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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난초
등록일:2016-07-27, 조회수:380
궁리의 꽃밭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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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애꿎은 돼지가 등장하는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교육부의 어느 고위공무원이 민중을 개돼지로 여겨야 한다는 굳건한 소신을 영화 대사를 콕 집어 인용하여 내뱉었다. 미국에서 날아든 돼지 뉴스는 차라리 나았다. 공화당 대선주자인 트럼프의 첫 번째 회고록을 저술한 저자가 자신의 책에 대해 “나는 돼지에게 립스틱을 발랐다”고 쓰라린 후회를 밝힌 것이다. 잊을 만 했는데 북한산에서 멧돼지가 출현한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사람은 도시에, 짐승은 산에 산다지만 하루에 한 번 꼴로 시내에 출몰하는 바람에 ‘멧돼지는 산으로’를 외쳤던 서울시가 멧돼지와의 전쟁에서 완패했다는 전언이었다.

요즘의 신문을 보면 분탕질을 하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 자들이 힘 있는 곳에 우글거리는 형국이다. 이런 판이라면 우리 사는 세상이 돼지우리와 별반 뭐 그리 다를까. 이런저런 씁쓸한 심사를 짊어지고 횡성군 청일면으로 갔다. 난다긴다하는 곳의 지저분한 소식에서 한 발짝 비켜난 한갓진 동네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이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쪼그만 개와 날씬한 노루가 골목길을 산책하고 있지 않은가. 장뇌삼을 캐러 개(똘이)와 함께 간 주민이 어미를 잃은 채 아사 직전에 놓인 노루(산돌이)를 데리고 와서 우유로 기르는 중이라 했다. 똘이는 제가 처음 발견했다고 산돌이에 대한 정이 각별했다. 상당한 미모의 산돌이에게 이방인이 손이라도 대면 요란하게 짖어댔다.

참 오리무중의 세상이다. 무엇이 이곳에 살고 누가 저곳에 있는가. 말을 못하지만 거짓말도 안하는 똘이와 산돌이가 아침 먹으러 2층 계단으로 가는 것으로 보고 우리도 근처 운무산으로 떠났다. 항상 구름과 안개에 휩싸여 있는 것 같다고 그 이름을 얻은 산이다. 이름이 제공하는 습기의 덕을 보았나. 운무산에는 귀한 꽃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오늘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바위틈에 자라는 병아리난초였다. 바닥에 납작 붙은 넓적한 잎을 딛고 가느다란 줄기가 뻗어올랐다.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병아리떼처럼 분홍색 꽃들이 횡으로 총총하다. 저 멀리 첩첩산중을 굽어보며 꿈꾸듯 서 있는 운무산의 병아리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경향신문 2016. 7. 26일자.






후기

아주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 때 노루를 본 적이 있다. 먹이를 구하러 마을로 내려왔다가 주민에 들켜 논으로 달아났다. 논에는 벼가 자라고 있었다. 놀란 노루는 이리저리 벼를 자빠뜨리며 마구잡이로 달아났다. 마을사람들이 잡아보려고 합심해 보지만 궁지에 몰린 노루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산으로 사라진 노루.

횡성의 운무산에 가기 위해 찾아든 청일면. 가을이면 장뇌삼 축제가 벌어지는 곳으로 살림살이가 톡톡해 보이는 동네였다. 흑돼지 고기를 안주 삼아 소주를 먹고 일박한 뒤 아침식당으로 가는 길에 산돌이와 똘이를 만났다. 산돌이는 한눈에도 기품이 있어 보였다. 모가지가 길어서 사슴이라면 다리가 길어서 노루인가 할 정도로 길쭉한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옆에 있는 똘이가 초라하게 보였다.

주인에 따르면 장뇌삼 돌보러 산에 갔다가 똘이가 하도 짖길래 가서 보니 어미를 잃고 굶주림에 지쳐 손바닥만 하게 쪼그라든 노루를 발견했다고 했다. 집에 데리고 와서 우유를 먹이는데 하루 우윳값만 6-7천원 든다고 했다. 발톱에는 매니큐어를 칠하고, 방울목걸이를 했기에 야생성을 걱정했더니 주인아저씨 왈. 그래서 목에 줄은 묶지 않습니더.

산돌이라고 이름을 얻은 노루는 청일면의 명물이 되고 있었다. 인간사회로 편입되어 몸을 추스른 지 어느 새 3개월, 이제 곧 머리에서는 뿔도 난다고 한다. 산돌이가 기거하는 곳은 2층이었다. 계단 옆에 ‘청일면장뇌삼족구협회’라는 나무팻말이 붙어 있었다. 참 기이하고 희한한 문명을 경험하는 산돌이. 나중 어느 날, 이런 특별한 경험을 가지고 산돌이는 산중으로 귀순하겠지. 그날은 누구보다도 똘이가 막무가내로 울부짖을 것 같았다.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똘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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