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미리 읽는 책 한쪽┃<레터스 포 사이언스 걸스> 유윤한 지음
등록일 : 2019-12-18
트위터로 공유하기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미투데이로 공유하기
 





최초의 흑인 여성 우주비행사
메이 제머슨(1956~)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은 자기 자신을 알고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 메이 제머슨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나는 1956년 미국 앨라배마 주 디케이터에서 3남매중 막내로 태어났어. 아버지는 지붕을 전문으로 다루는 목수였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어. 부모님은 자녀 교육에 아주 관심이 많은 분들이었어. 내가 세 살 때 좀더 나은 교육 환경을 찾아 시카고로 이사했고, 나는 이곳에서 자랐어.

유치원 때 선생님은 내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었어. 내가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과학자요.”라고 대답하자, 선생님은 “간호사가 아니고”라고 되물었어. 당시 미국은 흑인과 백인의 평등을 보장하는 민권법이 아직 정해지지 않을 때여서, 대부분 어른들은 흑인 여자아이는 과학자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 교사나 간호사 정도는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 난 선생님의 물음에 다시 또박또박 대답했어. “아니요. 과학자가 될 거예요.”라고. 선생님은 너무 이루기 어려운 꿈을 꾸기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다른 꿈을 찾아보라고 충고해주셨어. 하지만 난 결코 내 생각을 바꾸지 않았어. 다행히도 부모님은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지.

우리 가족은 저녁이면, 식탁에 둘러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특히 시민 인권 운동이 늘 화제였지. 이 운동은 미국 시민이라면 흑인이든 백인이든 누구나 평등하게 권리를 보장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움직임이었어. 이 운동이 활발해질 때에는 내가 사는 시카고에 폭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군대가 파견되기도 했어. 무장한 군인들이 행진하는 것을 보니 두려움이 느껴졌어. 난 두려움에 떠는 자신이 싫었고, 앞으로 다시는 그처럼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결심했어.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이며 두려움을 몰아냈지. “나도 저 군인들과 똑같은 미국의 구성원이야.”

세상엔 두려움에 굴하지 말고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도 그때 느꼈어. 두려움을 이기고 싸운 결과, 결국 1964년에 민권법이 제정되어 흑인도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되었어. 나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내 꿈도 그렇게 지켜가기로 했어. 흑인이니까, 여자니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용기있게 나아가기로 했지.

의학을 공부하면서도 놓지 않은 꿈, 우주비행사
학창시절 나는 어떤 일에나 아주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아이였어. 특히 무용과 학생회 활동을 좋아했고,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좋아했어. 러시아어, 일본어, 스와힐리어를 할 줄 알았지. 학교 도서관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어. 주로 과학, 특히 천문학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었어. 어릴 때부터 난 우주여행에 관심이 많았고, 모건파크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공학 기술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

16살에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해 두 가지 전공을 택했어. 첫째는 화공학이야. 특히 생화학에 관심이 많았지. 생화학은 주로 의학과 관련있는 학문으로, 질병의 치료를 돕는 물질을 만드는 법을 배워. 둘째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역사야. 난 흑인으로서 내 정체성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흑인 학생회 회장을 맡기도 했어. 대학졸업 후 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고, 코넬대학 의대로 진학했어. 대학 시절 난 댄스 동아리 활동도 했는데, 의대에 진학한 뒤에도 댄스 연습만은 멈추지 않았어. 그리고 방학 때는 케냐나 쿠바의 가난한 동네로 의료봉사를 갔지. 나중에 태국의 난민 캠프에도 가서 전쟁 때문에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을 도왔어.

원래 나는 환자를 치료하기보다는 질병을 연구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봉사하는 동안 가난한 환자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래서 1981년에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자, 평화봉사단에 지원했어. 2년 6개월 정도 서아프리카 지역의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에서 평화봉사단 의료 담당관으로 있으면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가르치는 일을 했어.

1985년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우연히 NASA에서 우주비행사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순간 어린 시절에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했던 일이 떠올랐어. 그래서 여기에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원 자격은 대학에서 과학, 수학, 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리더가 될 자질을 갖춘 사람이어야 했어. 나는 마지막 후보 15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되었고, 본격적으로 우주 비행 훈련을 받게 되었어.

훈련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중력 상태에 적응하기야. 우리가우주 공간으로 튀어나가지 않고 지구 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건 지구의 중력 때문이지. 중력은 지구 위의 모든 것을 중심을 향해 끌어당기고 있어. 하지만 우주 공간으로 나가면 이런 힘이 사라지기 때문에 미리 무중력에 적응해두어야 해. 나를 포함한 15명 후보생들은 일부러 중력을 없앤 비행기에 타서 둥둥 떠다니며 훈련을 받았어. 이 훈련을 받으면 모두 멀미를 심하게 했기 때문에, 우리는 중력을 없앤 훈련용 비행기를 ‘멀미 혜성’이라 불렀어. 우주비행선이 지구로 돌아올 때 예상치 못한 장소에 추락할 수도 있어. 밀림이나 사막에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거친 야생에서 생활하는 훈련을 하지. 그리고 대부분 바다로 내려오기 때문에 거센 파도가 치는 곳에서 살아남는 훈련도 해.

1992년 9월 12일, 난 드디어 정식 우주비행사가 되어 엔데버호를 우주 공간으로 날아갔어. 흑인 여성으로선 최초의 우주비행사였어.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미국엔 여성 우주비행사가 없었어. 그래서 TV에서 우주선을 발사했다는 뉴스가 나올 때면, “왜 우주비행사는 전부 남자야”라며 화를 내곤 했지.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이때를 기억하며, “외계인이 우주비행사들을 보고 지구에는 남자들만 사는 줄 알 거예요.”라고 말한 적도 있지.

그런데 1983년 샐리 라이드란 백인 여성이 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가 되었어. 또 샐리 라이드와 같은 우주선을 탄 귀온 블루포드는 최초의 흑인 우주비행사였어. 미국 역사에서 1983년은 여성과 흑인에게 우주비행의 문이 열린 뜻깊은 해였어. 하지만 이때의 여성은 어디까지나 백인 여성을 의미했지.

난 흑인으로서 많은 차별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어딜 가나 백인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맹렬히 노력했어. 하지만 나중에 그런 인종 차별보다 무서운 게 성차별이란 것을 깨달았어. 어린 시절 내가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교사나 간호사가 되라고 했던 선생님들도 결국은 성차별의 편견에 사로잡혔던 거지. 흑인은 백인이 독차지하고 있는 과학자의 세계로 들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한 면도 있었겠지만, 여성이라면 당연히 교사나 간호사처럼 남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다는 편견을 떨치지 못하셨던 거지.

어쨌든 백인 남성의 뒤를 이어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이 나란히 우주비행사가 된 뒤에야 난 최초의 흑인 여성 우주비행사가 되었어. 내가 탄 엔데버 호에는 함께 고도의 훈련을 받은 여섯 명의 다른 우주비행사들도 있었어. 우주에 나가면 고요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외로울 거라고 걱정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 일단 할 일이 너무 많아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지. 여섯 명이 각자 우주선의 수많은 장비를 이용해 자신이 맡은 고유한 임무를 수행해야 해. 나는 주로 과학 실험을 했어. 중력이 없는 공간에서 떠다니는 사람들이 멀미를 하지 않도록 막는 방법을 연구했고, 올챙이가 잘 자라는지도 관찰했어. 올챙이는 우주공간에서도 잘 자랐고, 지구로 돌아온 뒤엔 의젓한 어른 개구리가 되었어.

NASA에서 6년 동안 일한 후, 나는 다른 일을 해보기로 했어. 그 동안 자신이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스타트렉> 미니 시리즈에 배우로도 출연했어.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프로그램의 배우가 된다는 것은 우주비행선에 올라타는 것만큼이나 설레는 일이었어. 유능한 여성들과 다양한 인종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뛰어난 통신 장교이자 유색인종이었던 우후라는 내 우상이었지.

지금은 인류를 100년 안에 다른 태양계로 이주시키기 위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어.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터무니 없이 어려운 일로 보이지만, 인공지능의 발달이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봐. 내 소망이 있다면, 우리가 새롭게 이루어갈 사회에선 피부색 때문에, 혹은 여성이거나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거야.

많은 어려운 일을 해낼 때 내가 항상 명심한 말은 “다른 사람의 좁은 상상력 안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야.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지혜로운 조언에 귀를 기울 필요는 있어. 하지만 항상 나 자신을 위해 세상을 다시 평가할 줄도 알아야 해. 난 어린 시절 간호사나 교사가 되라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기는 했지만, 그런 꿈을 강요하는 세상을 나 자신을 기준으로 다시 평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어. 세상 사람들이 가장 좋다고 하는 것과 나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은 다를 수 있어. 여러분이 자신만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중이라면 이 말을 꼭 기억하길 바랄게.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