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세상을 바꾸는 힘>의 기획자, 길담서원 학예실장 뽀스띠노 인터뷰
등록일 : 201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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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독자 여러분에게 첫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길담서원에서 일과 공부를 놀이 삼아 즐기고 있는 뽀스띠노 이재성입니다. <일 뽀스띠노Il Postino>는 아르헨티나의 시인 빠블로 네루다가 이탈리아의 작은 섬으로 망명을 갔을 때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뽀스띠노는 남자 우편배달부를 일컫는 말이구요. 간신히 글을 읽을 줄만 알던 섬총각 마리오 로뽈로가 전 세계에서 빠블로 네루다에게 오는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빠블로 네루다와 우정이 싹트고 한 여자를 사랑하고 은유를 알게 되면서 시인이 되고 자기 사상을 가진 사회주의자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어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소개하는 글을 쓰고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것도 우편배달부가 편지를 전달하는 것과 같은 메신저의 역할로 봤어요. 한때 빠블로 네루다 같은 시인이 되고 싶기도 했었고....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붙인 별명인데 지금은 본명보다 더 많이 불리고 있어요.


Q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일곱 번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일’, ‘몸’, ‘돈’, ‘집’, ‘밥’, ‘품’을 잇는, 이번 주제말은 ‘힘’입니다. 한 글자 인문학이라는 콘셉트가 아주 흥미로운데요, 어떻게 ‘한 글자’ 우리말을 가지고 인문학교실을 열 생각을 하셨는지요?
A  청소년인문학교실을 어떤 주제로 풀 것인가? 하는 회의를 하는 중이었는데요. 길담서원 박성준 선생님께서 한 글자로 된 단어를 주제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셨어요. 한 글자를 떠오르는 대로 불러보니, 길, 일, 돈, 밥, 집, 옷 등등 이 모든 단어들이 우리 삶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 지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한 글자를 주제로 정하고 그 주제를 역사적인 관점, 사회과학적인 관점, 문학적인 관점, 예술적인 관점, 철학적인 관점, 주제와 밀접한 현장답사 등 다각도로 풀어내기로 했지요.

특히 답사는 함께 강의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모둠별 활동과 주제발표 등을 통해서 서로 사귀고 우정도 쌓기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반드시 진행하고 있는데요. 책에는 그 부분이 빠진 것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논밭예술학교에서 했던 버들피리 방구대회, 변산공동체에서 있었던 달빛 음악회, 질경이 캐기, 잔서완석루까지 모둠별로 찾아와서 그 과정을 그림으로 그리고 발표하기, 품에 대한 주제를 진행하면서 모둠별로 공동체를 찾아가서 인터뷰하고 발표하기, 홍순명 화가의 아뜰리에서 나의 아바타 그리기 등등 청소년들의 몸과 정신이 해방된 가운데서 진행되었던 프로그램 아닌 프로그램들도 포함되어 있답니다.


Q   이번에 출간된 『세상을 바꾸는 힘』을 독자들에게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요? ‘힘’이라는 주제말로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을 기획하게 된 이유가 특별히 있으셨는지요?
A  길, 일, 돈, 몸, 밥, 집, 품에 이어 자연스럽게 힘을 주제로 진행했는데요. 당시에 학교폭력에 대한 기사가 횡횡하고 있었고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 교권의 추락이다 인권이 먼저다 등등 설왕설래하고 있었어요. 이런 기사가 나올 때마다 힘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역학관계에 대해서 풀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책에는 청소년들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한 학교폭력, 정치구조의 문제이기도 한 국가의 힘, 국가의 힘으로부터 개인을 지킬 수 있는 시민의 힘, 사람이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작지만 따뜻한 힘 그리고 힘의 철학적 의미 등을 담았어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종교의 힘이라든지, 과학의 힘 등도 다뤄보고 싶어요.
 



사진출처: 길담서원


Q
 
 어린이집 아동학대, 군대폭력, 세월호 참사와 국가 문제…… 최근 우리 사회에 논란이 된 문제를 보면, ‘힘’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누구든 경험하는 이 힘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어떤 개인적, 사회적 지혜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A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장 추악한 돈이 곧 힘인 사회에 살다보니 그런 것 같아요.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없는 사람은 가진 사람에게 굴욕적으로 순종할 수밖에 없는 피라미드사회에 살면서 사닥다리에서 낙오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을 어렸을 때부터 경쟁 속에서 몸에 익혔고 그것이 감내하는 삶을 살게 했다고 생각해요.
학교 교육에서 농사라든지, 길쌈이라든지, 집짓기, 채집 등. 자본주의 시스템을 벗어나서도 가난하지만 소박하게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이성으로 인식했다면, 그런 굴욕을 감내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렇게 감내하지 않았다면 일방적인 폭력은 이뤄지지 않았을 거구요.
저는 인권교육도 중요하지만, 자립할 수 있는 삶을 배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 자존심과 노동력을 팔지 않아도 나는 내 힘으로 먹고살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하는 그런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는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소득이라고 하면, 무슨 일을 해서 버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그렇지 않아요.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하지 않고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금을 국가로부터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조적으로는 이러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교육과 공동체를 통해서 노동력을 팔지 않고도 자립할 수 있는 삶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이 책은 국가폭력, 학교폭력 같은 부정적인 힘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작고 따뜻한 힘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뽀스띠노 님께서 일상에서 경험하는 ‘작지만 강한 힘’은 무엇이 있는지 독자 여러분에게 나누어주세요.
A  작지만 강한 힘은, 서문에도 썼지만, 연대의 힘, 힘의 바톤터치라고 생각해요. 작은 합의가, 공감대가 바닥에 깔려 있으면 그것은 그 사회의 문화가 되거든요. 폭력이 득세하면 그 폭력이 힘을 얻어 더 크게 날뛰지만 그렇게 하면 못 쓴다, 부끄러운 짓이다. 하는 합의가, 공감이 생기면 함부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따뜻한 힘이 그런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치적으로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힘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자각에 의해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만들어지는 그러한 힘이요.


Q   길담서원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다양한 공부 모임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빨강머리 앤 읽기+되어보기’라는 모임은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서당 모임이라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모임을 기획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합니다. ‘빨강머리 앤 읽기+되어보기’라는 모임 이름도 재미있는데요, 왜 ‘빨강머리 앤’인가요?
A  세월호 참사가 있고 오랜 시간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어요.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세상은 싫고 조금만 건드리면 눈물이 나왔어요.
그러다가 어떤 신문기사를 봤는데 일본에서 후쿠시마 참사 이후에 많은 지성인들과 시민단체,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현장을 분석하고 출판을 하고 토론을 하고 찾은 대안이 교육이었다고 해요. 그것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길담서원은 공부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청소년을 길러내는 그런 공부를 하자.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면서 공부가 놀이가 되고 놀이가 공부가 되게 하자. 스스로의 삶을 자기 사상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공부를 하자.

이런 고민 끝에 우리나라 전통 공부방식인 나이와 상관없이, 실력에 상관없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서당식 공부를 떠올렸어요. 10~12명 정도의 각기 다른 나이의 아이들과 훈장님이 함께 공부를 하는데 현재 교육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영어원서로 <빨간머리 앤>을 읽어보아도 좋겠다 싶었어요. 자연을 경탄하면서 바라보는 앤의 감수성과 친구와 주변사람들,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100년 전 몽고메리가 살던 캐나다 땅의 풀꽃들이 길담서원 뜰에서도 피어난다는 연대감 등등을 공감하며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빨강머리 앤도 원룸스쿨(one room school)에 다녔다는 것도 공통점이기도 하고.....
식물 이름이라든지, 호수의 이름이라든지, 우리가 주어진 이름에 아무런 질문을, 물음표를 던지지 않고 있는데 빨강머리 앤은 달라요. ‘왜 이런 이름이 붙었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라면 이렇게 불러줄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모든 촉수가 살아 있고 나로 살고 있는 빨강머리 앤을 읽으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나를 발견하고 나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풀꽃을 드로잉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드로잉 전에 많은 풀꽃 중에 어느 것을 그릴 것인가? 꽃을 그릴 것인가 뿌리를, 잎을, 잎을 그린다면 정밀묘사를 할 것인가? 내 나름대로 해석해서 그릴 것인가? 풀을 뽑아서 관찰하고 흙냄새를 맡고 그러한 모든 과정을 교사의 지시가 아닌 청소년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어요. 그래서 저희는 일 년간 <빨강머리 앤>을 읽으면서 앤의 시선으로 생태계를 살피면서 그 안에서 차츰차츰 자기 나름의 삶의 방식을 찾기를 바라고 있지요.

아주 작은 어긋남을 우주탄생의 비밀로 보는 에피쿠로스학파들처럼 이러한 작은 활동들이 아이들로 하여금 사닥다리 타는 삶이 아니라 내가 즐겁고 더불어 사는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사진출처: 길담서원


Q   니체, 엠마 골드만, 레비나스, 슈마허, 사사키 아타루, 우치다 타츠루…… 그동안 길담서원에서 함께 읽어나간 사상가와 책의 목록이 제법 쌓였을 것 같습니다. 뽀스띠노 님에게 많은 영감을 준 사상가와 책을 짧게 소개해 주신다면요?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책을 읽어나가면, 혼자 읽어나갈 때와 많이 다른가요?
A  콩글리시반에서 2월이면 1년 정도 영어 원서로 읽어오던 독일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 Ernst Friedrich Schumacher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강독이 끝나요. 매주 수요일 오전 2시간씩 읽었구요. 니체왈츠반에서 독일어 원서로 읽고 있는 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를 읽고 있어요.
두 책의 공통점은 번역서로 읽었을 때보다 훨씬 풍부하게 읽힌다는 것입니다. 번역서로 볼 때 나무와 나무의 줄기만 보았다면 잎과 열매 그리고 냄새, 촉감까지 느끼게 되는 독서라는 게 매력입니다. 특히 콩글리시반에는 박성준 선생님께서 해설을 곁들이면서 내용이 풍부해지고 문법을 설명해주면서 문장이 더 명확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니체를 읽을 때는 니체를 안티크리스트라고 불리는 것처럼, 성서의 내용을 비틀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고 그러는데요. 두 명의 목사님이 함께 참여를 하고 있고 문학, 심리학, 미술사 전공자 등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의 깊이로 읽은 관점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요즘은 이 두 사상가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이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강연의 결과물이지만, 교사, 학부모 등도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시리즈 읽기 모임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연 형식이라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고 다양한 토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진행할 주제에 대해서도 관심 가져주십시오.

그리고 ‘빨강머리 앤 읽기+되어보기’에 이어 한문학과 붓장난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느리게 배우기, 빈둥대기를 잃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청소년들과 먹을 갈고 붓을 들고 한지에 한자를, 한문을 쓰면서 익히고 노는 시간입니다. 붓을 가지고 잘 놀면 그것이 곧 예술이라고 믿고 놀아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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