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미리 읽는 책 한쪽┃<한국의 르네상스인 석주명> 윤용택 지음
등록일 : 2018-09-20
트위터로 공유하기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미투데이로 공유하기
 
짧지만 영원한 삶 

석주명(石宙明, 1908. 10. 17~1950. 10. 6)은 박사학위를 받은 적이 없다. 그는 정규대학이 아닌 고등농림학교를 나와 중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하지만 그를 아는 누구든 그를 나비박사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삼키던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 초에 평양에서 서당과 신식학교인 보통학교를 마치고, 평양과 개성에서 중등학교를 다녔으며, 군국주의 일본이 한창 동북아를 쥐고 흔들던 시기에 일본에서 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중등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세계적인 나비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말에 경성제국대학 개성 생약연구소에 연구원이 되어 서귀포의 제주도시험장에 파견근무하면서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연구하였다. 그 결과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제주학의 선구자가 되고, 나비박사와 더불어 제주도박사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그는 해방이 되자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우리나라가 당당한 세계시민국가의 일원으로 참여할 것을 염원하며 과학운동, 에스페란토운동, 국학운동을 펼쳤고, 그것들을 위한 대중강연, 대학강의, 언론기고, 국토학술조사 등을 하면서 동분서주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제강점기에 수집하고 연구했던 나비, 에스페란토, 제주도 관련 자료와 성과들을 해방이 되자마자 우리말로 출간할 계획을 세우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하지만 그의 간절한 꿈은 한국전쟁으로 일찍 생을 마감하면서 다 이루지 못하였다.

석주명의 평전을 쓴 이병철은 그를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산을 오른 산악인, 한국 최초로 방언사전을 펴낸 국학자, 국제어인 에스페란토 보급에 힘쓴 세계평화주의자, 나비를 쫓아 한반도 곳곳을 누빈 곤충학자, 우리나라에서 시간을 가장 잘 아껴 쓴 사람 등으로 평하고 있다. 석주명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만돌린과 기타를 잘 쳤고, 제주민요 <오돌똑(오돌또기)>을 최초로 채보하기도 하였다.



그는 나비채집을 위해 우리나라 거의 전 지역을 답사하였고, 75만 마리 나비를 수집하여 20여만 마리 나비를 정밀 관찰하였으며, 나비학과 제주학을 바로 세우기 위해 동서양의 고전과 근대의 논저 1500여 권을 직접 읽었다. 그는 타고난 천재성과 초인적 성실성으로 생전에 이미 전설적 인물이 되었고, 42년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할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그러기에 일제강점기 일본에서는 조선인 중에 마라톤의 손기정과 나비박사 석주명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글을 남겼다. 이 가운데 그 자신이 학술적 업적으로 인정한 논저들을 학문 영역별로 분류해보면, 나비와 관련된 것이 8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것만 봐도 그의 주 전공은 나비임이 확인된다. 하지만 나비를 깊이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의 학문적 관심사는 곤충학, 동물학, 생물학, 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전반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그는 제주도 연구를 하면서 통합학자로 거듭나게 되고, 나비연구를 통해 터득한 관점과 방법론을 제주도 방언연구나 인구조사에 활용함으로써 학문 융복합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석주명은 “학문이 아무리 분리되었다고 하더라도, 한 분야의 권위자는 다른 분야에도 통하는 데가 있다. 내가 전공하는 조선 나비를 예로 들어 나비학의 권위자가 되려면, 직접 관계되는 곤충학에도 통해야 하고, 동물학 전체에도 다소는 통하여야 될 뿐만 아니라, 더 크게 생물학에도 얼마큼은 통하여야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어느 하나를 깊이 알게 되면 그와 관련된 다른 것들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나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자연과학 전반과 인문학까지도 공부했고, 그 덕분에 여러 분야에서 폭넓은 학문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요즘은 학문이 세분되고 전문화 되다보니까 인문학자는 자연과학을 모르고, 자연과학자는 인문학을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그것을 당연시한다. ‘박사(博士)’의 의미는 깊고도 넓게 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오늘날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긴 해도 넓게는 알지 못하는 ‘협사(狹士)’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석주명은 나비연구를 위해 전국을 누비면서 각 지역마다 독특한 방언이나 문화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특정 지역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자연, 인문, 사회 현상 전체를 연구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는 좁게는 나비학자 내지는 곤충학자요, 넓게는 생물학자 내지는 자연과학자이지만,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넘나든 매우 특이한 연구자이다.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나비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문사회분야까지 폭넓게 연구했던 명실상부한 ‘박사’이다.

그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고, 우리 연구자들이 강점을 보일 수 있는 연구방법을 사용하여, 우리나라 생물상이 독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리의 생물학’을 주창하면서 당대의 여러 분야 학자와 국학운동을 펼친 민족주의자이다. 그는 모든 분야의 학문을 잘 하는 팔방미인형 학자이고,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아우르는 깨어 있는 민족주의자이면서 열려 있는 세계시민이었다. 그는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을 넘나드는 폭넓은 학문세계를 구축하였고, 지역주의, 민족주의, 세계주의 어느 하나에 매몰되지 않고 서로를 받아들여 조화를 이뤘다.

오늘날 우리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학문통합과 서로 다른 학문들 사이에 통섭을 강조하면서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석주명 선생에게 배워야 할 점은 인문학과 자연과학, 지역과 세계, 특수와 보편, 전통과 현대를 서로 배척하지 않고 유연하게 넘나들면서 조화시키려 했던 자세이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