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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며느리밥풀
등록일:2016-09-07, 조회수:322
궁리의 꽃밭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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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가는 길이다. 굽이굽이 골짜기를 돌아들 때마다 아쉬움이 툭툭 튀어나왔다. 토함산에 오면 초등학교 수학여행의 경험이 너무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땐 오늘처럼 이렇게 순식간에 오르지 않았다. 지금보다 훨씬 작은 몸집과 허약한 기력으로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걸어서 올랐다. 그때처럼 그 길을 내 두 발로 직접 확인하며 걸어보고 싶은 것. 매표소를 기웃거리다가 토함산 정상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다. 2시간 후 불국사 정문에서 만나자 하고 홀로 정상으로 향했다. 많은 이들이 다녀갔는지 길은 리어카가 지나갈 만큼 넓고 반질반질했다. 대학교 때 많이 불렀던 송창식의 노래도 흥얼거렸다. “토함산에 올랐어라..... 한 발 두 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 흘려 올라라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 년의 두께로 떠받쳐라...”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971년 가을. 현재보다 1/3의 홀쭉한 몸으로 나는 토함산 중턱까지 걸어 올랐다. 한때 참신했던 아동이 참으로 초라한 중늙은이로 변신해서 이제 해발 745미터의 토함산 정상으로 가고 있다. 무려 45년 만에 끊어졌던 그 등산길을 다시 잇는 중! 추억에 젖다가도 혹 새로운 꽃이 있을까 싶어 눈을 두리번거렸지만 지금은 꽃들이 대부분 자취를 감춘 시기이다. 가을꽃이 곧 나타나겠지만 꽃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고 있다. 그 와중에 전국의 산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바닥에서 눈을 호린다. 알며느리밥풀이다.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 입술을 크게 벌린 꽃이 층층으로 꼿꼿하게 달린 야생화.

이렇게 사무친 토함산이라면 그에 어울리는 더 귀한 꽃을 찾아야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첫 경주행은 썩 유쾌한 일만은 아니었다. 멋모르고 날뛰었지만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서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겨우 따라갔던 수학여행이었다. 그 어려웠던 시절만큼이나 이름에 슬픈 사연을 간직한 알며느리밥풀. 꽃의 입술 아랫부분에 목구멍에 걸린 밥풀처럼 두 개의 도드라지는 흰점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식구들이 기다리는 불국사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알며느리밥풀, 현삼과의 한해살이풀.






후기.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서울로 올라온 뒤, 경주에 갈 일은 별로 없었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를 이럴 땐 대면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바쁘긴 했지만 무얼 하느라 바빴는지는 당사자인 나도 실은 잘 모르겠다. 특히 주말이면 시간도 퍽 많이 남아돌았을 텐데 그 무진장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이를 번역한다면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기억을 파먹는다고 손에 쥘 만한 건덕지가 하나 나오지는 않겠지만 그게 없다면 나의 일생이 얼마나 쓸쓸하랴. 토함산은 기억 속에 우뚝한 산이었다. 경주에만 가도 그저 기분이 좋은 건 토함산의 역할이 다대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릴 적 또렷한 기억을 더듬어 승용차가 아니라 걸어서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가는 게 필생의 소원 중의 하나이기도 했던 것. 마침내 이번 여름휴가 때 우연히 그 기회가 와서 걸어 보았다. 물론 제대로 했더라면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걸었다가 다시 걸어서 내려가야 했다. 그러나 그리 하지는 못하고 석굴암에서 불국사까지 걸어서 내려가기만 했다. 말하자면 편도로만 걸은 셈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토함산의 정상까지 올랐으니 어릴 적 기억의 끝자락은 망외의 세계를 열어준 셈이라 하겠다.

한편, 우리 꽃 이름에 ‘며느리’가 들어가는 게 꽤 있다. 어떤 건 모양새에 비해 그 이름대로의 쓰임새를 고려하자면 보통 고약한 게 아니다. 또한 며느리밥풀도 몇 종류가 있는데 꽃며느리밥풀, 새며느리밥풀, 애기며느리밥풀, 수염며느리밥풀 그리고 알며느리밥풀이다. 이 글을 발표하고 논산의 대둔산에 꽃산행을 갔다. 주말을 피해 갔는데 우리 일행이 산을 전세 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건 퍽 미련한 자의 아둔한 착각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고요한 대둔산을 차지하고 있는 건 붉은색으로 단장하고 가을을 맞이하는 알며느리밥풀이었다. 글을 발표하면서도 혹 오동정을 하지 않았을까, 내심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산행을 마치고 수락주차장 쪽으로 내려오는데 길가에 대둔산의 대표적 야생화를 전시하여 소개하고 있었다.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알며느리밥풀을 보는데 어찌나 반갑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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