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작가인터뷰┃『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의 저자, 서윤영 ①
등록일 : 2009-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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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 보면 맛깔스런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독서? 건축 유람? 여행?

실제로 저는 건축기행이나 해외여행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항상 그 자리에 붙박여 있는 건축물의 특성 때문에,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저는 오히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별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에 들어 1년에 한두 번 정도로 자주 다니게 되었습니다. ^^;;; 정말 자주 다니죠? 맛깔스런 이야기꾼…, 건축에 대한 글을 쓰지 않던 시절에도 그 말을 들어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힘은 어쩌면 외국어 공부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외국어대학을 다니면서 일본어와 불어를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느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포함하여 그 ‘언어 틀’이 가지는 독특한 사고체계를 배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례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원반형태의 전자자료 전달매체를 영어로는 ‘디스크(disk)’ 혹은 ‘디스켓(diskette, 디스크보다 더 작고 예쁜 것을 디스켓이라 하지요)’이라고 하지만, 독일어로는 ‘메디아(media)’라고 합니다. 단순히 외형만을 보고 ‘둥근 것’이라 표현하는 영어의 사고체계와 데이터를 보존하거나 전달하기 위한 ‘매체’라고 표현하는 독일어의 사고체계는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문화와 독특한 사고체계, 그것으로 인해 미처 보지 못하는 사물과 현상의 또 다른 측면을 파악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학생들이 정말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때로 불어나 일본어 혹은 프랑스어, 중국어 등 제2외국어도 접해보기를 바랍니다. 혹은 이슬람이나 아프리카, 핀란드, 인도 등 제3세계의 언어는 더욱 좋습니다. 독특한 사고체계를 배우고 훈련하는 데는 언어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걸 배워서 대체 어디에 써먹냐’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무도 공부하지 않는 것을 혼자 배웠기 때문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혼자 생각할 수 있고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혼자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건축뿐만이 아닌 모든 분야에 공통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책에서는 그동안 본인이 다녀온 세계 도시 곳곳의 사진들이 꽤 많이 담겨 있는데, 다녀본 곳 중 기억에 남는 곳을 꼽는다면?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많은 곳을 다닌 편은 아니지만, 그 중 인상 깊었던 곳은 ‘북경’입니다. 작년부터 공부의 관심이 ‘건축’에서 ‘도시’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는데, 북경은 1,000년에 걸쳐 원, 명, 청 등 여러 왕조의 수도였고, 동양의 전통적인 도시계획이 완벽하게 재현된 데다, 훼손 없이 가장 잘 보존된 곳입니다. 도시 공부를 하면서 거의 3,000~4,000년 전에 제안된 고대 아시아의 도시계획수법을 배웠는데, 북경은 정말 그 원리에 맞추어 지어진 도시입니다. 또한 최근 50여 년간 사회주의 공산권의 수도였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현재 많은 관광객들이 북경여행을 하면서 건물과 광장, 도로의 거대 스케일에 놀라면서 ‘역시 중국은 스케일이 크다’라고 쉽게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북경에서 보이는 거대 스케일이 ‘중국’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공산주의 나라였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장기집권 독재자 등의 특징은 수도를 계획함에 있어 상상할 수 없는 거대스케일로 가장 깨끗하고 완벽하게 도시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저는 평양은 가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평양은 북경보다 더 거대스케일로 계획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 특성을 중국보다 북한이 더 강하게 갖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현상들은 현재 신흥 아프리카 국가의 도시계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 50여 년간 공산권의 영향 아래 있다가 이제 다시 세계자본시장에 동참하기 시작한 도시, 북경은 여러 겹의 층위를 가진 매력적인 곳이고, 그 중 가장 매력적인 것은 단연 ‘간판’ 입니다. 여태껏 ‘표의문자’를 썼던 나라에서 스타벅스, KFC, 맥도널드 등 밀려들어오는 다국적 기업의 상호명을 이제 어떻게 ‘표음’할까요? KFC는 긍덕기(肯德基, 실제 발음은 ‘컨다이지’ 정도), 맥도널드는 맥당방(麥糖房, 발음은 ‘맥도로우’)으로, 표음과 표의가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5000년 묵은 표음문자로 그려낸 다국적 기업의 상호명, 현대 중국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북경 공항에서의 첫 인상은 한문으로 적힌 KFC와 맥도널드로 시작된다.
21세기 국경을 초월해도 빠져 나갈 수 없는 것은 다국적기업의 그물망이다.


이번 책의 닫는글에 보면 '아파트 값올리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부녀회장님이 등장합니다. 한국에는 아파트라는 구조의 집밖에 없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아파트가 대세이지요. 아파트라는 주거형식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으리라고 보시나요?
 

아파트라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되어서 거의 2,000년 정도를 헤아립니다. 일찍이 국제도시로 성장했던 고대 로마제국에서 지어지기 시작했고 주로 도시영세민들이 살았습니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 그리고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현대적인 아파트로 변형되었지요.
 

아파트는 ‘도시주거의 산물’인데, 현재 전지구적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아파트는 점점 더 지배적인 주거형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회에 특정 주거형태가 지배적 유형으로 고착되면 거의 예외 없이 도시전체가 그런 집으로 뒤덮이는 것이 일반적 현상입니다. 5,000년 인류역사를 통틀어 모두 그러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한옥’이라는 주거형식이 500년 동안 한양에 지어지지 않았습니까. 기와집 한 채의 수명을 50년이라 보면, 같은 자리에 똑같은 집을 짓고 허물고 다시 짓는 일을 10번씩이나 되풀이 한 셈입니다.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예전에 지었던 집과 똑 같은 집을 짓는 그 일이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아파트 재건축’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제가 말하는 아파트는 ‘래미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빌라, 원룸, 타운하우스, ‘타워팰리스’ 등 모든 도심공동주택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시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도시주거의 산물인 ‘도심공동주택’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주거유형이 지배적인 형식으로 자리잡게 되면 그것이 더욱 분화 변형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향후 200~300년 동안은 도시화 현상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될 예정이고 대한민국과 서울 역시 그 과정에 있으므로, 도시주거인 ‘아파트’는 계속 더 많아지고 발전할 전망입니다. 아울러 좀 더 다양화된 여러 형태의 아파트들(현재 타운하우스 등장)이 많아지리라 생각합니다.


 

1/100 스케일로 만든 모델하우스. 아파트는 도시주거의 산물로,
전지구적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점점 더 지배적인 주거형태가 될 것이다.
 
 
앞서 펴낸 네 권에서는 주로 '집'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왔다면, 이번 책에서는 '건축'과 '공간'으로 그 주제 범위를 넓혔습니다. 앞으로 펴낼 책에서는 또 어떤 주제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어떤 책을 쓰고 싶은지요?
 

저의 전공은 ‘건축’입니다. 대학의 건축학과에 입학하면 ‘건축’에 대해 배우고, 그 중 ‘집’이라는 것은 ‘주택’ 혹은 ‘주거건축’이라 하여 별도로 배웁니다. 다시 말해 ‘역사’ ‘공항’ ‘고층건물’ ‘병원’ ‘학교’처럼 여러 항목으로 분류된 것 중에 ‘주택’이 포함되는데, 주택이 건축의 영역에 들어온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그 전까지 ‘주택은 건축이 아니라’라고 극단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런데 대개 사람들은 ‘건축’과 ‘집’을 동일시하고, 그래서 교생선생님 역시 ‘이 다음에 예쁜 집 많이 지어’라고 하신 모양이지요.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 중에 ‘주택’은 전체 건축에서 대략 10% 정도 차지하는데, 저는 이제껏 매우 작은 한 분야에 대해 깊이 천착해온 것이지요. 다시 말해 ‘건축’이라고 주제범위를 넓힌 것이 아니라, 본래 다시 ‘건축’이라는 초심으로 돌아온 것이라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현재 저의 관심은 건축에서 도시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건축과 도시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건축이 모여 도시가 되고 도시를 이루는 것이 건축입니다. 예전에는 건축을 주로 예술적 오브제로 생각했다면 현재는 도시를 이루는 기본단위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고, 저는 그 중 도시주거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더욱이 서양의 도시주거는 그동안 로마, 파리, 이슬람 등의 고대도시를 대상으로 다른 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북경을 비롯한 동양의 도시주거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관심도 많습니다.



지금 사는 곳이 아파트인데, 건축학도로서 가장 살고 싶은 집의 형태는 무엇인가요?

 

단연 아파트입니다. 눈을 들어 창밖을 보면 도시전체가 아파트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마디로 그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아파트가 한국의 지배적인 주거유형이 된 것은 그것이 많은 강점을 가진 ‘가장 우수한 솔루션’이기 때문인데, 현재 아파트가 부정적으로만 인식된다는 것이 매우 아쉽습니다. 우리가 ‘밥’을 가장 자주 먹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우수한 솔루션’이기 때문이며, 그걸 먹으면서 ‘밥’의 부정적인 면모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먹지마’ 소리가 바로 나옵니다. 그런데 왜 모든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그것을 소망하면서 아파트를 부정적으로 말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도시주거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현재 한국 도시주거의 지배적 유형인 아파트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아파트에 살겠습니다.


②에서 계속


사진 ⓒ 서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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