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철쭉
등록일:2016-10-19, 조회수:1216
궁리의 꽃밭 - 이굴기
트위터로 공유하기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미투데이로 공유하기



지난여름의 늦은 휴가. 경주에서 1박 하고 동해안의 해파랑길을 따라 북상하기로 했다. 강구항에서 물회로 점심을 때우고 삼척 부근을 지나는데 바닷가에 맞붙어 우뚝한 엘리베이터가 있고 큰 조형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수로부인에게 견우노인이 꽃을 꺾어 바친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꾸민 <수로부인헌화공원>이었다.

공원 한 귀퉁이의 안내판. 삼국유사의 원문에서 꽃은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高千丈 上有花盛開(고천장 상유척촉화성개, 절벽 높이가 천 길이요, 그 위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척촉화는 철쭉이다. 척촉의 훈을 새기면 머뭇거릴 척, 머뭇거릴 촉이다. 마음을 홀랑 뺏어가는 너무나 아름다운 꽃이었으니 그 앞을 좀체 떠나지 못하고 머뭇, 머뭇거린다 하여 척촉, 철쭉이라고 한 것이겠다.

경주에서 삼척까지 오는 동안 즐비한 횟집과 모텔 사이로 이런 간판도 간혹 눈에 띄었다. <00요양병원>.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앞둔 어르신들이 모여서 머무르는 곳이다. 시간의 절벽에 매달린 한 송이 철쭉꽃처럼.

제철도 아닌 시기에 철쭉을 불러내는 건 까닭이 있다. 시절이 하수상해서 그런가. 지난 주말 상주의 황금산에서 개나리를 보았다. 겨울의 입구에서 만난 뜻밖의 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활공장이 있는 정상에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낮은 자세로 활짝 피어 있는 건 철쭉이 아닌가.

급격한 기후변화의 와중에서 이른바 시절을 잘못 알고 바깥으로 나와 어리둥절 서 있는 철쭉. 수상한 건 산중만이 아니다. 최근에 읽은 한 뉴스는 이런 절규를 담은 것이었다. 물대포에 맞아 돌아가시고도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한 주검 앞에서 모욕당한 유족은 이런 글을 토하며 피울음을 삼킨다. “저희들은 이미 충분히 아프고 슬프다. 부디 사람의 길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

까마득한 신라 시대. 물의 길, 수로(水路)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을 생각해본다. 지나칠 수 있건만 외면하지 않고 절벽으로 오른 노인도 헤아려본다. 그런 머뭇거리는 마음들이 끈적끈적하게 묻어 있는 척촉화도 떠올려본다. 철쭉, 진달래과의 낙엽관목.


-------경향신문 2016. 10.17일자.




후기

철쭉과 진달래. 우리 산하를 생각할 때 참 빼놓을 수 없는 꽃들이다. 우리가 그 꽃을 보는 게 아니라 그 꽃들이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야생화. 그 꽃들이 없을 때 우리 산, 우리 사는 공간을 생각하면 그저 아찔할 뿐이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진달래는 그래도 대접을 해주었다. 참꽃이라고 해서 그 야들야들한 꽃잎을 소먹이 하러 가서 참 무던히도 많이 따 먹기도 했다. 반면에 철쭉은 개꽃이라 했다. 진달래보다 대수롭잖게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꽃에도 끈적끈적해서 닿으면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랬던 나인데, 이제 산으로 가서 철쭉 앞에 서면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진달래는 진달래, 철쭉은 철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 꿇릴 것 없는 철쭉이요, 더 은근한 정(情)이 철쭉으로 쏠리는 것도 같다.

수로부인과 견우노인, 헌화가와 구지가에 대해 알기는 했지만 어렴풋이 대강 알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고문 시간에 이 설화를 배우긴 했었던 것 같은데 삼국유사 원문은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보았다. 그래서 꽃에 대한 관심으로 척촉화를 또박또박 새겨 보았던 것.

척촉화를 두고 전문가들은 철쭉, 산철쭉, 진달래를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삼척의 수로부인헌화공원 안내판에는 원문을 써놓고 진달래로 번역해 놓았다. 어느 전문가는 산중이 아니라 해안가 식생을 고려할 때 산철쭉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도 하였다. 아무려나, 척촉이란 원문에 충실하려면 철쭉이라고 하면 될 듯.

해안가로 차를 몰고 나아갈 때, 많은 생각을 했다. 견우노인의 후배가 되어서 수로부인의 후예인 아내를 태우고 간다는 조금 지나친 농담을 했더니 아이들은 맞장구는커녕 대꾸도 아니 하고 깔깔깔 웃기만 했다. <00노인요양병원>을 지날 때는 입 바깥으로 내놓지는 아니했지만 이런 궁리도 해 보았다. 파도치는 철벽에 매달려 피었다가 지는 철쭉꽃. 시간의 물결에서 떠밀려 이제 한적한 바닷가 병원에서 시들고 있는 한 송이 꽃들.


*** 수로부인과 견우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삼국유사의 원문을 여기에 소개한다.

聖德王代, 純貞公赴江陵太守(今溟州) 行次海汀晝饍.
傍有石, 如屛臨海, 高千丈, 上有花盛開.
公之夫人<水路>見之, 謂左右曰
“折花獻者其誰?”
從者曰: “非人跡所到” .皆辭不能.
傍有老翁牽牛而過者,
聞夫人言, 折其花, 亦作歌詞獻之,
其翁不知何許人也.--------------三國遺事 卷之二 水路夫人


성덕왕 때 순정공이 강릉태수(지금의 명주溟州)로
부임하는 도중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곁에는 돌 봉우리가 병풍처럼 바다를 두르고 있는데
높이가 천장인데 그 위에 철쭉꽃이 만발하여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가 그것을 보더니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누가 꽃을 꺾어다가 내게 줄 사람은 없어요."
종자들은, "거기에는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입니다" 하고
모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사양하였다.
그때 암소를 몰고 그곳을 지나가던 노옹이 있었는데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 노래를 지어 바쳤다.
그 노인이 어디 사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전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큰잎쓴풀
다음글
목록으로