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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미
등록일:2016-08-26, 조회수:424
궁리의 꽃밭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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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긋지긋한 더위를 다스리는 방법 중 하나로 이런 시간 여행은 어떨까. 1억 5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지구의 북반구는 빙하기다. 육지의 3/4가 얼음으로 꽁꽁 뒤덮인 것이다. 이때 추위를 피해 많은 식물들이 남으로 이동했다. 그때 한반도에도 이른바 북방계 식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온난화가 진행되었다. 대부분이 고향으로 되돌아갔지만 일부는 한라산, 설악산의 고산지대로 피신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6.25 전쟁 때 북으로 가지 않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던 빨치산처럼.

이런 내력으로 한반도에 남게 된 북방계 식물들이 제법 많다. 이 식물들이 없었더라면 우리 생태계의 다양성이 퍽 빈약하게 되었으리라. 우리 국토에서 제주도가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 저 북방계 식물들이 없었더라면 한라산 꼭대기가 그 얼마나 허전했을까.

아주 오래전 제주로 신혼여행 갔을 때만 해도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 근처까지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아무나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다. 진즉 식물에 눈을 떴더라면 그때 그 근처의 아주 귀한 나무와 야생화를 실컷 보아 둘 것을.

그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더욱 위로 올라가면 등산로 가장자리에 융단 같은 식물들을 볼 수 있다. 그냥 얼핏 보아서는 완고한 풀들이 뻣뻣하게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10-20cm의 키에 새끼손가락만 한 굵기라서 나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은 나무, 시로미다. 열매가 시어서 그 이름을 얻었다지만 잘 익은 것은 달콤하기만 하다. 이름이 독특한 만큼 생김새도 참 특이하다. 북방계 식물의 하나로서 그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키가 작고 잎은 뾰족하되 물기를 잘 저장하도록 통통하다.

요즘 같이 연일 불볕더위가 계속될 때, 한라산의 시로미를 생각한다. 이처럼 급격한 온난화가 진행된다면 이들의 운명은 어찌 될까. 더욱 고산지대로 쫓겨 가야 할까. 한라산 정상의 깎아지른 절벽에 어디 한 발 재겨디딜 데가 있을까. 실향(失鄕) 식물답게 땅으로 기면서 많은 가지를 내는 시로미. 혈혈단신으로 어깨동무하여 대가족을 이루는 시로미, 시로미과의 상록관목.






후기.

한라산은 한번 가기도 힘들지만 간다고 꽃이나 열매를 때맞추어 보기는 더욱 힘들다. 더구나 귀한 나무나 야생화는 한라산 정상 부근에 많은데 그곳은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그곳에서만 유일하게 자라는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것이다. 두 해 전, 북방계 식물을 보기는 꽃산행에 따라 간적이 있다. 북방계 식물을 보기 위해 북방으로 날아간 곳은 캄차카반도였다. 지도를 보면 지구라는 집의 처마에 고드름처럼 삐쭉 튀어나온 곳이다. 그곳에서는 고산지대로 굳이 갈 필요가 없었다. 어느 해안가로 갔더니 파도소리를 들으며 시로미가 장관을 이루며 자라고 있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발에 밟힐 만큼 많은 개체 수였다. 열매도 사진에 보는 것처럼 까맣게 익었다. 해당화 바로 곁에서 치밀하게 자라고 있는 시로미를 보자니 이곳이 그야말로 그들의 본향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반도 남쪽, 그것도 바다를 훌쩍 건너뛰어 한라산 꼭대기에 겨우 기신하고 있는 제주의 시로미 생각이 났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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