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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잎쓴풀
등록일:2016-10-12, 조회수:409
궁리의 꽃밭 -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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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게 울어 젖힌 매미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난 이후, 숲의 적막을 헤치고 나아가다 개미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개미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는 몇 개 있다. 곤충들 중에서 가장 사회성이 발달하였다는 개미. 사람보다 먼저 농사를 지었다고 하는 개미. 인류가 멸망하고 나면 지구의 새 주인이 될 확률이 가장 높다는 개미.

최근에는 이런 경험을 보탰다. EBS 다큐영화제에서 인상적으로 본 <존 버거의 사계>의 장면 하나. 아이들이 공을 차다가 교실 유리창을 깼다. 쨍그랑. 창문 박살나는 소리에 모든 아이들이 놀라 얼굴을 서로 쳐다본다. 유리창의 파편이 흩어진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한 건 선생님이 아니라 개미였다. 누가 내 구역에서 이런 소란을 피우나, 하는 투로 운동장을 둘러보는 게 아닌가.

지금은 내 발밑에서 꼼지락거리지만 실은 개미가 제 발밑으로 내가 오기를 항상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을 때, 강원도 망상 근처의 한 야트막한 산의 정상에 도착했다. 멀리 벙어리 파도가 철썩이고 흰 구름이 한가로이 떠 있는 풍경이었다.





멀리 그 야생화가 보였다. 지체없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오늘 목표로 한 꽃, 큰잎쓴풀이었다. 이 꽃은 아주 귀하다. 아무데서나 함부로 볼 수 있는 꽃이 아니다. 이 시기에 이 지역에 와서 햇빛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일조량에 아주 민감해서 햇볕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꽃잎을 닫아버린다. 저를 보겠다고 이리도 먼 길을 달려온 사정을 꽃이 봐 줄 리가 없는 것. 해질녘에 도착했더니 꽃이 입을 다물기 시작하는 판이었다. 집중해서 사진을 찍는데 어라, 개미 한 마리가 꽃잎 안으로 들어와 꿀샘을 빨아대지 않는가.

고독한 사냥꾼처럼 개미가 큰잎쓴풀의 꽃을 빠져나와 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한참 지켜보았다. 개미가 제 소굴을 찾아가듯 나도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 개미가 떠나고 왜 쓴풀일까를 생각하면서 잎사귀 하나를 조심스레 따서 입에 넣었다. 소태처럼 쓴맛이 혀를 찔렀다. 개미에게는 꿀을, 나에게는 쓴맛을 준 큰잎쓴풀. 용담과의 두해살이풀.






후기

이 세상의 주인은 누구일까. 나는 그간 내가 사람이라서 사람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 우리편과 남의편으로 나누듯 그렇게 편의적으로 나누고 내 진영에 사고(思考)를 머물게 하여 편하게 살아왔다. 그게 전부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지금 살아 있으니 늘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아직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내가 앞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적어도 사람이 세상의 주인은 아닌 것이다. 그 누구든 잠시 다녀가는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21그램이라는 벌새만큼의 철은 든 셈이겠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벗어나기가 참 힘들다. 어쩌면 그건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함이 옳겠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고 만다면 그건 동물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일 것이다. 최근 개미에 대한 생각을 부쩍하게 되었다. 산에 가면 나보다 먼저 와 있는 개미, 꽃을 찍으면 그 좁은 영역에까지 진출하는 개미, 어느날 텔레비전을 보는데 화면까지 장악하는 개미. 그러니 행여 이 세상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를 생각해보니, 개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이내 철회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개미가 돌아다닌다 한들, 저 큰잎쓴풀을 비롯한 식물들의 줄기나 잎, 뿌리의 가호가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겠다는 깨우침이 든 것이다. 저 앞에 엎드려 카메라를 눌러대는 나라는 족속에게도 그건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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