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책 밖에서 만난 작가┃<원더풀 라이프>를 우리말로 옮긴 김동광 박사 인터뷰
등록일 :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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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판다의 엄지』 『인간에 대한 오해』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 『원더풀라이프』 등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들을 우리말로 많이 번역해왔습니다. 굴드의 책을 이렇게 오랜 시간 우리말로 옮기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굴드의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나 진화를 대하는 모습이 박사님의 시각과 비슷해서인가요?

A  제가 처음 번역한 굴드의 책은 『판다의 엄지』였습니다. 그 책은 제게 ‘과학에 대해 이런 관점도 가능하구나’라는 깨달음을 주었지요. 생물학자가 아닌 제가 처음 굴드에게 매료되었던 것은 다윈주의나 진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과학 그 자체에 대한 그의 깊이 있는 통찰이었습니다.

가령 이 책에 들어 있는 “필트다운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글에서 굴드는 근본적인 과학적 주제에 접근하는 그의 전형적인 방식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필트다운인 사건은 고생물학 분야에서 자주 나타나는 사기사건으로, 프랑스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을 비롯한 풍부한 고인류 화석을 자랑하는 반면, 인류 화석이 전혀 없던 영국의 필트다운에서 1912년에 인간의 두개골과 유인원의 턱뼈를 조잡하게 조합한 화석이 발견되어 당대를 뒤흔들었던 사건이었지요.

그후 이 사건을 다룬 단행본도 출간되었지만, 흔히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은 ‘누가 범인인가?’에만 집중되었는데 반해서, 굴드가 이 사건을 다시 제기한 이유는 범인 찾기보다 과학이라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사회와 문화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행(實行)이라는 주장을 펴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왜 이처럼 엉성하기 짝이 없는 조작이 영국의 과학자 사회에서 그처럼 열렬히 받아들여졌는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는 이 조작극 밑에 영국에서 프랑스나 중국보다 훨씬 오래된 고인류화석이 발견되기를 바라는 영국인들의 바람이 그대로 투영되어서 조작된 사실을 의심해볼 여유를 갖지 못했고, 일부 과학자들이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어도 무시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 사례가 과학 연구란 오로지 견고한 사실에만 입각하는 활동이라는 통념을 깨뜨리고 과학이 개인적 희망이나 문화적 편견, 영예를 얻으려는 욕구에 의해서도 추진될 수 있으며, 또한 실수나 잘못으로 엉뚱한 경로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지요. 과학사회학자인 제게는 이런 굴드의 태도가 무척 반가웠습니다.

또한 굴드의 삶 자체가 가지는 매력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굴드 자신의 회고로 그는 박사과정 시절부터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적 활동에 참여했고, 이후 과학의 남용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포괄적인 비판을 지속해나갔습니다.

그는 흔히 "민중을 위한 과학"이라고 알려진 SESPA(Scientists and Engineers for Social and Political Action)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 단체에는 급진적인 입장을 가진 많은 과학자들이 참여했지요. 과학이 우생학, 생물학적 결정론, 인종 차별 등에 이용되는 것을 비판하고 쿠바, 남미, 중국 등 당시 막 혁명에 성공했던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새로운 과학’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직접 그 나라들에 가서 활동하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굴드는 이 단체의 연구 그룹인 사회생물학 연구 그룹에서 활동했고, 특히 리처드 르원틴과 함께 같은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을 비판하는 데에도 주력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굴드의 책을 번역했던 이유도 그가 가졌던 이러한 정치적 입장이나 태도에 공명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Q ∥ 이번에 출간하는 『원더풀 라이프』는, 생명과 진화 이야기를 두루두루 들려주는 다른 책들과 달리,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고 알려진 현상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버제스 혈암과 역사의 본질’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둘러싼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지요?

A  굴드는 다작(多作)의 작가이지요. 대부분의 책은 《내추럴 히스토리》라는 저널에 실었던 글들을 추려서 단행본으로 묶어내는 방식인데, 그에 비해 『원더풀 라이프』는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산물인 버제스 혈암 화석의 발견과 해석 과정에만 초점을 맞추어 한 권의 책을 모두 할애했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습니다. 그만큼 굴드가 이 주제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뜻이겠지요.

이 책은 굴드의 전문 분야인 고생물학의 주제를 통해, 우리가 생명의 역사와 진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념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화석을 처음 발견했던 찰스 두리틀 월콧의 전통적인 해석이 이후 해리 휘팅턴과 데릭 브릭스, 그리고 사이먼 콘웨이 모리스의 3인에 의해 다시 해석되는 과정을 상세히 분석하면서 월콧이 가졌던 그 시대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강하고 끈질긴지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화가 단순성에서 복잡성으로, 하등에서 고등으로 일관된 방향성을 띠고 지속적으로 발전했으며, 그 절정이 고도의 지능을 가진 인류의 탄생이었다는 식의 믿음이지요. 굴드는 이것을 생명 다양성이 역(逆)원뿔 형상으로 퍼져나갔다는 도상학(圖像學)적 믿음이라고 지적합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월콧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통념이라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생명 진화의 역사를 ‘진보의 완만하고 누적적인 사다리’로 볼 것이 아니라 캄브리아기에서 나타났듯이 폭발적인 다양성 증가에 뒤이은 격감이라고 보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생명의 역사”를 설명해준다는 굴드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버제스 혈암은 당시 나타났던 해부학적 설계의 90퍼센트 이상이 사라지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은 불과 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Q ∥ 이 책에서 버제스 혈암에 대한 찰스 두리틀 월콧과 그의 후배 과학자들 사이의 해석 차이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서, 생명 진화의 과정에 ‘우연성(contingency)’이 중요한 요소임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자칫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는 이 ‘우연성’이라는 주제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굴드는 어떤 방식을 쓰고 있는지요?

A  굴드는 물리학과 달리 생물학은 ‘역사적 과학’이고, 이러한 과학의 특징은 단 한 차례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설명이나 실험을 통한 과학적 방법이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역사성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우연성(contingency)이지요. 그가 이 책에서 제기하는 “생명 테이프 실험”은 생명의 테이프를 진화 역사의 어떤 시점으로 되감아서 다시 재생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들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묻는 것이지요.

가령 우리는 의식을 가진 인류의 등장이 진화 역사의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굴드는 생명 테이프를 되돌려서 다시 재생했을 때 인류가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인류는 고사하고, 약 6천만 년 전에 일어나서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 충돌이라는 ‘우연한’ 사건이 없었다면, 포유류는 아직도 쥐 정도 크기에 머물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이 많은 생물학자들의 견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버제스 혈암의 화석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명의 역사에 어떤 방향성이나 정해진 목적이 없으며, 지능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할 하등의 필연적 이유도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굴드는 일부 종이 살아남은 이유는 사멸한 종들보다 해부학적으로 뛰어난 설계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행운의 여신의 가호이거나 역사적 우연성이 겹쳐서 나타난 결과일 수 있다는 가정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현생종이 과거에 멸종한 종보다 우월하고 고등하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통념과 충돌하지요.

본문에서 굴드가 예로 들었듯이 100가지 종류에서 10가지가 살아남은 생물들의 수학적 조합은 17조 가지가 넘습니다. 따라서 인류를 포함해서, 지금과 같은 생물들의 조합이 다시 나타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진화가 동전 던지기와 같은 임의성(randomness)의 산물일 뿐 그 속에서 어떤 의미있는 패턴도 찾을 수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우연성과 무작위적인 임의성은 다르지요.

우연성이란 “있음 직한” 여러 가능성들 중에서 어떤 쪽이 실현될지 미리 예측할 수 없고, 오로지 사후적으로만 알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버제스의 다양한 종들 중에서 어느 것이 사멸할지, 의식을 가진 인간이 진화의 마지막 대목에서 등장할지 여부를 미리 예측할 수 없으며, 현생종이 반드시 살아남았어야 할 필연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Q  ‘진화’는 ‘과학’이라는 용어만큼 다양하게 쓰이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제대로 된 뜻을 일반인들이 파악하기 힘들다는 뜻도 되고요. evolution을 영영사전에서는 ‘a process of gradual change that takes place over many generations...’로 풀어가던데, 여기서 진화의 의미는 오직 반드시 더 나은 쪽으로의 변화를 가리키는지요? 진화의 전반적인 의미가 궁금합니다.

A  진화에 방향성이 있는가라는 물음은 오랫동안 많은 논쟁을 불러왔지요. 이 쟁점은 앞에서 다룬 우연성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습니다. 굴드는 역사적 접근을 중시해서 과학적 설명에 우연성이 개입할 여지가 매우 높다는 점을 강조했고, 진화는 당장의 필요에 의해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땜질하기(tinkering)”일 뿐 어떤 목적성이나 방향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굴드가 예로 든 판다의 경우, 여섯 번째 손가락으로 알려진 ‘엄지’는 대나무 잎을 훑어서 먹기 좋도록 손목뼈가 변형되어 발생한 것이지요. 진화에서 중요한 사건들, 즉 눈의 진화, 새의 날개, 의식과 지능의 출현 등도 미리 예정된 것이 아니라 당장의 필요에 부응하는 돌연변이가 선택되는 과정이 겹쳐져서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다윈주의는 기본적으로 진화에 방향성이 없다는 기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회진화론을 주창한 사회개량주의자나 제국주의 침략과 노예제를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은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하는 자의적인 해석을 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진보와 진화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동이 지속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가 진화의 가장 높은 단계라면 현상(現狀)이 자연적이고 가장 바람직한 상태라는 자기 합리화가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현재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인종, 국가, 계급, 젠더가 ‘진화=진보’라는 주장을 선호하며,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계속 재생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굴드는 왜 이 책의 제목을 『원더풀 라이프』로 정했는지 궁금합니다. 생명과 진화의 어떤 부분을 이렇게 부르고자 했는지요?

A  이 책이 처음 번역되었을 때, 출판사에서 제목을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라고 결정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Wonderful Life”인데 그 속에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요. 하지만 굴드 자신이 본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제목은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1946년 영화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과 같습니다. 이 영화에는 평생 남을 도우며 성실하게 살았지만 사업에 실패해 절망에 빠져 자살을 도모하려는 주인공에게 그의 수호찬사가 ‘그가 없는 테이프’를 재생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쩌면 굴드의 유명한 “생명 테이프 실험”도 이 영화에서 착안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결국 수호천사는 주인공의 부재라는, 얼핏 생각하기에, 작은 사건이 일으킨 작은 변화들이 주위 사람들과 그가 살던 마을에 얼마나 큰 부정적인 변화를 낳게 하는지 보여주면서 주인공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지요.

굴드는 그밖에도 우연성이라는 주제를 깊이있게 다른 커트 보니것의 SF소설 <갈라파고스> 등 여러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지요. 이번에 이 책을 새로 번역하면서 궁리출판사 편집진과 상의해서 제목을 원제인 ‘원더풀 라이프’로 바꾸기로 한 것도 굴드가 생각했던 중의적인 의미를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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