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책밖에서 만난 작가┃<내가 깨어났을 때>를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 임현정 인터뷰
등록일 :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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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둘리틀 박사의 모험 시리즈 번역 레이스를 마친 후, 이번에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펴내는 에디션F 시리즈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두 시리즈의 느낌이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어떠신지요?
A ∥  독자층과 소설의 성격이 다르니 번역어 역시 많이 달라졌습니다. 둘리틀 박사의 모험 시리즈의 경우 초등학생 독자를 상상하면서 번역했어요. 둘리틀 박사가 낙천적이면서 유머가 넘치는 캐릭터이고 개성 있는 동물들도 많이 등장하다보니 이런 캐릭터에 생동감을 부여할 수 있는 표현을 쓰려고 노력했지요.

반면, 20세기 초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사회개혁가로 활동한 작가 샬럿 퍼킨스 길먼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 중 첫 책인 『내가 깨어났을 때』 안에서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이 상상한 ‘어린 유토피아’를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인물이나 사건 묘사보다는 작가가 창조한 ‘어린 유토피아’에 대해, 그리고 그 세계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에 대한 작가의 말을 독자에게 충실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Q ∥ 이번에 출간한 샬럿 퍼킨스 길먼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 『내가 깨어났을 때』는 국내 초역 작품입니다. 그간 작업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A ∥  책 번역을 시작한 후 처음 만난 소설이기도 하고, 개인 사정이 겹쳐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게다가 개성 있는 인물이 등장하거나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되는 작품이 아니다 보니 번역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빈곤에 허덕이던 1900년대 초 미국이 30년 만에 여성의 각성, 남아와 여아를 차별하지 않는 교육, 가사노동과 육아의 사회화에 따른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통해 풍요로운 사회로 탈바꿈한다는 상상은 흥미 있는 주장이었고 설득력이 있었지요.

이런 작가적 상상력이 길먼의 대표작이자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허랜드』와 어떻게 연결되고, 또 진일보하게 될지 궁금해 하면서 번역했습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유토피아 고전인 웰스의 『혜성의 시대』나 벨러미의 『뒤돌아보며:2000년에 1887년을』과 같은 작품을 알게 되는 배움의 즐거움도 있었네요.


Q ∥ 샬럿 퍼킨스 길먼은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여성이 참정권도 없던 시절을 어떻게 살아갔을지 사실 상상이 잘 안 되는데요, 그의 생애를 좀 들려주신다면요?

A ∥  길먼은 강인한 여성이었습니다. 친부에게 버림받은 후 공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할 만큼 가난했지만 어린 나이에 도서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탐독할 정도로 지적이었고 결혼이 자신의 인생에서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이혼이 아주 드문 시기였음에도 과감하게 이혼을 감행할 만큼 용감했지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기는 미국 내 여성 참정권 운동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시기였는데 길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근본적인 여성 해방을 주장한 페미니스트였습니다. 특히 1898년 출간한 『여성과 경제학』에서 길먼은 여성이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가부장적 사회구조야말로 여성이 억압되고 종속되는 원인으로 진단했으며 가사노동과 육아의 사회화를 통한 여성의 자립과 남성이 독점한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여성의 기여가 늘어날수록 사회가 진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35년 유방암 진단 후 자살하기까지 『내가 깨어났을 때(Moving the Mountain)』, 『허랜드(Herland)』, 『그녀와 함께 내 나라로(가제, With Her in Our Land)』로 구성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과 『가정(The Home)』, 『인간의 노동(Human Work)』 등 다수와 책을 쓰고 자신이 창간한 잡지인 《선구자(The Forerunner)》에 활발히 기고한 길먼은 1900년대 초반 미국 사회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활동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Q  길먼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3부작 중 『내가 깨어났을 때』에 이어 『허랜드』 번역을 마쳤습니다. 두 권 모두 여성들이 주도하는 유토피아를 상상하며 써내려간 작품인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A ∥  가장 큰 차이는 『내가 깨어났을 때』 속 미국이 일부일처제가 유지되는 사회인 반면 『허랜드』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존재할 수 없는 처녀생식에 의해 유지되는 여자들만의 나라라는 점이에요. 길먼이 이런 국가를 상상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허랜드』는 2천 년 동안 여자들의 처녀생식을 통해 유지되는 여자들만의 나라로 구성원들은 가족이나 가문의 성을 따르지 않고 개인의 성품과 역량이 중시되며 공동체 안에서 모두가 모두를 돌보는 평등한 사회입니다. 이러한 나라에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가부장적 태도를 가진 세 남성이 불청객처럼 찾아오지요. 길먼은 이들 입을 통해, 이들과 허랜드 구성원들의 대화를 통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편견과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부계사회 속에서 여성이 겪은 억압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내가 깨어났을 때』가 여성의 각성과 경제적 자립 등을 통해 이룬 ‘어린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소설이라면 『허랜드』는 모성애로 이룬 공동체와 가부장적인 남성들을 대비시킴으로써 당대 부계사회의 폐해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요.


Q ∥ 번역 작업을 할 때 나만의 기준이랄까 원칙이 있는지요? 이 과정 또한 단어 선택의 연속일 것 같습니다.

A ∥  백 퍼센트 지키지는 못하지만 매일 일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어요. 번역은 재능 있는 사람보다는 성실한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번역할 때 한 문장 한 문장이 시의 언어처럼 리드미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리듬감 있는 문장이 잘 읽히니까요. 잘 읽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건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번역가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소리 내어 읽으면서 번역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단어보다는 일상어로 번역하려고 합니다. 복잡하고 난해한 생각이라고 꼭 어려운 말에 담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작가의 의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쉽게 쓰인 문장이 잘 읽히리라 생각합니다.


Q ∥ 번역뿐만 아니라 에세이 집필도 병행하고 있는데요. 주제가 ‘스포츠’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담을 예정인지 들려주신다면요?

A ∥  전 부끄럽지만 좀 게으른 번역가예요. 하지만 부지런한 야구팬입니다. 야구는 40년 된 제 애인이죠. 야구를 보고, 탐구하고 즐깁니다. 저의 하루는 아이들 세 끼 차려주기, 번역하기, 야구보기 이 세 행위가 중심이 됩니다. 야구보기는 경기 중계 뿐 아니라 관련 기사를 읽는 건 물론이고 과거 명경기 영상 복기, 야구 커뮤니티를 훑는 것까지 총망라하죠.

아, 애인이 하나 더 있군요. 테니스. 중계시간대가 완벽히 맞는 오스트레일리아 오픈과 얼추 맞는 유에스 오픈 야간 경기 중 페더러 경기를 십 수 년 간 본방사수 하고 있어요. 페더러가 은퇴하기 전에 페더러 경기 직관하는 게 목표고 그의 원 핸드 백핸드 샷처럼 우아하고 정교한 문장을 쓰는 게 꿈입니다.

책에서는 제가 경기장에서 혹은 TV를 통해 본 스포츠와 몸으로 직접 한 스포츠를 통해 얻은 즐거움과 에너지, 제게 눈물과 감동을 준 선수와 경기들, 제 가슴에 각인된 스포츠 관련 책과 영화, 드라마에 대해 풀어보려고 합니다.


Q ∥ 끝으로 독자들에게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이야기해주세요.

A ∥  『내가 깨어났을 때』는 1911년에 쓰인 작품입니다. 미 대륙으로 향하는 이주민들에 대해 얘기하는 주인공 존과 여동생 넬리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나 인류 진화를 촉진하기 위해 우생학을 도입하는 부분, 인간의 본성은 자연의 본성만큼 선하다는 주장 등 2020년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반면, 길먼이 주장한 가사노동와 육아의 사회화, 남아와 여아의 차별 없는 교육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게 21세기 한국의 현실이지요. 맞벌이를 하더라도 남편은 집안일 하는 아내를 ‘돕는’ 게 현실이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놓고 퇴근이 늦으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은 언제나 ‘엄마’예요.

학교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차별 없는 교육을 받는 듯 보이지만 우리 머릿속의 이상적인 여성은 아름답고 노출 심한 의상을 걸친 아프로디테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접하는 TV, 인터넷 영상 속 광고는 여전히 여성을 상품화하고 있어요. 드라마는 물론이고 뉴스에서도 스포츠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서도 홈쇼핑 채널에서도 젊고 아름다운 여성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이런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지 않으면 차별 없는 교육은 요원할 것입니다.

서문에서 길먼은 “진심으로 깨닫고 힘을 쏟는 방향을 재설정한다면, 30년 후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이 세상 역시 그러하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힘을 쏟아야 할까. 독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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