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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풀
등록일:2016-08-12, 조회수:276
궁리의 꽃밭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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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응시명월 기생수도매화(前生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십수 년 전 <중앙일보>에 게재된 한 칼럼에서 저 12글자를 만났을 때 한 마디로 뻑, 갔다. 틈나는 대로 중얼거리며 필사하였다. 나의 전생은 분명 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을 닦아야 매화가 될꼬. 달-시인-매화로 연결되는 숙연(宿緣)의 한 고리에 나도 끼어들고 싶었다.

그런 사무친 생각의 원력이라도 작용한 것이었을까. 땡볕 속의 인왕산을 한창 오르내릴 때 이런 궁리가 문득 찾아들었다. 여름이 지배하는 계절에 매미소리는 인왕산을 도배하고 있는 중. 우렁찬 울음이 인왕산을 뒤덮고 있다. 매미는 땅에서 오지만 매미소리는 땅으로 떨어진다. 자욱한 녹음 사이로 쏟아지는 소리에 귀가 먹먹한 가운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혹 매미의 전생(前生)은 눈이 아니었을까. 시방 우는 매미가 환생해서 다시 눈사람으로 태어나는 건 아닐까. 펄펄펄 내리는 겨울의 눈과 맴맴맴 우는 여름의 매미 소리는 그런 인연의 관계가 아닐까. 너무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마음의 온도가 급격히 낮아졌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사시(四時)는 명확한 법칙 속에 움직이는 바 어김없이 지금은 또 올해의 여름 땡볕이다. 최근 마음속에 짚이는 데가 있어 새삼 하늘을 발견하고 그곳을 가까이 해야겠다는 감정이 일어났다. 근래 들어 산으로 가는 발걸음을 부쩍 늘린 건 현재로서는 직접 바로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다. 그나마 우회로라도 되는 한 방편이 될까 싶어 산길을 찾는 것.

오늘은 사무실 가까이 심학산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식당을 지나면 배밭이 있다. 이화(梨花) 진 자리마다 배가 몽글몽글 올라오고 그 아래로 발목이 빠질 만큼 수북한 풀들 사이에 눈에 띄는 꽃 하나. 종재기처럼 작은 꽃 안에 매미소리가 수북하게 담겨 더욱 노랗게 보이는 꽃, 좁쌀풀이다. 지난주 태백의 만항재에서도 보았던 꽃이라 더욱 반갑다. 좁쌀풀도 그저 그냥 아무 궁리 없이 서 있지는 않겠지. 쏟아지는 매미소리를 폭설 오는 광경으로 치환해서 전해주면 저도 알아듣겠다는 듯 반짝 호응해주는 좁쌀풀.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경향신문 2016. 8. 9일자.






후기.

빛은 물리학의 기본 재료이다. 천지간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일으켜 세운 뒤 사라지는 이 빛들을 물리학자들은 얼마만큼 아까워할까. 상계동에서 솥단지 걸고 서툰 신혼살림을 차렸던 시절. 햇빛이 아주 푸짐하게 내리는 날이면 아내는 그 눈부신 햇살을 굉장히 아까워했다. 빨래라도 말려야지 않겠느냐며 발을 동동 굴리기까지 했었다. 아내가 일견 그런 기특한 생각으로 자신의 서툰 살림솜씨를 가리려 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한다면 너무 야박한 평가일까. 어쨌든 햇빛은 우리가 짐짓 낭비하는 사이 녹색식물들과 결합하여 세상의 식량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몽매한 우리 부부만 그때 그것을 몰랐을 뿐이었다. 여름이 되면 더욱 기늘어진 햇빛 사이로 매미소리가 아주 흔쾌하게 활개치고 내린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그 소리를 공감각적으로 표현한다면 한겨울의 눈발이 퍼붓듯 쏟아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폭염의 계절이고 보니 폭설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매미와 눈(雪)이 서로 이 세상에서 서로 볼 기회가 없다는 건 자명한 일이다. 인공의 얼음이야 사방에 무수하지만 하늘에서 땡볕에 눈이 오는 일은 없다. 한 겨울에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있어도 매미 울음은 들리지 않는 법이다. 인왕산을 드나들며 매미와 모종의 인연을 쌓으면서 여름을 달구는 매미소리가 마냥 도심으로 버려지는 게 아깝다고 여기면서 저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주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다. 인간은 실현할 수 없는 건 상상하지도 않는다고 했지 않은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는 날, 매미와 눈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확인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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