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주목할 저자, 바로 그 책!┃前 법조전문기자 이범준 인터뷰 10문10답
등록일 : 200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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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극장을 찾았을 때 국가의 검열이 없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자유, 사랑하는 여인이 동성동본이라는 이유로 절망해 목숨을 끊지 않아도 되는 사회. 너무나도 억울한 일을 검사라는 사람마저 무시하는 경우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국가, 장애인이 생계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그들을 위해 또 우리를 위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토론, 광장으로 나가 외치고 모이고 함께하고 토론하는 것을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고민. 이런 것들을 모두 헌법재판소가 다룹니다. 대통령 탄핵이나 국회의원 비례대표 승계에 대한 판단보다 절실하고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이런 것들이고, 학교에서는 정치영역이라 부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정확하고 엄밀하게 엮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우리 현대사의 역사적 배경과 흐름에 관해, 이를 설정하고 주도한 정치에 관해, 무엇보다 이를 심판한 헌법재판관과 헌법재판소에 관해, 그리고 국민의 의사가 어떻게 반영되었고 다시 우리가 어떻게 영향 받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한 책입니다. 이런 포괄적 구성은 미국이나 일본 기자들도 시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이 나라 대한민국이 어떻게 아파하고 고민하며 여기까지 왔는지, 여실하게 보이고 싶었습니다.
 

Q 몇 년 전부터 언론매체에 헌법재판소가 자주 등장하면서 갈등상황의 중심에 놓이고 있습니다. 헌재의 판결에 대해 늘 이렇게 극과 극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모습인가요? 아니면 과도기적 현상인가요?
A
∥ 헌법재판소는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사건을 다룹니다. 그래서 재판소 결정은 철학에 가깝습니다. 가령 낙태 합법화에 대한 대한민국 헌법의 요청은 무엇일까요. 찬성과 반대 모두 헌법에 근거해 세련되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논리와 법률이 아닌 역사와 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판소가 과거에 정치와 여론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2009년 현재 헌법재판소는 그런 영향이 사실상 없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재판관 모두가 자기의 강력한 신념에 바탕해 결정한다고 합니다. 어떠한 압력도 재판관의 결론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헌재가 변하기를 바란다면, 오히려 임명권자에게 자기와 입장을 같이하는 재판관을 임명토록 압박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현실적입니다.
 

Q ∥  다른 나라들에도 헌법재판소라는 곳이 있나요? 그들의 명망이나 평가는 어떠한가요?
A ∥ 일본에는 헌법재판소가 없습니다. 최고재판소에서 민사, 형사, 헌법 사건을 모두 다룹니다. 미국에는 주 대법원이 민사, 형사 사건을 마무리하고, 연방대법원에서 헌법 사건을 처리한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헌법재판 제도는 모든 나라에 있지만, 헌법재판소의 존재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세계적으로 독일 헌법재판소가 유명하며 우리 재판소도 아시아에서 유력한 곳입니다. 독일은 나치 독재를 거치며 헌법도 죄악일 수 있다는 교훈으로 헌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박정희, 전두환 독재 헌법을 거친 다음 민주화 헌법에서 헌재를 만들었습니다.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한 독재자들의 존재가, 역사적으로 올바른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권력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재판관이 만드는 헌법재판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재판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사의식과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Q 헌법재판과 일반재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나요?
A ∥ 형식에 대해 말하자면, 법대로 싸워보자는 것이 일반재판이고, 법이 맞는지 가려보자는 게 헌법재판입니다. 일반재판이 국민의 대표가 만든 법률에 구속된다면, 헌법재판은 국민이 직접 만든 헌법에 근거합니다. 예를 들어, 국회가 사기죄를 만들면, 법원은 사건을 재판합니다. 똑같이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청구액을 갚지 않는다고 해도, 처음부터 갚을 의도가 없었다면 사기죄에 해당하지만, 갚으려고 했지만 상황이 나빠진 경우라면 사기가 아닙니다. 이런 구분을 하는 것이 일반재판입니다. 이에 비해 헌법재판은 사기죄라는 것으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맞는 것인지를 판단합니다. 이 밖에도 탄핵심판, 권한쟁의 등이 헌법재판소의 몫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이런 점까지 고려하면, 일반재판은 법률에 의해 분쟁을 가리는 곳이고, 헌법재판은 헌법에 의해 사회의 한계를 가리는 곳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헌법률심판이란 것도 생각해보면, 국회의원 권한의 한계를 긋는 일입니다.


Q 종종 대법원과의 관계나 그 서열 등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헷갈리기도 합니다. 이 둘은 어떤 사이인가요?
A ∥ 대법원은 법률을 가지고 사건을 판단합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을 가지고 법률을 심판합니다. 하지만 말처럼 영역이 쉽게 나뉘지 않습니다. 애매한 영역이 많습니다. 누가 상위기관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경험과 역사로 구분되어야 합니다. 독일 헌법재판소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년에 불과한 역사 탓인지 분쟁이 여전합니다. 더구나 영역 구분이 논리적으로 필연성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쉽게 해결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요새 대법원에서는 헌법재판을 회수하기를 바라 사법기관 일원화를, 헌재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자며 대법원-헌재 이원화를 주장합니다. 대법원이 일원화를 주장하는 핵심은 일관성이고, 이원화를 주장하는 근거는 전문성입니다. 대법원은 이렇게 나뉘어서는 주권자인 국민만 혼란스럽다고 말하고, 헌재는 대법원이 가져간다면 사실상 기능이 폐기될 것이 뻔하다고 합니다. 어느 것이 좋은 제도인지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 책을 쓰기 위해 신문, 잡지, 논문, 영상, 속기록 등 1만 장 분량을 검토하고, 재판관, 연구관, 청와대, 관련자들을 100시간가량 인터뷰했다고 서문에 밝히셨지요. 이런 방대한 치밀한 작업을 혼자 하면서 힘든 적은 없었나요?
A ∥ 이번 취재에서 재판관 등 관련자에게 인터뷰를 허락받는 일이 핵심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언론사에 속한 기자였다고 해도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인터뷰 요청에 앞서 취재원들에 관한 확보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오래 걸렸습니다. 당사자도 기억하지 못하는 논문들을 찾아내고, 주변의 증언도 청취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인물에 대해 마음에 애증이 생깁니다. 어떤 부분은 미워하고 어떤 결정은 흠모하게 됩니다. 자려고 누우면 머릿속에서 재판관들이 서로 토론하며 싸우기도 했습니다. 절실하게 당사자들을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마음을 담아 인터뷰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노동량은 많았지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예상하고 각오한 것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즐거움이었습니다.
문제는 외로움이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한마디 하지 않고 혼자 기록을 들추는 것도 일이었지만, 모든 상황을 혼자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습니다. 조직이 움직이고 회사가 판단하여 책임지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매일매일 혼자서 이런 서술이 맞는 것인지, 바른 것인지, 고민하고 결단해야 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커피와 달리기, 음악과 맥주로 버텼습니다. 외로움은 참으로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Q 오랫동안 논란이 많았던 ‘5.18 불기소 헌법소원 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의 모든 과정을 이 책에서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이런 중요한 자료들은 어떻게 발굴했는지요?
A ∥ 취재과정을 일일이 공개하지 못하는 점을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5.18 사건은 헌재 선고 이후 15년이 지났습니다. 광주 항쟁 이후부터 치면 30년입니다. 어느새 조금씩 기억이 사라지고 이제는 아무도 그날을 말하지 않습니다. 언어로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진실을 알아내 역사에 새기고 싶었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을 가상히 여긴 분들이 취재 지점을 짚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은, 지난 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역설적으로 취재가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이 부분은 처음에는 욕심내지 않은 것이었지만, 재판소 역사를 취재하면서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Q 헌법재판소의 역사는 부침 많았던 한국현대사를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집필한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쟁점이 있다면요?
A
∥ 부끄러운 얘기지만 5.18에 관해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도 어차피 지난 일이라 여겨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번 취재를 통해 비로소 실체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1995년 전후로 재판소가 이 사건을 처리한 과정을 반드시 기록해 남겨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다소 무거운 내용이 책 한가운데에서 버티고 있어,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서럽고 눈물겨운 희생 덕에 제가 자유를 누리며 책을 쓰고 있음을 되새기면서, 부족한 능력이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Q 신문기자직을 그만두고 이 책을 집필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집필작업을 이끌어가는 계기와 원동력은 무엇이었습니까?
A ∥ 신문사 입사 전까지 법조에 관해 아는 바도,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초동에 법조기자로 처음 출입하면서는 이곳을 쓰레기 하치장 같은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사회의 모든 갈등과 욕망이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에서 개별 사건을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에 시그널을 보내고 뼈대를 잡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범죄를 저지르면 사회가 어떻게 처벌하는지, 국가는 국민에게 어떻게 세금을 걷고 병역을 부과하는지, 이혼과 양육에 대한 공동체의 태도는 무엇인지 등등, 법관의 판결은 철학과 토론이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자 이 사회의 기조가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 역사를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기록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씨줄과 날줄로 엮어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법조사 시리즈는 제가 알고 싶어 취재하는 것이고, 시간이 흘러도 날아가지 않고 기억되라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신문사를 그만두는 데에는 많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다만 책과 관련해 말씀드리면, 법조사를 기록하기 위해 체계적인 법학 학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법조사 4부작을 계획은 해놨는데 도무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법조 역사 기록을 위해 어떤 취재와 검토가 필요한지 하나도 알 수 없었고, 알려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 자신이 경험 없는 것은 물론, 선례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4부작을 모두 전업으로 작성해야 하는지는 접어두더라도, 일단 제1부라도 완성하지 못하면 일은 시작도 못하고 끝날 게 확실했습니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물론 취재원들은 기자 개인보다는 언론사의 대표로 생각해 취재에 응하고, 기자 자신도 취재력의 핵심은 언론사의 영향력이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문사에 소속되지 않고 취재가 가능할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써야 했습니다. 이번에 노하우를 다소 갖게 되었고, 나머지 3부를 어떤 상황에서 만들지는 아직 모릅니다.


Q 대한민국 법조사 4부작을 완성하겠다는 마스터플랜을 이야기하셨는데요, 대략의 뼈대를 소개해주세요.
A ∥ 헌재, 법원, 검찰, 로펌이 대상입니다. 법원 편에서 역대 판결을, 검찰 편에서 핵심 수사를, 로펌 편에서 주요 협상을 다루려고 합니다. 법원 편과 검찰 편을 묶은 다음 민사와 형사로 나누고, 그 안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를 배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기록을 완성하겠다는 다짐 외에는, 모든 것을 열어두었습니다. 궁리출판 독자 여러분의 도움과 지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Q 끝으로, 이 책을 만날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지난 과거는 다가올 미래의 서막이다(What is past is prologue).’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The Tempest)』에 나오는 말입니다. 과거는 미래에 그리고 미래는 과거에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됩니다. 책을 통해 젊은이들이 미래를 준비하고 토론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없는 영광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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