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책 밖에서 만난 작가┃<천년의 독서> <고전 읽는 가족>을 펴낸 로고스 고전학교 전병국 대표 인터뷰
등록일 : 2017-10-24
트위터로 공유하기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미투데이로 공유하기
 

Q ∥ 우선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컴퓨터와 인문학의 두 세계를 오가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전병국이라고 합니다. 약간 바쁘게 살기는 하지만 가족을 사랑하고 참다운 인생을 살고 싶은, 대한민국의 많은 아빠들 중 하나입니다. IT 세계에서는 검색엔진과 데이터 분석 쪽 일을 하고 있고, 인문학 세계에서는 인류의 스승들에게 배우며 고전교육 아카데미 <로고스 고전학교>와 독서 공동체 <고전 읽는 가족>을 이끌고 있습니다. 동떨어진 세계를 오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파편화된 우리 삶이 다시 하나되는 꿈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조각난 몸과 마음, 현실과 이상, 개인과 사회, 생활과 공부를 하나의 그림 안에 천천히 다시 그려 넣고 있습니다.


Q ∥ 인터넷 검색엔진을 만들고 회사를 창업하며 IT업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셨습니다. 6년 전부터는 고전교육 아카데미 <로고스 고전학교>와 독서 공동체 <고전 읽는 가족>을 이끌며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삶도 꾸려가고 있습니다. 이 두 활동을 함께하는 보람 및 고단함에 대해 들려주십시오.

A 보람만 가득하다고 말하면 좋겠지만 고단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고전학교와 모임이 자리잡으면서 나아졌습니다. 예전에는 훨씬 힘들었습니다. IT 일만 해도 벅찬데 인문학을 가르치고 공동체를 이끄는 일까지 병행하니 힘들 수밖에 없었죠. 정신적인 면, 물질적인 면 모두 어려웠습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 공동체적인 배움과 변화, 스승의 무게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고전학교와 모임은 돈 버는 일이 아니라서 거기 에너지가 들어가는 만큼 돈이 줄어드는 것은 각오한 일입니다. 그래도 IT 쪽 사업이 잘 안 풀릴 때는 고생스러운 상황이 생기곤 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개척자는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야 제 결단이니까 각오했지만 이런 뜻에 동참해준 가족들이 고마울 뿐입니다.

보람은 단 하나로 모아집니다. 가족이 모여 고전을 읽고 지혜를 나누는 ‘가족 학교’가 이어지고 늘어나는 것입니다. 세상은 대가족을 핵가족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서 이제 그 작은 가족마저 뿔뿔이 흩어놓고 있습니다. 무슨 대단한 캐치프레이즈가 아닙니다. 가족이 가족 되기를 바랍니다. 그게 저의 기쁨이고 보람입니다. 가족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은 막연합니다. 특히 청소년 가족은 더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입시에 시달리고 부모는 격무에 시달리면서 하숙집 동거인들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 고전을 읽는 데 열쇠가 있습니다. 모일 이유가 생기고 나눌 거리가 생깁니다. 부모는 잔소리하고 자녀는 귀를 막는 가족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부모 자녀 모두가 위대한 고전 앞에서 학생이 되면 많은 것을 함께 배우고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건물이 없고 교사가 없어도 진짜 학교를 열고 진짜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나그네로 사는 인생들이 왜 가족으로 묶여서 태어날까요? 생물학적 이유뿐일까요? 가족이 가족으로 만난 뜻이 있습니다. 소멸하는 세상에 살면서 불멸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인생 최초의 공동체, 최선의 공동체가 가족입니다.

흔히들 공부를 말합니다. 진짜 공부는 혼자서 불가능합니다. 공동체가 있어야 공부가 됩니다. 공동체가 있어야 존재가 바뀌는 공부가 됩니다. ‘가족 학교’가 최선의 답입니다. 다른 답은 차선입니다. 사람이 사람 되는 것이 인문학이요 참 공부라면, 공부를 공부되게 하는 것이 공동체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인류가 만나는 최초의 공동체가 가족입니다. 혈연으로 묶여 (심지어 지겨워도) 떨쳐낼 수 없는 것이 가족입니다. 그렇게 만난 뜻을 헤아려 함께 공부하면, 세상 어디서도 해낼 수 없는 참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Q ∥ 고전교육 아카데미 <로고스 고전학교>와 독서 공동체 <고전 읽는 가족>은 요즘 들어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아가는 ‘공부’와 ‘공동체’라는 두 키워드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두 요소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더 절실해질까요? 그렇다면 독자들은 어떻게 준비를 하면 좋을까요?

A 기계가 많은 것을 대신하는 시대입니다. 인간의 반복적 ‘행동’은 기계의 모방과 복제가 끝난 지 오래입니다. 오히려 더 잘 해내지요. 그렇다면 인간의 특별함은 무엇일까요?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참다운 인간이 될 수 있는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공지능(AI)이 화두가 될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공부와 발현이 더 중요해집니다. 기계와 경쟁하는 수준의 일은 점점 도태되고, 기계와 다름이 드러나는 일이 빛나게 됩니다. 별을 찾아내는 것은 기계의 일이지만, 별자리를 그려내는 것은 인간의 일입니다. 인간의 인간됨을 찾는 길이 공부이고 인문학입니다.

공부가 강조될수록 공동체가 따라옵니다. 공동체 없는 공부는 시험 공부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되는 것은 함께 있을 때입니다. 서로 부딪히며 다듬어져야 공부가 되고 인간이 됩니다.

첨단기술의 시대에 정말 중요한 것은 첨단기기 사용법을 배우고 트렌드를 따라잡는 것이 아닙니다. 독서 모임, 공부 모임, 지혜 모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배움의 공동체를 이루고 불변의 진리와 자유를 배워가는 것입니다. 거창한 모임이나 인문학 교실에 등록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와 모임을 시작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삶을 부딪히고 공유하는 사람과 독서하는 것이 진짜입니다.

물론 바쁜 삶에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황이 마련되기만 기다리면 그날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대가를 지불하고 그런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줄이고 포기하고 내려놓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인간을 공부하고 인생을 다시 보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고 변화의 문을 열수 있습니다. 내려놓음이 없으면 다시 찾음도 없습니다.


Q ∥ 고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까닭이 궁금합니다. 자극을 주고 계기가 된 책이나 인물이 특별히 있나요? 왜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는지요?
A 고전에 대한 관심은 오래되었지만, 인생과 사회의 대안적 의미로 인문학과 고전을 확신한 것은 사회에 나와서입니다. 저는 원래 인터넷 검색엔진을 만들던 사람입니다. 검색엔진은 세상의 많은 자료를 모아서 정보로 만드는 도구입니다. 자료가 정보가 되려면 선별과 종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원리는 공학이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자료는 어떻게 정보가 되고, 정보는 어떻게 지식이 되고, 지식은 어떻게 지혜가 되는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문학의 위력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시대마다 늘 그렇듯이 디지털 시대의 해답도 첨단과학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된 고전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의 자유 정신과 검열 논란을 고민한다면 존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가 길을 열어줍니다. 컴퓨터공학, 전자공학, 디자인, 디지털 스토리텔링 등 얼마나 많은 ‘첨단’ 분야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인생에 자극을 준 옛 스승들이 많이 있지만, 지식을 다루는 부분에 국한해서 본다면, 데카르트와 파스칼이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성의 문이 열리는 시대에 함께 살았던 분들로 위대한 수학자이며 철학자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식과 이성을 다루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데카르트가 참된 사유 속에서 어떤 지식에도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면, 파스칼은 이성의 탁월함을 보여주면서도 이성을 뛰어넘는 것들에 대한 경외와 일상의 찬란함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성을 찬양하면서도 이성의 한계 또한 아는 것이, 배움의 하늘을 날기 위해 필요한 두 날개라고 생각합니다.




Q
 
 책을 ‘왜’ 읽느냐보다는 ‘어떻게’ 읽느냐라는 문제를 가지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천년의 독서』에 소개한 ‘인문고전 삼중 독서법’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요? 예를 하나 들어서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우리는 독서를 하면서도 독서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이상하지만 사실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게 정말 무엇일까요? 책을 다 읽었다는 게 정말 무슨 뜻일까요? 책을 읽다가 중단했다면 독서의 종착역까지 얼마나 남았던 것일까요? ‘인문고전 삼중 독서법’의 장점은 무엇보다 단계별 독서입니다. 막연한 동기 부여나 느낌 찾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독서의 종착역이 어떤 상태인지, 거기까지 어떻게 가는지 체계적으로 안내합니다. 서양의 인문학 전통에 따라 문법-논리-수사의 3단계로 길을 인도합니다. 동양의 지혜를 더하여 깊은 숲을 이룹니다. 각 단계를 이정표 삼아 따라가면 내가 어느 지점에 있고 무엇이 남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1단계 문법 독서를 지났다면 책의 구성과 내용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2단계 논리 독서를 지났다면 저자의 속내를 이해하고 주장을 따져보았다는 뜻입니다. 3단계 수사 독서를 지났다면 책을 사색하고 나와 결합시켰다는 뜻입니다. 총 3단계 9장의 과정이 있습니다. 제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옛 스승들이 전해주는 지혜의 길입니다.

또한 각 과정은 그 자체로 앎의 기쁨을 줍니다. 하나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윤동주 평전>(송우혜 지음)을 읽습니다. 삼중 독서법 과정 중 하나인 ‘어휘 색인’에서 용어 하나만 잘 정리해도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윤동주에게 큰 영향을 준 시인 정지용이 있습니다. 정지용의 생애와 시를 분석한 다른 책들이 있지만 그런 책은 일반적인 내용을 알려줄 뿐 정지용과 윤동주의 관계를 깊이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윤동주 평전>을 읽으면서 ‘정지용’이라는 어휘의 사용과 흐름을 잘 연구하면 둘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정지용의 영향으로 윤동주의 시 세계가 달라진 것부터 시작해서 정지용이 윤동주를 세상에 추천해주는 모습까지, 둘의 인생이 교차하며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다시 말해서 정지용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윤동주는 없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Q ∥ 『고전 읽는 가족』에서는 매일 아침 8시 식탁에 모여 가족 공부를 해나가는 풍경이 낯설지만 신선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중고등학교에서 치열하게 공부하는 동안 6년간 100권의 책을 치열하게 읽은 아드님과 따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A 우선 아이들에게 한없이 고맙습니다.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우리 가족이 고전학교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부모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훌륭해서이니 교만하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부족한 부모를 믿고 따라와주고 팀플레이를 해주는 아이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이들은 지금 논문을 쓰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습니다. 로고스 고전학교 기본 과정 6년의 마지막 학기에는 논문을 써야 됩니다. 각자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했기 때문에 재미있게 하고는 있지만, 자료를 뒤적이며 연구를 수행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습니다. 기존 논문들을 출력하고 참고 도서를 한아름 쌓아놓고 지냅니다. 참고로 로고스 고전학교는 6년 기본 과정과 2년 심화 과정이 있습니다. 6년 과정을 마친 후에 각자 선택을 합니다. 더 전문적으로 연구할 사람은 심화 과정을 밟습니다. 아니면 순환되면서 깊어지는 6년 기본 과정에 계속 참여하면서 각자 진로를 선택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또한 독서 공동체 <고전 읽는 가족>에서 청소년 리더로 섬기고 있습니다. 동생들과 함께 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리더 역할을 잘해줘서 모임에 큰 힘이 됩니다. 어떤 진로를 결정하든 공동체에서 배우고 공동체를 섬기는 일이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로나 진학은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재능은 이웃과 서로 도우라고 주어진 것이고, 공부는 이웃을 섬기려고 갈고 닦는 것입니다.



Q
 
∥ 이 책 외에 지금 집필 중이거나 앞으로 더 쓰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살짝 들려주세요.

A 저는 오랫동안 공부와 독서의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왔습니다. 지금 집필하고 있거나 구상하는 내용 중에 그런 게 많습니다. 고전 읽는 일에서도 남이 번역하고 해설해준 데 머무르지 않고 직접 원전을 만나고 즐기는 길에 대해서 쓰고 있습니다. <유클리드 기하학 원론>으로 수학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지혜의 탑을 쌓아가는 것도 있고, <논어>의 원문과 부딪히며 배워가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 외에 영어 공부나 다른 공부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공부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경험과 배움 속에서 여러 이야기들이 꿈틀거립니다. 생각을 잘 정리해서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지난 10여 년간 소소한 것 빼고는 큰 글쓰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고전학교와 IT 일로 바쁜 것도 있었고, 재충전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이제 그간 쌓은 것들을 정리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어떤 분야이든 배우고 경험한 사람에게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라고 배울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물론 지식의 나눔은 그 자체로 큰 기쁨이기도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