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칼럼

쉼보르스카와 어머니
등록일:2020-10-08, 조회수:71
꽃 옆의 돌, 나무 너머의 바위를 찾아서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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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남양주 불암사 목조관음보살좌상, <새보물 납시었네> 전시전. 2020. 9. 5. ⓒ 이굴기


머리맡에 두는 책은 진짜 머리맡에 그냥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번도 거들떠도 안 본 지가 오래인 책 몇 권. 마음은 빤하고 책이 표지만 닳았다. 그러나 예외가 가끔 있으니 쉼보르스카의 시집은 가끔 불빛 구경을 한다. 가끔 내 묵직한 한숨 소리가 어느 페이지에는 섞이기도 한다.

참 대단한 소재도 아닌 것 같은데 그저 주물럭주물럭 말을 가지고 놀았을 뿐인데, 한 가마니의 소금처럼 진한 앙금이 남는다. 가까운 데에서 도무지 측량할 수 없는 깊이를 발굴하는 시인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논어에 나오는 절문근사(切問近思.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것을 생각함)의 경지가 참으로 시쓰기에 절실하게 적용된 사례가 아닐까. 그 중에도 가끔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었다.

가까운 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건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일어나는 일
존재할 것이냐 사라질 것이냐
그 가운데 후자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했을 뿐

(.........)

그러나 아주 이따금
자연이 작은 호의를 베풀 때도 있으니
세상을 떠난 가까운 이들이
우리의 꿈속에 찾아오는 것

-----쉼보르스카의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중에서


살아있는 것이 무슨 벼슬이거나 대단한 현상도 아니겠지만 눈 뜨고도 못 하는 일이 참 많다. 당장 자유로를 달릴 때도, 광화문 광장에서 열 발짝 앞으로는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는 못 가는 구역이다. 어제는 어제라서, 내일은 내일이라서 못 간다. 그렇지만 늘 없는 것으로 한쪽에 밀쳐놓지만 한밤중에는 꿈속이 있다. 그곳에 가면 못 이루는 일이 없다. 자연이 베푸는 작은 호의로 세상을 떠난 가까운 이들이 나의 꿈속에 찾아오지 않는가!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이러라고 시 읽는 것 아니겠나
추석 달빛 아래 홀로 있는데
시 한 구절 생각난다

추석 아래 휘영청 보름달도 다 밝지는 아니해서
한밤중에도 깊은 응달을 띄엄띄엄 만든다
심학산 아래 사무실
숙소로 가는 계단의 후방을 짚다가
어머니 생각이 물컹 났다

예전 어머니도 이 자리에서 더러 저 달을 보았지만
이제는 저 달 너머에서
달의 이면을 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

아무리 생각해도
저 달까지의 길이가
지름일리야 없는 것

허방을 짚고
따라나서는 어머니

계단을 다 함께 오르시더니
얘야, 오늘은 여기까지
열이 많아서 나는 밖에서 잘란다,
방으로 안 들어오겠다 하시네

오늘은 이렇게 꿈 바깥에서라도
잠깐 같이 살아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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