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책 밖에서 만난 작가┃『철학이 있는 도시』를 펴낸 인문사회학자 우석영 인터뷰
등록일 : 201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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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이번에 나온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신다면요?
A ∥ 이 책은 미술비평을 매개로 한 사회비평집입니다. 그림 읽기를 통해 우리 사회, 도시의 삶, 철학을 함께 생각해보고 모색해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철학이 있는 도시

오늘날 우리는 이 시대를 압축성장 시대라 부르는 데 별다른 이견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압축성장 시대를 되돌아보며, 단기간에 이룩된 산업화와 민주화를 내외에 자랑스레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우리는 압축성장, 산업화, 민주화의 결과가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대도시에서 과연 어떤 모양새로 살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 명확히 알지 못하며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도시살이라는 현실에 매일같이 매몰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삶의 양태가 매우 복잡하고 모순적이어서 우리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운 탓도 있을 것입니다.

국가가 언제나 강조되며 국민 위에 군림해왔지만,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국가는 빈곤한, 그보다는 사기업이 피고용자-개인의 이익을 보호하는 (국가 없는 국가주의라는) 모순적인 사태는, 이 난해한 사태의 한 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사실상 독점재벌이 전 국민을 고객으로 환원해 그 삶과 정신의 세세한 구석까지 지배하고 있는데도, 그 피지배의 당사자들은 재벌을 지배자로 인식하기는커녕 명예로운 한국의 대명사로 호출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데, 이러한 사태도 받아들이기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이지요. 특정 영화를 1,000만 명이나 보고, 베스트셀러가 쉽게 조작 가능하며, ‘인터넷 검색어 1위’ 따위로 전 국민적 화제를 통일하는 집단주의 도시 문화는, 전 세계에서 그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특이 현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당연시할 뿐 자기이해나 분석, 자성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이러한 삶이 바람직한 삶이라는 표준적인 삶의 모델, 행복의 모델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이를 의식하며 사는데, 이런 모델화된 삶의 추구 또한 다른 사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고층 아파트살이를 당연시하고, 고속과 테크놀로지를 탐닉하는 정신 역시 지구상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그 예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 책은,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를 당연시하는 태도에 제동을 걸며, 한국인의 당대 이해, 자기 이해를 돕고자 쓰였습니다. 대다수의 한국인이 오늘날 도시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왜 그렇게 살아가게 되었는지, 이 시대의 집합적 삶을 그 근원에서 네비게이팅하는 정신성과 그 뿌리는 무엇인지, 우리 자신에게 비추어주는 책이 되길 바라면서요.


Q ∥ 이 책을 어떻게 집필하게 되셨나요? 집필 과정에서 힘든 점, 또는 재미있었던 일은 없으셨나요? 특히,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집필 작업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A ∥ 2013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영어로 미술산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이 책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2014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새롭게 집필하고 다듬어낸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10년 만에 다시 한국에 와보니, 너무 많이 변해 있는 한국의 모습이 인상 깊은 한편으로, 가슴을 묵직하게 하는 생각들이 많아졌습니다. 저 역시 그 10년 동안 너무 많이 변해서,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국내 작가들과는 조금은 다르고, 또한 새로운 관점으로 이 책을 풀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미술산문집으로 생각하고 썼습니다. 저의 전작, 『낱말의 우주』와 『수목인간』은 산문집이지만 상당히 학술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일종의 학술서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이지요. 그런 것이 레퍼런싱 방식도 철저히 아카데미의 규칙을 따랐어요. 제가 늘 하는 말이지만, 레퍼런스가 불성실한 책은 (예술품이 아닌 바에야), 그 내용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불성실한, 엉터리 책입니다. 자기 게 아닌 가짜죠. 그런데 이런 엄정한 아카데믹 시스템, 레퍼런싱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글쓰기를, 문득 하고 싶었어요. 문학적 성격이 짙은 철학 산문을, 자유롭게 써보자, 나오는 대로, 글의 분량 생각하지 말고 내 식대로 써보자는 생각이 어디에선가 올라왔지요. 그래서 쓰게 된 책입니다. 미술산문이라는 포커스는 도시비평, 사회비평이라는 포커스로 변화됩디마만…….

제가 세상에 선 보인 글쓰기는 산문의 글쓰기인데 (에세이, 수필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이 단어를 선택한 이유를 생각해주시길!) 공교롭게도 저는 이십대에 이런 글쓰기를 미술비평가, 예술비평가들로부터 많이 배웠습니다. 김용준, 최순우, 서경식, 이주헌, 안치운…… 비평과 사유의 깊이가 있으면서도 화자의 마음결, 숨결이 죽어 있지 않은 절묘한 작품들. 아직도 저는 이런 글쓰기에 매료되어 있고, 헤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이 책으로 어느 만큼 이들에게 다가갔는지…… 독자가 판단해줄 몫이겠죠.


Q ∥ 책의 제목이 ‘철학이 있는 도시’입니다. 글을 읽다 보면 ‘철학이 필요한 도시’에 대한 이야기인 듯도 했습니다. 제목은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요?
A ∥ 제목이 이상하지요. 철학이 있는 도시론, 이 맞습니다. 철학산문으로 담아낸 도시론, 한국사회론이지요. 그러나 시중에 많이 돌아다니는 ‘철학+타 장르 버무림’은 아닙니다. 보통 이런 류의 책은 철학자들의 사상, 인생 등을 맛보기 식으로 제공하며 독자의 인문학적 욕구를 가볍게 충족시켜주는데, 저는 이런 식의 글쓰기나 책에는 반대입니다. 대중의 욕구를 충족할 수는 있지만, 철학으로 깊이 인도하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일종의 포퓰리즘이 아닐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철학이 필요한 도시’에 대한 이야기라고 읽어도 무방합니다. 여기 도시의 낙원 또는 지옥에서 철학 없이, 영혼 없이 살고 있지 않는가? 라는 질문이 이 책의 주된 질문이니까요. 그러니까 철학이 없는 도시에서 철학이 있는 도시로 가자는 말의 함축도 있는 셈이죠.


Q ∥ 책 속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작품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그림들을 선별하셨나요?
A ∥ 선별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이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욱더 많은 회화작품들을 알게 되었어요. 이를테면 이전에 한 번도 못 본 반 고흐의 작품들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아일랜드 작가 키이빈 같은 사람, 미국에서 활동하는 현혜명 같은 작가는 이번에 저도 처음 알게 된 분이고요. 이러한 리서치 과정에서 제게 말을 건네온 작품들이 있었고, 이 작품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텍스트가 자연스레 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책 속 미술작품들 *

강세황 <초옥한담도> / 게오르게 그로스 <로우어 맨해튼>, <메트로폴리스>, <실직 상태> / 김수철 <송계한담도> /
김정헌 <아파트에 한 뼘의 땅을 선사함>, <흙산> /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프롤레타리안 마더> /
도화서 <동궐도> / 디에고 리베라 <무어 박사의 손> / 딘호 벤토 <인간 동물 II> /
라울 뒤피 <볼로뉴 거리>, <아름다운 여름>, <전기 요정> / 로베르 들로네 <행진의 현장-붉은 타워> /
민정기 <양평 여름> / 바실리 칸딘스키 <운동 I> / 박용빈 <학교 야경> /
베르나르 간트너 <석양 쪽으로 향하는 증기기관차> / 빈센트 반 고흐 <몽마르트의 밭>, <아니에르의 공장> /
샤임 수틴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하교> / 스튜어트 데이비스 <멜로우 패드> / 시그마 폴케 <슈퍼마켓> /
심사정 <임간서옥> / 알베르트 앙커 <선데이 스쿨 워크>, <건초더미에서 자는 아이> /
알프레도 마르티네스 <과일 든 여인들> / 오윤 <마케팅 2-발라라> /
윌리엄 터너 <눈 폭풍: 어느 항구 초입의 증기선>, <비, 증기, 속도-위대한 서부철도> / 이경현 <컨센트레이트> /
이난영 <우리가 꽃이 되고 나무가 되리> / 이인문 <송계한담도> / 임옥상 <이사 가는 사람>, <행복의 모습> /
정선 <삼승조망> / 정재호 <청운동 기념비> / 조지 투커 <웨이팅 룸>, <점심> / 최동열 <서커스 독> /
칸지두 포르치나리 <커피 수확>, <커피 농부> / 클로드 모네 <눈 속의 산드비켄 마을>, <부기발의 센> /
키비인 <인바이런-멘털: 기후 혼돈과 오염> / 탕인 <동음청몽도> / 폴 세잔 <굽어 들어가는 숲길> /
폴 시냑 <베생 항, 칼바도스> / 피에르 보나르 <베르농의 테라스> / 현혜명 <숲 1201>
 





Q ∥ 앞으로 더 집필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신가요?
A ∥ 제 프로필에 적혀 있듯이 평화학, 농업과 음식의 문제 등의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텍스트가 곧 사회운동이 될 수밖에는 없는 분야입니다. 음식의 경우 특히 이러한 성격이 강할 수 밖에는 없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은 매일의 선택, 문화적 취향, 자부의 영역이기에 다른 입장에 대한 저항이 강해서 그렇기도 합니다. 『철학이 있는 도시』에도 적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음식관은 절름발이 음식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발로 서자는 것입니다. 글이 곧 발언, 운동, 총탄이 되는 전투의 현장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려 합니다. 페이스북에 Food Peace라는 페이지를 개설한 이유이지요.


Q ∥ 독자들이 어떤 면에 주안점을 두고 이 책을 보면 좋을까요? 끝인사 겸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이 책은 2015년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책들에 속합니다. 2015년 나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조금 늦추어 2016년 초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지난 70년의 한국사를 총체적으로 되돌아보는 ‘자성, 자기분석, 모색의 책’에 속한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는 위기의 시대, 새로운 가치의 모색기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도시론이 아니고 현 한국사회, 한국현대사의 병리적 상황, 질곡에 관한 전반적 성찰에 경도된 도시론입니다. 한국의 지평을 넘어서는 현대성, 유동하는 모더니티의 문제도 등장합니다만…….

삶을 견딘다는 것, 삶을 지나간다는 것, 삶이 그럭저럭 살아진다는 것. 이것과 삶을 살아간다는 것, 순간순간 풍요로운 지금, 자신의 온전성을 느끼며 삶을 즐겁게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인가요? 스스로 후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 생각에 자신이 있는 분이라면 굳이 이 책을 펼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끝으로 책의 맨 앞머리에 인용된, 파블로 네루다의 시편 「인간 9」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그들은 여기 살고 있다! / 그러나 우리는 살고 있나? / 우리 임시 거주민들. / 그릇된 별을 추종하는 우리들은 / 여기 이 섬에서 난파되었다, / 늪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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