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책 밖에서 만난 작가┃소설가이자 번역가 정소연 인터뷰
등록일 : 201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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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소설가로서 번역가로서 강사이자 학생으로서 바쁘게 지내신다고 들었는데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A ∥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문지문화원에서 ‘사회문학으로서의 과학소설 - SF와 마이너리티’라는 강의를 하고 있는데, 이 강좌를 통해 독자분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늘어 무척 즐겁습니다. 과학소설과 마이너리티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책을 읽은 분들의 생각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 자극이 많이 됩니다. 제 책을 읽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글을 내놓을 수 있게 살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하고 있습니다.


Q ∥  이 책의 경우 역자인 정소연 님께서 먼저 출간 제안하셨는데요. 그렇게 적극 추천하신 특별한 계기나 까닭이 있었나요? 그리고 이 책을 처음 어떻게 접하게 된 경로도 궁금합니다.
A ∥ 원래 마이너리티 이슈를 다룬 청소년 소설에 관심이 많아 국내에 소개할 만한 책이 있나 영미권 출판 동향을 확인하는 편입니다. 영미권의 청소년서를 읽다 보면 이 책을 내가 10년 전에 읽었다면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나 자신에 대해, 타인에 대해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특히 마이너리티 이슈에 대해 더 오랫동안 고민해온 사회에서 쓰인 좋은 책을 한국어로 소개해서, 저보다 어린 독자들은 가장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책을 만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 책의 경우, 낭기열라출판사에서 나온 『앰 아이 블루?』라는 단편집을 직접적인 계기로 볼 수 있겠네요. 『앰 아이 블루?』는 성소수자 청소년들에 관한 아주 좋은 단편집인데, 저는 이 책이 나오고 꽤 시간이 지나서야 접했습니다. 그리고 ‘아니, 이렇게 좋은 책을 어째서 미리 발견해서 소개하지 못했을까!’ 하고 반성했습니다. 좋은 자극을 받았다고 할까요. 그래서 그 후 LGBTQ 이슈에 관한 청소년 추천도서목록을 폭넓게 검색해본 다음, 마약 중독이나 원주민 문화 등을 다루는 지나치게 미국적 작품들을 제외하고 번역해서 낼 수 있을 것 같은 책들을 추려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만들었던 목록에 줄리 앤 피터스의 작품으로는 『너는 비밀(Keeping You a Secret)』과 『루나(Luna)』 두 권이 들어 있었는데, 이렇게 읽은 십수 권 중에 『루나』가 가장 인상적이었고, 우리나라에서도 현실감을 가질 만한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추천했습니다. 『너는 비밀』도 언젠가 소개하고 싶은 좋은 책이에요.


Q ∥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마음이 들거나 공감이 갔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덧붙여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이야기해주세요.
A ∥ 가장 마음에 드는 등장인물은 역시 루나입니다. 존경하고 있습니다. 루나가 처음으로 여자 옷을 입고 쇼핑몰에 가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루나는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차 안에서 망설이다가, 인터넷으로 알게 된 트랜스젠더 테리 린이 처음 여자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섰을 때의 경험을 동생 레이건에게 이야기합니다. 레이건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살아남았구나”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이 정말로 인상 깊었습니다. 루나의 고통뿐 아니라, 레이건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여자아이’의 깊이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  성장소설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루나는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줄까요?
A ∥ 좋은 성장소설이 그렇듯이, 『루나』도 성장이 자기를 수용하고 긍정하는 과정임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장이 밖에서 억지로 끌어서 되는 일, 하루아침에 천지개벽하듯 깨닫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다양한 면을 발견하고 이해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잘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이런 점에서, 루나의 성장뿐 아니라 루나와 함께 변화하는 레이건의 성장 또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지요.


Q ∥  루나와 같은 성전환자를 구성원으로 둔 가족이 한국에도 있을 텐데요. 만약 소연 님이 그런 형제가 있거나 그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어떨까요?
A ∥ 제가 부모라면, 우선 아이의 두 눈을 제대로 보고 “나에게 말해도,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옆에 있을게”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저도 청소년기에 절실히 이 말을 듣고 싶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소리내어 말하든 말하지 않든, 네 편에 선 사람이 여기 있다는 마음을 전하고 그 마음을 세상을 향해 내보일 수 있는 가족이고 싶어요.
근본적으로는 더 어린 이들을 지켜주는 것과 지켜보는 것이 어른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자매이거나 부모이기에 앞서서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 누구도 (레이건처럼) 절박한 용기와 괴로운 침묵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군요.


Q ∥  책을 번역하시면서 주변의 활동가들에게 여러 조언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성별정체성에 관한 역어나 관련 용어가 확립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 번역에 어려움도 있었을 듯합니다. 번역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점이나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점이라면?
A ∥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과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의 개념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는데, 성적 지향은 이성애/동성애와 같은 타인을 향한 끌림에 관한 문제인 반면, 성별 정체성은 자기 자신의 성별에 관한 근본적인 인식 내지는 감정으로 두 개념의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이번에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는 표현의 부재에 관한 고민이 많았네요. 예를 들어, 리엄/루나의 경우 남성의 몸을 갖고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여성인 트랜스젠더로 영어로는 ‘MTF(Male to Female)’라고 씁니다. 그렇지만 한국어에는 이와 같은 약어가 없어 뜻대로 풀어서 썼습니다. 또한 성전환자/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과 같은 용어의 사용에 관해 자료에 따라 조금씩 입장이 달라 많이 고민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트랜스젠더와 트랜스섹슈얼이 동의어로 사용되지만, 트랜스섹슈얼을 성전환수술을 하려고 하는/한 트랜스젠더를 의미하는 좁은 개념으로 보기도 합니다. 레이건이 리엄이 ‘성전환자’라고 말하자 더 공식적이라고 느끼는 부분으로 미루어 보건대, 『루나』는 구분을 두고 쓰인 책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어의 ‘성전환자’라는 표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도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루나』 본문에서는 ‘성전환자’라는 표현이 리엄이 아버지에게 마침내 커밍아웃하는 장면에서만 쓰입니다. 여기에서 ‘트랜스섹슈얼’을 쓸 것인가, ‘성전환자’라는 표현을 쓸 것인가도 논의했는데요, 그 극적인 상황과 아버지의 반응, 청소년서에서 ‘트랜스섹슈얼’이라는 표현이 설명 없이 추가로 등장할 때의 혼란 등을 고려해서 ‘성전환자’를 썼답니다. 가장 일반적인 표현은 ‘트랜스젠더’로 정착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활동가분들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반영했지만, 아직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절대 틀리기 싫은 기분으로 푸는 학생이 된 것처럼 답답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활동가분들께는 꽤 폐를 끼쳤는데, 뜻을 갖고 기꺼이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Q ∥  그동안 번역했거나 집필한 작품을 보면 우리 사회의 약자나 소수를 다룬 책들이 다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루나도 그중 하나인 듯하고요. 관련해서 독자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 ‘옮긴이의 글’ 말미에 관련 추천 도서와 영화 등의 목록이 붙어 있습니다.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분들이 청소년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해 쉽게 볼 수 있는 자료들을 추천해주신 것인데, 그중에 『다르게 사는 사람들 -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 이야기』는 제가 넣은 책입니다. 트랜스젠더뿐 아니라 동성애, 장애, 이주민 등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 이슈에 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또한 앞에 언급했던 『앰 아이 블루?』도 추천하고 싶네요.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동성애에 관한 단편소설들이지만, 『루나』를 계기로 청소년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Q ∥  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집필할 때와 번역할 때 느낌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떤지 궁금합니다. 덧붙여 앞으로 어떤 책들을 집필 또는 번역하고 싶으세요?
A ∥ 번역가로서는 (1) 한국에 소개될 필요가 있고 (2) 제가 할 필요가 있는 책을 소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너무 욕심내지 않고, 좋은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소설가로서는, 글쎄요, 사실 제가 번역하는 글이 제가 쓴 글보다 더 나아서…… 그럼에도 굳이 거창하게 말해보자면, 번역이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글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만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도 생각합니다만, 저는 제게 가장 절실했던 나이를 지나서야 『루나』를 읽을 수 있었음에도, 이 책에서 위안을 얻었습니다. 제가 느낀 것과 같은 감정을 만들어내는 글을 직접 쓸 수 있다면 좋겠지요.
당장은 『루나』가 좋은 반응을 얻어서 줄리 앤 피터스의 작품을 한 권 정도 더 소개할 수 있길 은근히 바라고 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다룬 책이 더 소개되어야 한다고도 생각하고, 줄리 앤 피터스의 근작들도 훌륭하거든요.


Q ∥  끝으로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독자들이 있나요? 그리고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 일단은 한국의 트랜스젠더 독자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청소년 독자들은 물론이고, 청소년기에 이와 같은 책이 없어서 읽지 못했던 성인 독자들도 공감하실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넓게는, 원작자가 말한 바와 같이 어떤 담론을 넘어서 사랑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야기이니만큼, 모든 연령대 독자들의 마음에 루나의 빛처럼 스밀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너무 작고 어두워서 보이지조차 않았던 주위의 틈새를 비추는 달빛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바가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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