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책 밖에서 만난 작가┃<성과지표의 배신>을 쓴 제리 멀러가 독자들에게
등록일 : 20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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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측정’이 아니라 ‘측정 강박’이 문제다


『성과지표의 배신』은 ‘측정지표의 횡포The Tyranny of Metrics’라는 제목의 영문판으로 2018년에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한 독자는 책을 읽고 나서 다음번 표지에 “횡포는 계속된다!”라는 문구를 추가해서 넣으라는 의견을 주었습니다. 농담으로 건넨 한 마디였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그 말이 맞는 듯했습니다. 책이 출간된 후에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의견을 보내왔는데, 하나같이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측정 강박” 현상이 실제로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뿌리 깊을 뿐 아니라 상상하기 힘들 만큼 큰 중압감을 준다는 말이었죠.

이 책은 성과 측정이나 성취에 따른 보상, 투명성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이러한 수단을 목적으로 바꿔놓는 “측정 강박” 현상을 조명하고, 이 현상을 뒷받침하는 믿음이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여도 실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측정지표의 횡포’라는 제목도 성과지표가 본질적으로 나쁘다기보다는 억압의 수단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입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조직 생활에서 겪는 좌절감과 불만을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자신이 몸담은 조직의 근본적인 목표와 목적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도 이 불편한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윗사람들에게 조직 발전의 걸림돌로 찍힐까봐 차마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동료들과 ‘쉬쉬하며’ 얘기하는 것들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측정을 얼마나 잘하는가가 발전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는, 그런 흔한 조직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공공정책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시사”에 가깝고 사회 구조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사회학에, 또 권력과 통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정치학, 인센티브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경제학, 조직 내 동기 부여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조직행동학에 가깝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진짜 지식과 가짜 지식에 대한 믿음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사회과학의 원리와 역사를 인용합니다. 숫자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반면 판단은 못 미더운 것이라는 신념도 그러한 믿음 가운데 하나이죠.

또한 경영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습니다. ‘경영 대상’이 광범위하다는 점에서는 보편적인 관리에 관한 책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다른 경영서와는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직을 혁신할 새로운 기법을 소개하는 유쾌하고 낙관적인 일반 경영서들과 달리, 이 책은 비판적인 어조로 만병통치약식 처방에 대해 경고하고 대신 측정, 책임성, 투명성이라는 이름으로 팔려 나가는 가짜 약을 중화해줄 해독제를 소개합니다.


┃‘측정 강박’은 교육, 의료, 치안, 군대, 비즈니스, 정부 등 여러 조직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교육, 의료, 치안, 군대,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는 측정지표의 올바른 사용과 빈번한 오용 사례들을 탐구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과정과 문제들을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뿐, 반드시 그렇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 책에 제시된 일반적인 양상들을 알고 나면 여러분 스스로 더 많은 사례를 찾아보거나 측정 강박의 폐해가 미치는 또 다른 분야를 조사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몇몇 독자들은 스포츠와 광고 분야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야구선수 스카우터 또는 야구 마니아를 자처하는 독자들은 측정 강박이 군림하면서 메이저리그 야구가 변질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측정지표’를 뜻하는 메트릭스가 스포츠 경영과 코칭에 도입된 것은 오래전 일이지만 최근 들어 그 활용도가 크게 높아졌는데,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2003)에 통계를 이용한 야구 데이터 분석법인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머니볼』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야구팀의 경영진이 측정지표를 이용해 팀의 순위를 끌어올린 실화를 다룬 책입니다. 이때부터 메이저리그에는 안타 몇 번보다 홈런이 점수를 내기에 유리하다는 계량적 분석이 지배했죠. 측정학을 전공한 분석가들에게 코칭을 받은 타자들은 이제 안타가 아닌, 홈런이 잘 나오는 “발사 각도”를 찾아내는 데 골몰했고 삼진 아웃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그 결과, 프로 야구가 측정 분석에 따라 능률화되었고 경기는 더욱더 규칙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안타가 줄어들면서 각 루를 도는 선수들도 줄고 도루도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죠.

정작 관객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각 루를 도는 선수나, 주자가 무사히 본 루에 들어올지 말지 알 수 없을 때의 긴장감 같은 야구의 불규칙성인데 말입니다. 결국 경기가 지루해지면서 관객들의 발길도 뜸해졌습니다. 이 책의 서평을 쓴 앨런 제이콥스Alan Jacobs도 한때는 야구 광팬이었지만, 지금은 환멸을 느끼고 돌아선 사람입니다. 그는 서평에서 메이저리그 야구가 “우리의 논점과 생각과 관심을 측정과 평가의 기법에” 맞추려 하는 측정 강박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지적했습니다.


┃IT, 빅 데이터 시대에 더욱 심화되는 ‘측정 가능성 편향’

오늘날의 광고 트렌드 또한 단순히 측정하기 쉬워서 특정 옵션을 선택하는 “측정 가능성 편향”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이제 기업들은 브랜드 개발을 위해 다양한 매체에 광고를 게재하기보다는 링크 클릭의 형식으로 “직접적인 반응”을 알려주는 매체에만 광고를 내보내려고 합니다. 이런 광고들은 그 효과를 측정할 수 있지만 옥외 광고나 텔레비전 광고, 신문 광고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측정할 수 있는 것에만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논리에 따라, 기업들은 인터넷상에서 광고 트래킹을 제어하는 구글, 페이스북 같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광고비를 이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트렌드는 가짜 웹사이트를 만든 뒤 클릭을 유도해 광고 수익을 내는 수법으로 광고주들의 돈을 뜯어내는 “봇bot” 기반의 대규모 광고 사기로 이어졌습니다.

측정 가능성 편향은 대외원조 분야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는 대외원조 활동이 장기적인 혜택보다 단기적인 결과에 더 집중되도록 합니다. 한때 미국의 개발 원조는 물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돕는 데 집중됐습니다. 그리고 급증한 도시 인구로 물 수요가 늘어난 국가에 지속 가능한 물 공급을 지원하려면 복잡한 활동들이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면 댐과 관개시설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수자원 보호를 장려하고 물 비축과 오염, 물 소비량이 큰 작물의 재배를 억제하는 정책들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측정 가능한 결과를 요구하는 의회의 압박, 그리고 성과에 기반한 예산 편성 때문에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측정 가능한 것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미국 국무부 역시 복잡하고 장기적인 물 관리 사업에 투자하기보다는 계산하기 쉬운 (수도시설과 화장실 같은) 위생 사업에 더 주력합니다.

측정 가능한 결과에 대한 압력이 왜곡을 낳는 현상은 자선 사업 분야에서도 눈에 띕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이 책 13장에서도 짧게 다루지만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많습니다. 오늘날 자선 업계에서는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 같은 대형 재단들의 지배력과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 재단들은 측정된 성과를 법정 화폐처럼 여기는 IT와 금융계 거물들답게 자선 사업에서도 측정 가능한 결과를 강조합니다. 그에 따라 측정하기 어렵거나 장기적으로만 나타나는 효과는 희생되고, 대부분 즉각적으로 측정되는 것들이 목표로 정해집니다. 이러한 풍조는 소규모 자선단체는 물론, 국제개발 부문의 정부기관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죠.


┃숫자, 데이터, 성과지표는 과연 조직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숫자와 표준화된 성과 측정과 빅 데이터는 미래의 대세로 여겨지는 반면, 경험과 재능을 살린 전문가의 판단은 시대착오적인 유물 취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 문화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재능과 경험을 토대로 판단을 내리는 시대는 가고 측정의 시대가 왔습니다. 행동심리학 분야의 학자들은 판단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냅니다. 그에 반해 “명백한” 숫자로 이루어진 “객관적인” 측정지표는 해독제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이 때문에 성과를 측정해 그 결과를 공개하고 그에 따라 보상하는 일은 교육, 의료, 치안, 기타 공공 부문에서 종종 문제를 해결할 묘약으로 여겨집니다.

측정지표 예찬론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경영학계 권위자들은 빅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의 탁월한 효과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이에 질세라 컨설턴트들도 조직의 결함을 수정할 해법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내세웁니다.

여기에 IT 기술의 유혹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데이터 수집 기회는 늘고 그 비용은 줄면서, 데이터가 곧 해답이며 조직들은 이 해답에 맞게 문제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믿음이 퍼져 있습니다. 측정 데이터를 축적해 조직 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 어떤 식으로든 나아지는 점이 있으리라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험과 재능에 따른 판단이 과연 필요할까요?

이 책에서는 ‘그렇다’고 말합니다.



* 이 글은 『성과지표의 배신』(제리 멀러 지음, 김윤경 옮김)에 수록된 저자서문입니다. 책은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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