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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풍경 2
등록일:2018-08-10, 조회수:128
이굴기의 1분 영상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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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에 가면 좋은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 얼굴을 정면으로 내세운다.

천지 일출을 처음 보는 내가
천지 일출을 본다면 감탄할 여러 사람들을 업고 올라
천지 앞에서 대기하는 동안.

5년 전 꽃에 입문하고 백두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땐 그래도 순진했었다.

백두산을 오르는데 그냥 오를 수 있겠냐며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라도 읽자고 했다.

북파로 올랐는데 비, 우박, 벼락이 때려 혼이 나갈 정도였다.
바람에 몸의 절반이 꺽이는 혹독한 경험.

문득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백두산근참기>의 한 구절을 읊는다.


캄캄한 속에서 빛이 나온다.

닫혀진 것이기에 열릴 것이다.

명랑(明朗)한 것이면 회색(晦塞)할 것이 염려되지만 꼭 막힌 바에는 남은 일은 열림이 있을 뿐이니, 이제는 하나님도 아주 잠가 두시려는 것이 도리어 난사(難事)일 것을 생각하면 나의 할 도리는 언제까지나 터질 때까지 지키고 서서 움직이지 않을 뿐임을 결단하였다.

가장 싹싹한 맛은 딱딱한 사람에게 있는 것처럼 영원한 흑막(黑幕)인 듯한 저 운무(雲霧)의 바다가 벗어지려 함에 박사(薄紗) 한 조각이 날려가듯 함이 그래 신통하지 아니하랴.(..........)



멀리 북한쪽의 장군봉에서 서서히 번져나오는 빛.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이육사, 광야)라고도 했지만
실은 백두산는 지금 이 자리에 예로부터 있었다.

그냥 제자리에서 서서
저기 멀리 한라는 한라산에, 지리는 지리산에, 설악은 강원도 설악산에,
인왕은 서울 인왕산에, 그리고 묘향은 묘향산에 우뚝 스스로 서게 하였다.

산이 바다로 간 건 아니었고,
꽃은 바다로 갔다.

추운 날씨에 적응한 북방계 식물들은 빙하기 때 남쪽까지 진출했다.
온난화가 진행되자 미처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지리산, 한라산, 설악산 꼭대기로 피신한 것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 그 꽃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안개보다 조금 진한 상태를 는개라고 하는 것처럼
차츰차츰 묽어지는 이 어스름을 뭐라고 할까.
몇 꺼풀 벗겨진 어둠을 지칭하는 단어가 없을까.
아무리 머릿속 사전을 뒤적여도 맞춤한 그 말은 찾을 수가 없었다.

빛이 없다면 모두들 한 덩어리로 살 수도 있겠지만
빛이 사이를 벌려놓아 각자 살아가도록 한다.
더구나 지금은 여름이고 보통 기온이 아니다.
햇빛이 제 마음껏 깜냥을 부리고 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더울려나.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바람이 불었다.
세상은 뜯기 전의 봉투처럼 고요하다.

문득 시선을 하늘로 돌리면
그 봉투 한켠에 우표처럼 떠 있는 새벽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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