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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
등록일:2016-09-29, 조회수:321
궁리의 꽃밭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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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고향, 흩어진 형제들을 새삼 한번 떠올려보라 함일까. 이 계절의 하늘은 높고, 높아서 더욱 잘 보인다. 사무실 근처 가로수인 상수리나무의 가지 끝에 둥지가 있다. 하늘은 한꺼번에 보는 게 아니었다. 무궁한 하늘을 바라볼 때면 먼저 내 허전한 시선을 받아주는 까치의 둥지. 새들도 잠시 깊은 산 가까이로 나들이를 한 것일까. 나무보다 키가 낮아 둥지 안을 볼 순 없지만 어쩐지 텅 빈 기운이 묻어나온다. 긴 추석 연휴를 보내는 동안 심학산 오르다 말고 새의 둥지를 징검다리 마냥 짚고 나아간 곳은 며칠 전 가본 가평의 화악산이었다.

경기도의 최고봉 화악산. 그 꼭대기에 오르니 정상인 신선봉은 군부대의 차지이고 <화악산 1463M>의 표지석은 근처 봉우리로 쓸쓸히 밀려나 있었다. 촬영금지, 접근금지라는 위압적인 팻말이 붙어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경계마다 꽃들이 피어있다. 철조망을 따라 길도 아닌 길을 한 바퀴 걸으니 몸의 균형이 기우뚱해졌다. 안 쓰던 근육들도 합심해서 겨우 긴 덤불을 빠져나와 넓은 임도의 갈림길에 이르니 멀리 발아래 인가가 보이고 구름이 눈썹을 쳤다.

먼저 간 일행이 점심 도시락을 펼치는 가운데 돌더미 사이로 듬성듬성 피어난 건 구절초. 껑충한 대궁, 고아한 색감, 맑게 씻은 얼굴 등등 가을의 정기를 다 그러모은 듯 기품이 흘러넘친다. 음력 구월 구일에 대궁을 잘라 약으로 쓴다 하여 구절초. 지금은 음력 8월 보름인 추석 어름을 지나는 중이다. 그런 명절과 어우러져 생각나는 건 왕유(王維)의 시, 구월구일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였다. “홀로 타향에서 나그네 되니/명절 때마다 고향 생각 더욱 간절하다/멀리서도 알겠지, 높은 곳에 오른 형제들/산수유 꽂으며 놀다가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런 시심(詩心)에 흥건해진 채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한 무더기씩의 구절초가 툭툭 튀어나온다. 구절초 아홉 송이를 찍다가 돌아보면 또 벼랑 위에 소복하게 피어있는 구절초. 이러니 구절초 앞에선 이런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더 예쁜 게 따로 없는 구절초, 그저 다 황홀한 구절초. 이심전심인가. 저도 그렇다는 듯 구절초 향기를 잔뜩 묻히고 팔랑거리며 지나가는 청띠신선나비! 구절초,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후기


어린 시절에는 운동화 한 켤레라도 새로 신을 수 있다는 기대. 송편에 고깃국도 한번 먹으며 목구멍에 끼인 때를 씻어낸다는 기대. 참 그런 사소한 기대들로 설레던 명절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러한 행사를 치르려면 누군가의 수고와 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명절이라고 그저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명절에 임하는 나의 자세와 입장에 내 식구들이라고 모두 같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며느리는 아니었지만 명절속의 고독이 나에게도 슬슬 찾아왔던 것.

어느 해 무슨 일이 있어 몹시 우울한 명절을 보낼 때, 쓸쓸한 심사를 달랠 겸 인왕산 언저리를 쏘다녔다. 그때 얼핏 눈에 들어오는 새의 둥지는 얼마나 허전하고 서운했던가. 그 이후 한 가지 증상이 생겼다. 명절 근처가 되면 새삼스레 둥지에게로 눈길이 자꾸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할 때 왕유의 시 한편이 나머지를 보충해 준다. 음력 9월 9일은 중양절은 이른바 중양절이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풍습이지만 중국에서는 이날에 산에 올라 성묘를 하고 빨간 열매가 달린 산수유가지를 머리에 꽂아 나쁜 운을 몰아내었다고 한다.

이번 꽃산행은 추석을 며칠 앞두고 행한 것이었는데 구절초를 많이 만났더랬다. 다른 시기라면 아, 구절초네! 라고 한번 입으로 중얼거리고 지나갔을 터이다. 하지만 청초하게 핀 구절초 무더기앞에서 도저히 그럴 수는 없어서 흔들리는 꽃대 위에 최근의 내 심정을 오래오래 얹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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