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일기

책 밖에서 만난 작가 ┃ 번역가 이희재
등록일 : 201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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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기가 뜨겁습니다. 혹자는 국가 간 전쟁을 연상시킨다고 안티월드컵을 지지하기도 하는데요. 월드컵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반목이 꽤나 심한지, 월드컵에 따로따로 출전하더군요. 둘 사이가 그렇게 안 좋은가요?)
월드컵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두 가지 아닐까요. 하나는, 당연한 소리지만 축구를 그만큼 좋아하기 때문이고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또 하나는 어떤 극적 드라마가 펼쳐지기를 기대하는 심리가 있다고 봐요. 현실에서는 소국은 군사력에서든 경제력에서든 대국을 이길 수가 없죠. 그렇지만 스포츠에서는 그게 가능합니다. 축구는 개인 종목이 아니고 단체 경기고 또 월드컵에서는 나라를 대표해서 뛰는 거니까요. 특히 한국처럼 힘겨운 역사를 헤쳐나온 나라의 국민이 월드컵에서 자기 나라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역사에서 한국은 호전적인 나라가 아니라 호전적인 나라들한테 주로 당한 나라에 들어가죠. 호전적이지 않은 나라의 애국심이 나쁘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주로 호전적인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이 많죠. 그런데 그 호전적인 나라들이 본질적으로 달라졌을까요? 제국주의의 업보로 말미암아 이제는 민족주의를 부르짖을 수가 없으니까 민족주의 전체를 도매급으로 비판하는 거죠. 반민족주의가 무조건 선진국인 것처럼요. 해외 여행 많이 하고 해외 유학 많이 간다고 해서 우물 안 개구리에서 꼭 벗어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건지도 모르죠.
나라를 합친 역사가 워낙 오래 되어서 이제는 지지고 볶으면서도 그런 대로 지내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사이가 좋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스코틀랜드인은 잉글랜드와 독일이 월드컵에서 붙으면 아마 독일을 응원할 걸요. 이번 영국 총선에서 승리한 보수당이 유독 스코틀랜드에서는 맥을 못 추었죠. 보수당은 잉글랜드를 대변한다고 스코틀랜드인은 보기 때문입니다. 영국 경제가 어려워지면 잉글랜드 유권자는 인구가 적은 스코틀랜드가 중앙 정부로부터 상대적으로 누리는 혜택을 불만스러워할 것이고 스코틀랜드 유권자는 북해 유전에서 버는 돈이 더 많이 스코틀랜드에서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도 영국은 역사가 오래고 상징적일지언정 왕이 구심점 노릇을 하니까 위기 상황에서는 결속력이 있죠. 다민족국가의 단점은 나라가 힘들어지면 분열하기 쉽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이 좋은 예지만 자꾸 적을 만들어내죠. 남을 공격하면서 자기 결속력을 유지하죠. 질이 안 좋은 민주주의죠. 너무 답변이 무거웠나요.


거리를 두고 보면 더 잘 보인다고들 합니다. 지금 영국에 계신데, 한국 밖에서 바라본 한국은 어떤 모습인가요? 영국과 비교해서 이야기해주셔도 좋습니다.
한국은 극단의 나라인 거 같아요. 촛불을 들고 길바닥에 붙은 촛농 하나까지 다 떼내는 촛불 소녀와 공권력의 비호를 받으면서 군복 입고 시민 단체를 협박하는 가스통 노인이 공존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선한 일을 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선한 일을 하는 데 희생과 에너지가 필요하죠. 그런데도 자기 공동체를 더 낫게 만들어야겠다는 선한 의지를 버리지 않는 시민들이 더 존경스러운 이유죠.
영국과 한국을 비교하면 한마디로 영국은 비약이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어요.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유도 아니고 개인주의도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투표입니다. 통치자 밑에서 종노릇이나 하던 백성이 지도자를 심판하는 유권자로 일어선 역사가 민주주의 역사입니다.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자극받아 영국 국민이 투표권을 요구한 뒤로 1928년 모든 영국 성인 남녀에게 재산과는 무관하게 동등한 투표권이 주어지기까지 무려 150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투표권을 쟁취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영국인이 피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한국인에게는 1945년 해방되자마자 투표권이 공짜로 주어졌죠. 민주주의의 보루는 국민의 각성이고 그 각성의 핵심은 투표의 소중함을 깨닫는 겁니다. 그런 깨달음 없는 민주주의는 사상누각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다섯 권을 드디어 완역하셨습니다. 긴 마라톤을 완주한 느낌일 것 같은데요, 소감을 짧게 들려주세요.
마라톤이라고 하면 완주를 한 데서 오는 뿌듯함이라고 할까 성취감이 있어야 할 텐데 아쉬움만 듭니다. 더 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거든요. 만약 이것이 마라톤이라면 42.195km가 아니라 421.95km이었으면 얼마나 좋겠다는 말하면 래리 고닉의 세계사 번역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번역자의 아쉬움이 충분히 전달될까요.


만화 번역은 어떤 작업이었나요? 만화 번역이 갖는 매력이나 어려웠던 점을 들려주세요.
제일 어려운 번역은 코미디 번역과 시 번역이 아닐까요. 코미디는 어떤 사실을 사람들이 안다는 전제 아래 그런 사실을 꼬집고 비틀어서 웃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웃기지 않은 거죠. 영국은 코미디 프로가 많습니다. 저는 처음에 와서 코미디언이 누구 흉내를 내는데 왜 사람들이 배꼽을 잡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코미디언이 정치인의 목소리나 표정을 흉내내면 누구를 흉내내는 건지 조금 알겠으니까 웃는 거죠. 수준 높은 코미디일수록 그 문화를 속속들이 알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실을 공유하지 못하니까 번역은 불가능하고 번안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죠. 그리고 시 번역이 어려운 건 표현이 압축적이고 함축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화 지문과 대사도 최대한 간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만큼은 아니더라도 압축성과 함축성이 중요합니다. 코미디 번역의 어려움과 시 번역의 어려움이 겹치니까 만화 번역은 쉽지 없겠죠. 그래도 세계사는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중심에 오고 그런 사건은 만인이 공유할 수 있는 사실을 그리는 논픽션이니까, 코미디나 시 같은 픽션보다는 저 개인적으로는 번역하기가 쉬웠습니다. 픽션은 사적 논리라 사실 관계 확인이 어렵지만 논픽션은 공적 논리라 사실 관계의 확인이 시간과 노력만 들이면 가능하거든요.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을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세계사>라고 평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공정한’ 역사 보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지금은 사이가 괜찮지만 50년대에 미국은 인도를 굉장히 껄끄럽게 여겼습니다. 인도는 미국처럼 세속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였는데도 말이죠. 반면에 이슬람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어서 세속 민주주의 국가라고 보기는 어려웠던 파키스탄 같은 나라하고 잘 지냈죠. 왜 그랬을까요? 인도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이었죠. 아니, 유권자인 자국민을 떠받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죠. 유권자의 뜻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것이 민주주의니까요. 미국도 그렇게 합니다. 영국도 그렇게 합니다. 자기 나라 안에서는요. 하지만 국경을 넘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자국민을 우롱하고 유린하는 독재자도 미국의 이익을 보장해주면 미국에게 사랑받습니다. 아무리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도 미국의 마음에 안 들면 부정 선거로 몰아가서 무너뜨리곤 합니다. 민주주의를 믿고 투표로 정부를 선택한 그 나라 국민을 짓밟는 거죠. 민주주의를 짓밟는 거죠. 아직도 국제 관계에서는 말이 아니라 주먹이 통하는 거 같아요.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금이 유불리가 아니라 늘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국사를 논합니다. 국제 관계에서조차도요.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결과를 흔쾌히 수용하는 정신, 이것이 민주주의의 생명인데, 그런 면에서는 체면을 따지고 명분을 중시하다가 망했다는 비아냥을 듣는 조선의 임금이야말로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장 많이 가졌지 않았나 싶습니다.


래리 고닉 책을 여섯 권이나 작업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지구환경까지!) 페이지로 총 1488장입니다. 이 정도면, 래리 고닉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한국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요. 래리 고닉은 어떤 분 같나요?
래리 고닉은 아주 똑똑하고 해학이 넘치면서도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복잡한 현상을 꿰뚫어 간결명료하게 정리하는 분석력과 종합력에서도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작가겠구요. 제게 고닉은 단순히 만화가가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높은 역사의 조망점에서 본 값진 통찰을 안겨주는 역사가입니다.


독서 취향이 궁금합니다. 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좋아하는 작가를 꼽는다면?
끝까지 생각하는 작가가 좋습니다. 한국 작가로서는 주옥 같은 희곡 작품을 쓴 최인훈을 좋아합니다. 산문은 더 좋지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작가죠. 한국의 한을 노래하고 민중을 노래한다고 해서 가장 한국적인 작가가 아닙니다. 세계를 정확히 아는 작가만이 가장 한국적인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건 결국 지성의 힘이죠. 그런데 보통은 지성이 부족한 작가가 가장 한국적인 작가인 것처럼 칭송받죠.
외국 작가는 베케트, 무질, 바흐만, 시몬 베이유, 보르헤스를 좋아합니다. 성향은 다 다르지만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력으로 끝까지 생각해서 남들은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인간 현실을 통찰했다는 공통점이 있죠. 발견은 자연과학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문학도 문학도 결국은 발견입니다. 인간 정신의 새로운 회로를 뚫고 여는 겁니다. 번역은 그런 회로를 자국어에서 열어가는 작업이구요. 그래서 일국어의 회로를 인류의 회로로 보편화시키는 거구요. 좀 거창한가요.
요즘은 픽션은 머리에 잘 안 들어오더라구요.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일이 논픽션의 세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니까요. 역사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번역'에 관한 책을 '집필'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번역’과 ‘집필’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그리고 번역작업과 함께 집필도 계속 하실 생각이시지요?
번역을 본격적으로 업으로 삼았을 무렵 철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쉬운 번역거리와 어려운 번역거리가 있을 경우 고료는 똑같아도 어려운 쪽을 하고 싶더라구요. 남이 잘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인정받고 싶다? 글쎄요, 물론 사람이니까 그런 욕심도 당연히 있겠죠. 그런데 저는 늘 불안했던 거 같아요. 내가 대체가능한 존재라는 사실이요. 그래서 받는 돈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을 들이면서 상투적이지 않은 번역을 하려고 했습니다. 쉬운 번역만 하다가, 누구나 할 수 있는 번역만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젊은 사람과 경쟁을 해야 하는 비참한 처지로 내몰릴까봐 두려웠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전문직이 아니라 나이를 먹을수록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작업의 질이 올라가는 직업이 전문직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번역가는 그래서 전문직이죠.
번역을 하면서 애써 좋은 표현을 떠올렸는데 그걸 적어두지 않으니까 나중에 생각이 안 날 때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따로 적어두자. 이렇게 생각하고 번역이라는 제 나름의 전문직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써두었던 메모가 『번역의 탄생』을 탄생시켰습니다. 또 제가 그래도 세월을 들여서 나름대로 깨우친 사실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도 컸습니다. 옛날에 직장에 다닐 때 별로 어렵고 복잡하지도 않은 일인데 대단한 일인 양 잘 안 가르쳐주면서 직접 부딪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 깨닫게 될 거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상사가 저는 싫었습니다. 하루 이틀 붙잡고 앉아서 가르쳐주면 될 일을 틀어쥐고서는 안 가르쳐주더란 말이죠. 잘 하고는 싶은데 정말 몰라서 잘 못 하는 일이 이 세상에는 참 많잖아요.
번역은 죽을 때까지 해야죠. 번역은 며칠만 일을 안 해도 머리에 녹이 습니다. 어렵게 뚫렸던 회로가 막힙니다. 다시 뚫으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집필도 해야 할 거 같아요. 조금 더 젊었을 때 이런 집필을 시작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요즘 드는 건 사실입니다. 나이는 못 속이겠더라구요. 조금 무리를 하면 눈이 부담스러워하더라구요. 그렇지만 제가 나름대로 뚫은 제 안의 정신 회로를 더 넓게 공유하자면 결국 책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번역의 탄생』을 내고 절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기다려온) 독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래리 고닉의 책을 누구보다도 아끼는 독자 여러분께는 이 책의 발간이 낭보겠지만, 더 이상 래리 고닉의 새로운 세계사 만화를 접할 수 없게 되니 저 같은 번역가에게는 흉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독자 여러분도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저처럼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에 젖으시겠죠. 그렇지만 래리 고닉이 못 다 쓴 세계사 이야기, 래리 고닉이 미처 몰랐던 세계사 이야기를, 래리 고닉보다 더 똑똑하고 더 유머러스하고 더 정의롭게 들려줄 수 있는 미지의 작가가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 중에서 반드시 나타나리라 믿습니다.






이희재 ㅣ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독문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국 SOAS(아시아프리카대학) 방문학자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 『번역의 탄생』이 있고, 옮긴 책으로 『소유의 종말』, 『문명의 충돌』, 『새벽에서 황혼까지』, 『마음의 진보』, 『마음의 진화』, 『번역사 오디세이』, 『몰입의 즐거움』, 『리오리엔트』, 『히틀러』, 『예고된 붕괴』 등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 시리즈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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