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송장풀
등록일:2016-08-16, 조회수:363
궁리의 꽃밭 - 이굴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미투데이로 공유하기
 


헥헥헥 거리며 심학산 정상에 다다랐을 무렵 파드득 하는 기척이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말벌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매미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이종(異種) 간의 결합이니 짝짓기는 분명 아니었다. 아이쿠, 말라비틀어진 낙엽 사이에서 생사(生死)를 걸고 벌어지는 난투극이 아닌가. 벌이 침이라도 놓았는지 싸움은 싱겁게 끝이 났다. 뻣뻣해진 사체를 두 토막으로 나누어 챙긴 말벌이 저의 소굴로 휙, 날아가는 보고 나도 자리를 떴다.

며칠 전에는 미국 뉴욕의 보태니컬 가든에 시체꽃이 80년 만에 피었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 꽃에서 고기 썩는 냄새가 나서 저런 고약한 이름으로 불리는 시체꽃. 언젠가 죽는다는 운명을 알아차리고 미리 예방주사라도 맞는 기분이었을까. 그 거대한 꽃을 보려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룬다고 하는 뉴스를 보자니 시체꽃에 필적하는 우리나라의 꽃 하나가 떠올랐다.





‘메밀꽃 필 무렵’은 지금 읽어도 자연의 향기가 듬뿍 담긴 현대적인 소설이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넘긴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라고 할 때의 대화. 강원도 평창의 그 대화 근처에 있는 대원사 계곡을 훑을 때의 일이다. 아득한 저 위쪽에서 복사꽃잎이라도 하나 떠내려 올 것만 같은 청량한 개울의 가장자리마다 물소리에 홀린 귀한 야생화가 드문드문 살고 있었다. 한참을 올랐나. 개울은 어디론가 문득 숨고 암자 옆으로 가파른 고개가 나타났다. 사람의 자취에 닳고 닳은 등산로를 살짝 벗어난 곳에서 그 이름을 좀체 잊을 수 없는 꽃을 만났으니 송장풀이었다.

질컥한 이름을 비해 아름답기 그지없는 야생화다. 줄기 상부의 잎겨드랑이에 층층이 연분홍의 꽃이 피어난다. 한여름 땡볕에 꽃은 절정이고 무언가 고함이라도 치는 듯 꽃의 입술이 크게 벌어지는 송장풀. 잎이나 꽃에 코를 들이대어도 고약하기는커녕 향기로운 냄새뿐이다. 그래도 혹 이름과 관련한 무슨 사연을 품고 있지 않을까. 납작 엎드리면 지하에서 누가 보고서 뭐라고 명명(命名)하고 군침을 흘리실지! 송장풀,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 경향신문 2016. 8. 16자.






후기.

처절한 난투극을 조금 더 자세히 묘사해본다. 덩치가 외려 더 큰 매미는 속절없이 발랑 뒤집혀 누웠고 그 위를 말벌이 올라타고 누르고 있었다. 자연계의 그 흔한 2층공사(=짝짓기)와는 전혀 다른 작업이었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노란 말벌이 침으로 매미에게 마취제라도 주사하는 것 같았다. 매미는 몇 번 파드닥거리더니 이내 맥을 놓았다. 소리만 지를 줄 알았지 매미는 어리숙하기만 할 뿐이었다.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는데 이건 단순한 싸움이 아니었다. 말벌에게는 매미가 큰 식량감이다. 지체 없이 말벌은 매미를 두 토막으로 나누었다. 입에 톱이라도 달린 듯 매미의 가슴 부위를 썰었다. 올해의 울음을 다 토해내지도 못했는데 매미의 가슴은 텅 비었는가 보다. 말벌은 먼저 머리 부분을 움켜쥐고 휙 어디론가 날아갔다. 아마 먹이를 저장하러 저의 소굴로 가는 듯 했다.

그 사이에 남은 사냥감을 노리고 있던 불청객들이 들이닥쳤다. 작은 개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덩치가 아주 작은 실낱같은 개미들이 순식간에 매미의 사체를 둘러쌌다. 주위에서 동료의 신호를 알아들었는지,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하여간 근처에 있던 개미는 모두 모인 듯 했다. 매미인지 개미인지 모를 정도였다. 남은 매미를 챙기려 말벌이 다시 왔다. 하지만 이미 개미의 차지가 된 사냥감의 주위를 몇 바퀴 빙빙 선회할 뿐 선뜻 착륙하지 않았다. 벌은 사태 파악을 빨리 한 듯 했다. 덩치 큰 매미 정도야 침 한방에 제압할 수 있었지만 작아서 오히려 맞설 수 없는 상대였다. 어설프게 발을 내렸다가 꼼짝없이 발목이 잡히는 개미지옥이 되리란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이 광경을 보면서 시체꽃과 송장풀로 엮어지는 글의 얼개를 짤 수 있었다. 요즘 들어 야외에 나가지를 못해 글감이 부족해 애를 먹던 참이었다. 덕분에 마감을 코앞에 두고 끙끙 앓던 숙제가 해결된 셈이었다. 하루치라서 그렇지만 시간의 간격을 조금만 더 늘린다면 나라고 매미의 신세를 벗어날 수 없으리란 궁리까지 연결하자 비로소 한 편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조금 찝찝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회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까지를 거론하고 나자, 비로소 개운한 맛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웅장한 규모의 자연다큐라지만 화면에서 느낄 수 없는 눈앞에서의 쟁투(爭鬪)를 본 소감이라니! 더구나 아프리카가 아니라 동네 뒷산에서!

다음날도 심학산에 올랐다. 무슨 흔적이라도 남았을까. 난투극의 현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말벌도 매미도 개미도 눈을 씻고 보아도 흔적조차 없었다. 그 싸움의 배경이 되어준 낙엽들만이 하룻밤 사이 햇볕을 더 흡수해서인지 더욱 꼬부라져 있을 뿐이었다.





시로미
이전글
좁쌀풀
다음글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