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책 밖에서 만난 작가┃<詩에게 과학을 묻다>를 펴낸 진정일 교수 인터뷰
등록일 : 201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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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시와 과학. 언뜻 보면 서로 무관해 보이는 분야인데, 어떤 계기로 이 둘을 엮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는지요?

A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고려대 오탁번 교수(현 명예교수)가 여러 해 전에 시인들을 위한 과학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해왔습니다. 여러 매체에 과학 이야기를 써온 내 이력을 알고 있었거든요. 또 오 시인을 비롯한 몇몇 시인들이 새로운 시집이 나올 때마다 보내주어 심심찮게 시집을 들쳐보고 있던 터였지요. 그러나 오 교수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여 항시 미안하게 생각했었답니다. 그러던 중 오 교수가 또 다른 청탁을 해왔습니다. 이번에는 자기가 발간하는 문학 계간지 《시안》(나는 평생 구독자로 첫호부터 구독하고 있습니다.)에 시와 과학을 잇는 글을 써달라는 얘기였습니다.
‘응, 알았어. 그럼 일 년(네 번)만 써볼게.’ 하고는 시 속에 숨어 있는 과학 술어를 끌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대한화학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요청이 와서 10여 개월에 걸쳐 진행했으며, 이 책에는 물론 새로운 내용도 더 추가하였습니다.
이런 결심을 하는 데는 오 교수의 청탁 외에도 몇 가지가 영향을 주었지요. 인문학적 감성과 자연과학적 냉철함의 조합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과 그것이 가능하다면 특출한 창의성이 길러질 수도 있겠다는 교육자적 생각이 뒤따랐습니다. 다음은 흔히 ‘딱딱하다’고 생각하는 과학 이야기를 부드러운 방법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청소년들이 과학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하고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이 작업으로 이끌었습니다.


Q 수많은 시들에서 과학 용어들을 찾아내려면 그만큼 시집을 많이 펼쳐 읽었다는 뜻인데, 평소 ‘시’라는 분야를 좋아하셨는지요? 소장하고 계신 시집도 꽤 많을 것 같습니다.
A 네. 평소에도 가끔 시집을 펼쳐보았으나, 이 글들을 준비할 때는 참으로 시를 많이 읽고 감상했습니다. 시조도 좋아하는 편이지요.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시가 정말 많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어찌나 가슴을 파고드는 시가 많던지 내 마음과 영혼이 맑아짐을 종종 느꼈습니다. 대학 다닐 시절에는 유학 가기 전까지 《현대문학》을 매월 읽었으니까요. 화학도로는 흔치않은 경우일 겁니다. 어느 대학 신문에는 가명으로 콩트를 쓰기도 했지요. 시화전도 부지런히 쫓아다녔고요.


Q 이 책에는 아름다운 시에서 골라낸 어떤 과학 용어들이 등장하는지요? 왜 그진정일 교수, 시에게 과학을 묻다들을 선택하셨는지요?
A 가능하면 아름다운 시를 선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서정적 시라고 할까요. 그러나 과학 용어가 들어 있는 시라야 했기 때문에 제약도 많이 느꼈습니다. 따라서 좀 딱딱하다고 느끼는 현대시도 일부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가급적이면 그 과학 용어가 우리 일상 생활에 가깝거나 또는 우리가 그 깊은 과학적 의미를 잘 모르더라도 자주 사용하는 것들을 찾았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시어로 자주 등장하고 과학적 풀이가 흥미로울 용어들을 택했습니다. 과학적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요. 예컨대, 불, 물, 바람, 꽃, 나무, 사랑, 태양, 별, 고통, 비단, 진주와 원자, 분자, 비닐, 증발, 유리창 등을 들 수 있습니다.

Q “‘시’와 ‘과학’은 창조로 통한다”는 말을 서문에 남기셨습니다. 시인과 과학자는 어떤 면에서 서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A 글쎄요. ‘창조로 통한다’는 표현은 좀 과장됐지요. ‘창조’는 신만의 능력에 속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런 점을 감안하면 ‘창작’이라는 표현이 더 편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시나 과학이나 요술스러운 재발견 또는 창조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데서 저는 공통점을 찾습니다. 시가 언어의 새로운 뜻을 찾고 확장시키며 미화시켜 우리 마음의 깊이와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게 한다면, 과학은 이미 존재하는 자연의 이치와 법칙을 이론과 경험적으로 체계화시키는 창조적 작업입니다. 그러니 이 두 영역에서 얼마나 큰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지 정말 놀라웠습니다. 바로 이 작업의 주인공들이 시인이고 또 과학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과 과학자들이 모여 ‘시와 과학의 콘서트’라는 큰 잔치라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가장 함축된 언어로 표현한 작품이 ‘시’라면, 자연의 법칙을 담고 있는 가장 짧은 단어들이 ‘과학 술어’다. 그러기에 이들은 오히려 짙은 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인문학과 과학이 함께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쓴 글들이 독자들에게 동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최근에 읽은 두 책의 제목을 이으면 제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 줍니다. 《Why Science?》《Science in Culture》

Q  과학 분야의 책들을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워하는 편인데, 여기에서 ‘시’라는 소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A 우리나라 초․중등학교 수준에서 배우는 과학 지식은 수준도 꽤 높고 양도 많은 편입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할 때에는 익혔던 과학 지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과학교육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이에 덧붙여 과학에 흥미를 느끼는 청소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학기술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장래가 걱정될 정도입니다. 물론 과학이 어려운 점을 많이 지니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 또는 기초개념만 잘 이해하면 조금 더 어려운 지식도 쉽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 구구단을 외우고 이해하면 대수가 쉬워지듯이요.
그래서 저는 과학에 새로운 접근법으로 시를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비교적 어려서부터 동요와 동시를 많이 읽고 노래하며 조금 커서는 많은 시를 외우기도 하지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를 갖고도 과학 얘기를 다양하게 할 수 있습니다. 왜 하늘은 푸를까? 은하수는 무엇인가? 반달은 왜 둥그렇지 않을까? 등등 얼마든지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지요. 이처럼 시는 어려운 과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개체 노릇을 해줍니다. 위에서 시어와 과학 용어의 공통점을 말씀드렸지요. 이 공통점이 바로 시와 과학의 소통이랄까. 부합점을 웅변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Q 교수님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누구이며, 어떤 시를 가장 사랑하시는지요? 그 이유는요?
A 글쎄요. 아름다운 시를 남긴 시인들이 많아서 누구를 꼽아야 할지 난감하답니다. 김소월, 김영랑, 윤동주, 정지용, 서정주 등 주옥같은 시들을 많이 남기셨지요. 생존하고 계신 훌륭한 시인들도 여러 분을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어느 시인을 가장 좋아하냐고 묻지 마시고 이 책에 인용하신 시 중에서 어느 시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으시면 오히려 제가 답하기 조금 쉬워집니다. 그래도 어렵지만요. 사실은 거의 매일 제가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에서 지하철을 타는데요. 여러 해 전부터 어느 한 계단을 내려오면 정지용의 <별>이라는 시가 벽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시를 저는 수없이 읽었네요. 한 번만이 아니고 두 번씩 읽을 때도 여러 번 있습니다. 정지용이 무슨 생각으로 이 시를 썼던 상관없이, 저는 제 나름대로 이 시에 등장하는 <별>을 생각하면 가슴을 울렁인답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항상 그래요. 사용된 시어의 아름다움과 표현의 섬세함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정지용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금(金)실로 잇은 듯 가깝기도 하고,

잠 살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듯, 솟아나듯
불리울 듯, 맞아들일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이는 회환에 피어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우는 손을 여미다


책에서도 말했습니다만 위 시를 읽고 나면 윤동주의 <서시>가 뒤이어 떠오릅니다.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Q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A 독자님 특히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우선 과학이 무엇이고, 왜 과학을 잘 알아야 하고, 과학적 사고방식과 생활태도가 중요한지 깊이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 지난 19〜20세기 또 지금 21세기에 우리가 경험하는 문명사적 변화의 중심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터득해야 합니다. 다름 아닌 과학적 사고방식과 과학의 발전이 바로 그것입니다. 과학이 문화나 예술에 대립적이지 아니하며, 오히려 오늘날이 두 영역은 어느 때보다 밀착되어 있습니다.
현대 예술의 세계적 거장 비디오 작가 백남준을 기억하지 않습니까? 마징가 제트에 열광한 여러분의 성장기에 트랜스포머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습니까. 우주인의 달 착륙이 달에서 자라고 있을 계수나무의 신비를 지워버린 지도 어언 40여 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우주로 향하는 우리의 꿈은, 시의 세계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뇌과학의 발전은 ‘생각’의 본질을 파헤쳐 들어가고 있으나, 생명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은 그럴수록 더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읽은 글이 재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신비해!’라고 얘기할 때 ‘내’ 또는 ‘나’는 무엇을 뜻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시적 영감과 과학적 통찰력이 이런 데서 만나게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단순히 기술이니 경제력의 바탕으로서의 과학보다 저는 문화로서의 과학을 더 즐기고 거기에 더 큰 의미를 둡니다. 이제는 과학은 과학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일상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세요. 과학이 아니고, 과학과 관련이 없는 무엇을 찾으실 수 있습니까? 여러 해 전에 미국에서는 ‘시인을 위한 물리학’이라는 비과학 전공 대학생들의 교양과목교재가 선풍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시인들도 즐길 수 있는 과학책이 정말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방법은 쉽습니다. 여러분 모두 시인이 되시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동시에 과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꿈과 상상과 호기심이 과학을, 또 과학자를 키우기 때문입니다. 비록 첫 시도인 이 책이 시인인 과학자들을 많이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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