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책 밖에서 만난 작가┃<위키드 프라블럼>을 펴낸 환경저널리스트 한삼희 인터뷰
등록일 : 201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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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우선 독자들에게 첫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 ∥ 반갑습니다. 궁리출판사에서 흔쾌히 제 원고를 받아주셔서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저는 조선일보사에서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벌써 14년째 사설과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신문사에서 일한 지는 벌써 34년 됩니다. 주로 사회부에서 취재 활동을 했었습니다. 경찰서와 검찰청을 드나드는 사건기자 생활을 7년쯤 했습니다. 그리고는 노동, 복지, 교육 문제도 다뤄봤습니다. 그리고는 1983년 편집국에 환경팀이 생기면서 환경팀장을 맡았고, 6년간 환경 지면을 책임졌습니다. 그 기간 중 많은 기획 시리즈와 환경 캠페인 사업을 후배들과 함께 했습니다. 1990년대는 한국 사회에서 환경에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분출했을 때입니다. 신문사에서도 많은 지면을 환경 문제에 할애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쩌다 보니 애초엔 별 관심도, 식견도 없던 환경 분야의 전문기자가 됐습니다. 자꾸 기사를 쓰다 보니 이 문제도 취미를 붙일 수 있겠다 싶어 2000년에는 2년의 신문사 연수 과정으로 일본 쓰쿠바대학 대학원 환경과학연구과에 들어가 석사를 마쳤습니다. 연수 앞뒤에 독자부장, 사회부장을 1년씩 했고, 2003년부터 지금까지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부연을 하자면, 2003년부터 조선일보 오피니언면에 ‘한삼희의 환경칼럼’이라는 칼럼을 3~4주 간격으로 써왔습니다. 180차례 이상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논설위원은 칼럼 외에 사설도 써야 합니다. 사설은 환경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사건, 법조, 교육, 복지, 노동 등 사회 분야에 전반에 걸쳐 써왔습니다.


Q ∥ 이번에 펴낸 『위키드 프라블럼』은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네요. ‘위키드(wicked)’는 ‘짓궂다, 골치 아프다, 모순적이다’ 등의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아직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 ‘기후 난제’들을 그렇게 칭하나 본데요, 언제부터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요? 올여름 한달여 폭염도 ‘위키드 프라블럼’에 속하는지요?

A ∥ 책 첫머리에 썼습니다만, 영국의 마이크 흄이라는 교수가 쓴 ‘왜 우리는 기후변화를 놓고 그렇게 의견이 부딪히나(Why we disagree about climate change)’라는 책에서 발견한 용어입니다. 흄 교수는 기후변화와 반대로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고 해법도 비교적 분명한 오존홀 문제에는 ‘테임 프라블럼(tame problem)’이라는 표현을 달았습니다. ‘쉽게 길들여진다’는 정도의 뜻이겠죠.

흄 교수의 ‘위키드 프라블럼’이라는 표현에 마주치고는 정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용어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그 용어를 제 책의 제목으로 삼아보자고 생각한 뒤에 적당한 번역어가 없을까 고민해봤습니다만 결국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사악하다’ ‘짓궂다’ 정도가 제일 가까운 의미일텐데, 그러나 ‘위키드’라는 용어가 포괄하고 있는 많은 뜻을 다 나타내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위키드’란 말의 뜻을 추상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몇 가지 예를 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책 첫 부분에도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지구가 온난화로 뜨거워지고 있다는데 이상하게 지난 겨울 전 세계적으로 혹한이 닥쳤습니다. 얼핏 보면 황당한 이야기죠. 그런데 그것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됩니다. 북극이 더워지는 바람에 북극권을 휘감아도는 제트기류가 헐거워지면서 북극 찬 기단이 북반구 중위도로 이리저리 내려오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기후변화의 작용이 아주 모순적으로 구현되는 것은 대표적으로 위키드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옥수수 에탄올이니 야자나무 열매로 만든 바이오디젤 같은 것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원래 의도와는 거꾸로 되레 온실가스를 더 많이 뿜어내거나 온실가스를 줄이는 효과는 없이 가난한 사람이 더 배가 고프게 만드는 결과나 초래했습니다. 이것도 역시 위키드한 현상입니다.

기후변화의 가장 위키드한 점은,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선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행동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인간 본능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죠. 이기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타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이타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제 책에선 그런 기후변화의 위키드한 성격을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가진 두 가지 물리화학적 특성으로부터 찾고 있습니다. 하나는 확산성이고 다른 하나는 축적성입니다. 책을 읽으셔야 하니까 여기서 자세하게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만(^^), 확산성이라는 것은 화석연료를 태워 배출한 이산화탄소 분자들이 수개월 만에 전 세계 각지로 퍼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기후변화의 피해는 열대 지역에서 민감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열대 지역에 주로 개발도상국이 몰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진국들에서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 피해를 온실가스를 별로 배출하지 않은 개도국들이 입게 되는 구조가 나오는 것입니다. 제 책에선 이걸 ‘공간적 비대칭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의 또 하나의 특성은 축적성인데, 대기 중에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상당 부분은 수백 년 이상 수명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대기 중에 머물면서 지속적으로 기후변화를 일으킵니다. 10만년이 지나도 7%는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우리 세대가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차곡차곡 쌓여서 그 피해는 수십년 뒤부터 나타나기 시작해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앞 세대의 탐욕으로 뒷 세대가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걸 ‘시간적 비대칭성’으로 불렀습니다. 문제는 이산화탄소를 집중적으로 배출하는 우리 세대는 자신들이 직접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절박하게 느낄 수는 도저히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공간적 비대칭성과 시간적 비대칭성이 결합해 주로 온대 지역에 위치한 선진국 그룹이 배출한 이산화탄소 때문에 수십년, 수백년 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남미 같은 곳의 개도국 국민들이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렇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돼 있기 때문에 가해자의 이타적 이성이 작동하지 않으면 기후변화 문제를 풀기 어렵습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기후변화에는 ‘임계점(tipping point)’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쌓이는 양에 비례해 그 피해가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뚜렷한 피해가 없고, 어떤 경우는 도리어 이득을 보는 지역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기후의 ‘좋은 균형’ 상태에서 ‘나쁜 균형’ 상태로 굴러떨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임계점이 어느 시점에 닥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현 세대의 인간 집단으로선 다가오는 기후 붕괴에 대해 심각한 각성을 일으키기가 어렵습니다.

그밖에도 기후변화의 위키드한 특성들이 많습니다. 다른 부분들은 책을 읽으시면서 접하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올 여름 더위는 심상치 않습니다. 여름 더위 뿐 아니라 연 평균 기온으로 작년에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했습니다. 올해는 8월까지 작년 기록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2~3년 사이 기후의 점프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기후는 서서히 조금씩 변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를 계기로 종전과 완전히 다른 수준의 기후 시스템으로 바뀔 수가 있고 혹시 지금이 그런 상황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Q ∥ ‘기후문제’는 상당히 전문적인 분야입니다. 이러한 전문 주제를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저널리스트가 쓴 이 책만의 차별화되는 부분은 어디에 있을까요? 2천매나 되는 묵직한 책이던데, 주로 어떤 내용을 담으려 하셨는지요?

A ∥ 제가 2009년에 ‘리스크 테이블’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2008년에 일어났던 광우병 쇠고기 사태, 멜라민 사태, 다이옥신 돼지고기 소동의 세 가지 사건을 분석한 책입니다. 그 책을 쓰게 된 직접 동기는 광우병 사태였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미국 수입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정말 극미의 수준입니다. 그 책에서 저는 1만년에 한 명이 채 안될 것이다, 라고 봤습니다. 섭취량과 발병률 간의 관계를 분석해 나온 결론입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서울의 도심에서 석달 이상 격렬한 시위가 벌어질 정도로 시민들이 극히 민감한 반응이 나타났던 것인가를 분석했습니다. 실제 리스크와 달리 체감 리스크를 증폭시키는 요인들이 무엇인가를 찾았던 것입니다.
이번 ‘위키드 프라블럼’에서는 정 반대입니다. 기후변화 이슈가 국제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한지 3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에는 거의 진전이 없습니다. 과학적 사실들이 많이 축적돼 있어도 일반 시민이나 각국 정부들이 느끼는 체감 위기는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역대 최대 실패 사례라는 말도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인간 집단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는, 리스크가 굉장히 큰 이슈인데 왜들 그렇게 무덤덤하고 무감각한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입니다.

국내에도 기후변화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감히 이 문제를 다루려고 덤벼들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저널리스트입니다. 신문기자로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어떤 이슈를 일반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트레이닝을 쌓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후변화 문제는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고, 이해하기 위해선 과학적 사고방식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선 저널리스트로서의 감각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너무 세밀한 데 빠져서 허우적대지 말고, 생략할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핵심이 되는 포인트를 부각시켜서 문제의 본질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 이유는 전문가들은 전문가로서 지켜야 할 어떤 규칙이 있습니다. 우선 자기 분야가 아닌 문제에 대해서는 함부로 얘기하기를 꺼려합니다. 잘못 얘기했다가 ‘알지로 못하면서 쓸 데 없이 남의 영역을 넘본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지요. 그런데다가 전문 연구자들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쓰더라도 정확하게 인용을 밝혀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것이 글의 신속성과 유연성 측면에서 상당히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작더라도 세밀한 부분에서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 과학 연구자들에게 요구되는 규칙입니다. 그러다 보면 전체 그림을 보는 시야가 좁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깊게 파고들어가야 덩달아 시야도 확장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기후변화 문제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면 굉장히 많은 분야를 살펴봐야 합니다. 지질학, 기상학, 생태학 등등의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경제학, 윤리 문제, 심리학 등등의 사회과학적인 상상력도 필요합니다. 이런 걸 두루두루 만족시키면서 일반 독자들에게 기후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전문가가 많지는 않습니다. 제가 그런 능력을 갖췄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다만 ‘이슈의 대중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고, 환경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해온 제 경력이 작으나마 의미 있는 돌파구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Q ∥ 현재 이 지구의 기후를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언뜻 떠오르는 것으로는 이산화탄소, 빙하 등이 떠오릅니다. 이들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도요.

A ∥ 크게 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수천만년 단위로 작용하는 지각의 움직임입니다. 예를 들어 인도 대륙이 5000만년 전부터 유라시아 대륙과 충돌해 북쪽으로 밀고 올라왔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그 바람에 히말라야 산맥이 접혀 올라갔고 이것이 수천만년 동안 지구를 냉각화시켜오고 있습니다. 남극과 그린란드에 빙하가 생긴 것도 그 때문이고, 280만년 전부터 유럽과 북미 대륙에 빙하가 생겼다가 녹았다가 빙하기에 들어선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수만 년 주기로 변하는 지구 궤도의 변화입니다. 지구축 기울기와 세차운동, 편심률 등의 세 가지 요소가 각기 자기 주기에 따라 변하면서 복잡하지만, 규칙적인 사이클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북반구 고위도 지역에 닿는 여름철 햇빛의 세기가 규칙적으로 달라지고 있고, 이것이 10만년 주기의 빙기-간빙기 교대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세 번째가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작용은 지각 운동과 궤도 변화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 올라탄 작은 물결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그것들의 작용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인간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고 있지만 지각 운동, 궤도 움직임을 감안하면 결국은 지구가 다시 빙기로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인간에게 닥친 과제는 수만년 뒤의 지구가 문제가 아니라 수십년, 또는 수백~수천 년 뒤 미래에 닥쳐올 수 있는 급변과 재앙에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피해나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은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과거 지질학적 역사에서 나타나는 변화들보다 훨씬 빠른 단기적 급변을 일으킬 여지가 큽니다.

지질학적 과거에는 기온이 고꾸라졌다 급등했다 하면 널뛰기를 하는 시대가 자주 있었습니다. 지금 지구에는 70억 넘는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굉장히 촘촘한 네트워크와 물자 공급 시스템이 짜여져 경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만약 여기에 기후 급변이 닥친다면 그 때의 세계는 지금의 세계하고는 아주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누르고 두들겨패는 주먹질과 악다구니의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Q ∥ 기후변화 대응을 ‘파스칼의 내기’에 비유하신 맨끝 10장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독자들에게 관련 이야기를 조금만 들려주신다면요?

A ∥ 에필로그 부분에서 설명했습니다만, 온실가스로서 이산화탄소가 가진 온난화 능력이 굉장하다는 걸 저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전 세계인이 소비하는 에너지를 모두 합하면 지구에 내리쬐는 햇빛 에너지의 1만 1000분의 1 정도 됩니다. 그런데 화석연료를 때울 때는 반드시 폐열이 나옵니다. 난로에서만 열이 나오는 게 아니라 자동차를 움직이는 휘발유도 최종적으로는 열의 형태로 주변 공기를 덥힙니다. 엔진에서 나오는 열 뿐 아니라 자동차가 달리면서 공기나 지표와 마찰할 때도 열이 발산되겠죠. 그런데 그 때 휘발유가 연소되면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자신의 긴 수명동안 온실효과를 발휘해 지구를 추가로 덥히게 됩니다. 그런 이산화탄소의 간접 온실효과가 화석연료가 연소될 때 나오는 직접 연소열의 10만 배가 된다는 계산이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좀 너무 비현실적이라면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산업혁명 후 지금까지 대기 중에 추가로 쌓인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난화 능력은 인간이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나오는 화학적 연소열의 57배가 된다고 합니다. 이산화탄소가 수백, 수천 년의 긴 수명 동안 일으키는 온난화를 계산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작용하는 것만 따져도 그렇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런 과학적인 분석과 이론들이 굉장히 난해하고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확실성이 일부 남아 있습니다. 중세 시대엔 상당히 기온이 따뜻했다는 역사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그 당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그렇지 높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상당 수준의 기온 상승이 가능했던 것인지 등의 문제지요.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도 불확실한 영역입니다. 몇 년 뒤에라도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어떤 획기적인 에너지 신기술이 개발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지금의 걱정과 논란은 단숨에 떨어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기후변화 문제를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는 주장이 여전히 강력합니다. 경제는 계속 성장해왔으니 지금 굳이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나중에 부자가 돼있을 후손들에게 대응을 맡기면 된다는 ‘두고 보자(wait and see)’는 논리도 있는 것이지요.

제가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를 들고 나온 것은 그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팡세에 쓴 글에서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관해 ‘그것은 인간이 걸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내기’라고 했습니다. 무슨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고 어느 쪽이든 결단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신이 있는데도 없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죽은 다음의 사후 세계에서 큰 낭패를 겪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신이 없는데도 있다고 믿고 열심히 종교적인 생활을 했다고 해서 별로 잃는 것은 없다는 뜻이지요. 잃는다고 해봐야 주일날 시간을 쪼개 교회에 가야 했던 손실 정도인데 대신 교회에서 많은 친분도 쌓을 수 있고 마음의 안정도 취할 수 있어 이득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백번을 양보해서, 설령 지금의 기후변화론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인간은 기후변화론을 믿고 행동하는 게 낫다는 얘기입니다. 기후변화 대책으로 거론되는 에너지 효율화, 대체 에너지 개발 같은 것들은 설령 기후변화가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에너지 고갈 등에 대비해 꼭 필요한 대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파스칼의 내기’ 논리를 너무 강조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기후변화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상당히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Q ∥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A ∥ 제 책이라고 좀 뭣합니다만, 읽는 재미도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1장에서 소개한 윌리엄 러디먼 교수의 ‘농업 기인 온난화 가설’ 같은 것은 정말 흥미진진한 이론입니다. 인간에 의한 온난화가 200년 전 산업혁명에 들어가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8000년 전 농업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는 내용은 기존 이론의 상당 부분을 뒤집어 엎는 도발적인 내용이지요. 러디먼 교수가 이론을 구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봐도 마치 뒤늦게 사건 현장에 도착한 형사반장이 묘한 단서 하나를 발견하고는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과 흡사합니다. 최근 2000년 사이 세차례 있었던 페스트 등 전염병의 대규모 창궐이 기온 하락을 야기시켰다는 것도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입니다. 아직 학계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추리 소설을 읽는 것같은 재미도 있는데다가 이론 전개 과정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기후변화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따로 한 장을 할애해 정리해봤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대홍수가 8200년 전 실제 흑해 연안에서 벌어졌던 사건일 것이라는 이론도 상당히 그럴싸합니다. 학자들의 실제 현장을 발굴해 상당 부분 입증한 내용이지요. 북미 대륙의 빙하 호수가 붕괴되면서 해수면이 상승해 지중해물이 흑해 쪽으로 넘쳐들어갔다는 것이지요. 빙하기에는 이런 식의 대규모 기후급변이 잦았습니다. 윌리엄 버로즈 교수는이렇게 기후가 덜컹덜컹 변하는 빙기를 ‘긴 풀(Long Grass) 시대’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반면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간빙기는 잘 다듬어진 평온한 잔디밭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인간에 의한 대규모 온실가스 배출이 기후를 다시 덜커덕거리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경고들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 더 소개를 해보자면, 석탄을 캐내쓰지 말고 지각 안에 그대로 보관해두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에는 당장 닥친 온난화를 막자는 것도 있지만, 수만년 뒤 나중에 지구 궤도 변화로 어쩔 수 없이 지구가 빙기로 들어서는 상황에 닥쳤을 때 이 석탄을 빙기 도래를 막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기온 올라가는 것 막기 위해 석탄 사용하지 말자는 것도 있지만, 나중에 기온 올리는데 써먹기 위해 아껴두자는 것이지요. 저는 이 주장이 상당히 일리 있다고 봤습니다. 수만년 단위의 장기 시각에서 보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얘기이지요. 다만 수명이 100년 밖에 안되는 인간이 수만년 뒤의 일까지 과연 내다보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딜레마에 부딪히게 됩니다. 수십년 눈 앞의 미래만 아니라 수백년, 또는 수천년 이상 먼 미래의 일까지 감안한 의사 결정을 하자는 롱나우(Long Now) 운동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기후에 얽힌 이런 복잡미묘한 문제들을 독자 여러분께서 맛보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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