다’라는 형용사의 챔피언인양 온통 까맣다. 털도 까맣고, 온 몸도 구석구석 까맣다. 염소는 똥도 마침내 새까맣다.

블랙과 다크는 확실히 구별된다. 흑(黑)과 현(玄)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염소의 털은 블랙이지만 눈은 다크라고 해야 함이 옳다. 우리는 아침이면 현관을 통해 세상으로 나오고, 저녁이면 현관을 통해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현관은 세상과 집의 사이에 있는 현묘한 문이니, 玄關인 건 참 적절한 표기인 것 같다. 눈알이 새까만 염소 가족을 보면서 현관을 밀고나온 오늘 아침의 나를 겹쳐보느니, 나는 지금 대체 어느 깜깜한 소용돌이 속을 헤매고 있는 중이더냐!



사진 및 동영상 김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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