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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홍과 벌
등록일:2017-05-22, 조회수:113
이굴기의 1분 영상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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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롯데아울렛 버스정거장. 서울에 볼일 보러 나가는 길이다. 드문드문 오는 버스 시간에 맞추어 정거장으로 간다. 여기는 파주 벌판에 세운 인공의 도시. 그 옛날 시골에서 거창읍으로 가는 2시간 간격으로 댕기는 시외버스를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던 기분이 살짝 들기도 한다.

겨울 끝에 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꽃이 활짝 피었다. 문명의 총아처럼 각종 명품으로 가득한 롯데 아울렛. 조금이라도 좋은 물건을 구입하러 오겠다는 손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외관의 치장도 대단하다. 예전에는 중국 관광객들이 휩쓸고 다니더니 요즘은 모든 가게들이 그저 파리만 날리는 중.

광고판을 보니 서울행 좌석버스는 전전 정류장을 통과하는 중이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서 빈 좌석도 많이 남았다고 알려준다. 꽃샘추위도 지났는데 바람이 몹시 불었다. 한결 여유를 부리며 바람의 한 결을 따라 화단에 모처럼 신경이 갔다. 영산홍이다.

진달래과의 대표적인 식물은 진달래와 철쭉이다. 이른 봄, 산에 가서 가장 흔히 만나는 게 진달래와 철쭉이라면 관상용으로 개발된 화훼식물이 바로 이 영산홍이다. 같은 철쭉과이고 꽃 모양도 비슷하다. 산에서 만나는 꽃만큼 기품을 기대할 순 없지만 풍성하고 흐드러지게 피었다.



이 꽃 이름을 들은 지가 처음 언제였을까. 꽃에 관심을 두지 않았더라도 그건 아주 오래 전의 일임에 틀림없다. 예식장을 가거나 병원을 가거나. 사는 동안이라면 하여간 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큰 건물이면 으레 화단에 영산홍은 피었고, 담배를 물었다가 그 꽃의 이름을 주고받았겠지. 대화 중에도 꽃이름을 한번이라도 들먹이면 딱딱한 화제에 물기가 흐르기 마련이다. 그러고 꽁초를 쓰레기통에 비비면서 영산홍의 화사한 얼굴을 가까이에서 마주보았겠지.

영산홍 혹은 연산홍이라고도 하는 꽃.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왜철쭉이라고도 한다. 버스를 기다리며 꽃을 보다가, 꽃을 탐하는 벌 한 마리를 발견했다. 흐드러진 영산홍 꽃밭을 독점으로 사용하는 벌 한 마리가 이꽃저꽃을 누리고 누빈다. 박종화의 소설, 금삼의 피를 떠올리며 궁중의 여인들에 파묻힌 임금을 떠올리며, 연산홍이란 이름에서 연산군과 간신 임사홍을 찾아내는 건 조금 과한 상상일까.

꽃에 파묻혀 파르르 떠는 벌의 꽁무니를 좇다가 꽃밭 건너 웅장한 건물 안의 여성의류 광고판을 보게 되었다. 역시나 좋은 목에는 광고가 자리잡는다. SJSJ 상표의 세련된 여성이다. 싸늘한 유리창 너머의 늘씬한 어느 유명 모델이다. 걸치고 있는 옷은 모두 이른바 명품인가.



햇빛이 차별 없이 내려쬐는 꽃밭. 모든 것을 동렬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다소의 억지를 부려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유리창에 막혀 물끄러미 바라보아야만 하는 모델을 두고 나는 약속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좌석버스를 탔다. 아무것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벌은 왕성하게 왕처럼 꽃밭을 누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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